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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달였다며 스틱 1개 7000원…교통사고 한의원 탕약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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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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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경 보험사기]

서울에 있는 A 한의원은 자동차사고 환자를 주로 진료했다. 원장 B씨는 교통사고 환자가 내원하면 ‘고농축 첩약’이라며 시중에서 판매하는 홍삼 스틱과 비슷한 포장지에 담긴 연조엑스제를 처방했다. B원장은 이 연조엑스제가 1포당 6690원짜리 첩약으로, 한의원에서 직접 달였기 때문에 탕전료 670원까지 별도로 받아야 한다고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런데 C 손해보험사가 A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보험가입자들에게 전화로 확인한 결과 B원장의 이야기는 실제와 차이가 있었다. 환자마다 당한 교통사고가 다르고 다친 곳도 차이가 있었는데 처방받은 연조엑스제는 똑같았다.

게다가 한의원에서 직접 달여서 준 게 아니라 냉장고에 쌓여 있던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줬다는 게 처방을 받은 환자들의 공통적인 이야기였다. 최대로 처방할 수 있는 한도인 1일 2포, 10일씩 2회를 모두 채워 29만4400원을 청구한 것도 동일했다.

C 손보사가 A 한의원과 유사한 사례를 조사해보니 전국의 여러 한의원에서 비슷한 처방을 해온 것을 확인했다. 이들 한의원에 문제를 제기하고 부당 수령한 보험금의 환수를 요구하자 한의원 대부분이 이를 인정하고 보험금을 돌려줬다. 하지만 B원장은 해당 연조엑스제가 직접 제조한 고농축 첩약이 맞다며 보험금 돌려주기를 거부했고, 보험사는 경찰에 A 한의원을 고발했다.

경찰 수사 결과 B 원장이 고농축 첩약으로 주장한 연조엑스제는 한의원이 아닌 원외탕전실에서 대규모로 제조한 제품으로 가격은 개당 300원 수준이었다. 다른 손해보험사의 피해 사례까지 취합한 결과 A 한의원은 이런 방식으로 2017년 7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약 700여명의 환자에게 뻥튀기한 연조엑스제를 처방하고, 1억5400만원의 보험금을 챙겼다.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지난해 2월 한의사인 B 원장을 보험사기방지특별법 등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심 재판부는 지난 1월 B원장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B 원장이 항소해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보험 진료비 중 한방진료비의 비중은 54.6%(1조3066억원)로 양방진료비(45.4%, 1조850억원)를 앞질렀다. 2016년 27.7%(4598억원) 수준이던 한방진료비 비중이 최근 5년간 급증한 것이다.

이런 급증세에는 교통사고 경상환자 진료비다. 지난해 교통사고 경상환자의 한방진료비로 지급된 자동차보험금은 1조3066억원이다. 2018년(7139억원)과 비교해 3년 만에 배가 됐다. 손해보험업계가 조사한 지난해 교통사고 경상환자의 1인당 진료비는 한방진료비(96만1000원)가 양방진료비(33만8000원)의 2.8배 수준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교통사고 경상환자가 한방병원에서는 첩약과 약침, 추나 등 이른바 ‘세트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홍보하면서 한방병원을 찾는 환자가 늘었고, 그로 인해 자동차 보험금에서 한방진료비 청구액이 빠르게 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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