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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하자" 상습 성희롱…조사 시작되자 "조울증" 공무원 최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동료 직원들을 상대로 폭언과 성희롱을 일삼아 해임된 검찰청 직원이 징계 취소 소송에 나섰지만,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해임 처분을 취소한 원심판결을 파기해 환송한다고 7일 밝혔다.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지난 2018년 제주지검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한 검찰 주사보 A씨는 품위 유지 의무를 33차례 위반했다는 이유로 지난 2019년 5월 해임됐다.

A씨는 여성 동료들에게 "허벅지를 만져보라"고 강요하거나, 허리를 갑자기 껴안는 등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키스 한번 하자", "OO 몸매 좀 봐라, 괜찮지 않으냐", "OO 옷 입은 거 봐라, 나한테 잘 보이려고 꾸미고 온 것이다", "(OO는) 내 애인이다, 젊은 애인 구했어" 등의 성희롱 발언도 수차례 계속됐다.

"사무원은 9시 땡 하면 출근해서 쇼핑이나 하다가 내가 '냉'하면 냉커피 타오고, '온'하면 따뜻한 커피를 타오면 된다"라고 비하하거나, 술자리 참석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후배를 투명 인간처럼 취급하는 등의 갑질을 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특히 자신이 인사 업무 담당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내가 무슨 담당이냐, 너는 내일 해고야" 등의 폭언을 일삼았다고 한다.

"조울증 때문"…1심 법원 "징계 정당" 

A씨는 "해임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검찰총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대화의 맥락을 무시한 채 일부 발언만 부각됐고, 신빙성이 없는 피해자 진술에만 기초했다는 것이다. 당시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가 있어 과격한 언행을 했던 것이고, 이를 뒤늦게 안 피해자들도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20년 1심 재판부는 징계가 정당하다고 봤다. A씨가 양극성 정동장애 진단을 받은 건 이 사건 조사가 시작된 이후인 점 등을 들어, 정신질환으로 인해 판단력을 잃은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A씨가 대부분 직급이 낮은 후배 직원이나 신규 사무원 등 지위가 취약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비위 행위를 저질렀다"고 꼬집었다. "A씨가 자신의 입장만 강조할 뿐, 피해자들의 고통을 납득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 재발 우려도 있다"라고도 했다.

"징계 서류에 피해자 실명 없다" 주장에…2심서 뒤집혀

2심은 1심 판단을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피해자 이름이 빠져 있는 등 제대로 특정되어 있지 않다"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해임 처분을 취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피해자들이 A씨와의 대면을 두려워하고 있어 비실명 처리했지만, 징계 사실은 충분히 증명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가 최소 16명인 상황에서 검찰이 이들을 특정하지 않아 A씨가 개별적으로 반박할 기회를 받지 못한 것은 방어권이 침해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례 역시 "성 비위 행위의 경우 상황에 따라 행위의 의미나 피해자가 느끼는 수치심 등이 달라질 수 있어, 징계대상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각 행위의 일시나 장소 등을 특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다시 뒤집은 대법…"인적 사항 공개 신중해야"

대법원은 2심 재판부가 '피해 상황 특정 원칙'을 잘못 해석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징계처분 관련 서류에 피해자 실명은 없지만 각 혐의 사실들이 서로 구별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특정된 점, A씨가 징계 처분 과정에서 피해자를 특정하라는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

 A씨가 퇴직한 피해자 1명을 제외하고 모든 피해자에게 탄원서를 받아 제출하는 등 이미 피해자를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관련 서류에 실명이 적혀있지 않는다고 해서 A씨가 혐의 사실을 반박하거나 소명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인적사항을 기재하지 않은 것은 피해자들의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비공개 요청에 따른 것"이라며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도 인정했다.

대법원은 "혐의 사실들이 서로 구별될 만큼 특정돼 있고 징계 대상자가 구체적인 내용과 피해자를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인정될 경우, 피해자 실명 등 구체적인 인적 사항이 공개되지 않는다고 해도 징계 대상자의 방어권 행사에는 실질적인 지장이 초래된다고 볼 수 없다"며 유사 사건에 대한 판단 기준을 내놨다. 또 성희롱 피해자의 경우 2차 피해 등의 우려가 있어 실명 등 구체적인 인적사항 공개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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