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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저도의 추억 文 평창홍보…대통령 첫 휴가엔 '메시지'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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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휴가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저녁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연극 ‘2호선 세입자’를 관람한 후 배우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여름휴가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저녁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연극 ‘2호선 세입자’를 관람한 후 배우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일 비슷한 건 안 하기로 하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1일 오후 출입기자들을 만나 윤석열 대통령의 첫 여름휴가(1~5일) 계획에 대해 “댁에서 푹 쉬시고 주무시고 산보도 하고 영화도 보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오전 브리핑 땐 “서울에 머물며 정국 구상을 할 것”이라고 했는데 오후에 ‘휴식’에 방점을 찍으면서 다시 말한 것이다. 직후, 정치권에선 “대통령이 일 안 하겠다는 브리핑은 처음 본다”는 등 여러 말이 나왔다.

 이후 윤 대통령은 휴가 중 깜짝 연극 관람을 했는데, 이것 역시 정치적 공방의 소재가 됐다. 윤 대통령 부부는 지난 3일 대학로 한 소극장에서 연극 ‘2호선 세입자’를 관람한 뒤 배우들과 뒤풀이를 했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뒤풀이 사진엔 맥주와 소주를 마시는 모습도 포함됐다.

이를 두고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은 안 만나면서 연극을 보느냐”(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는 지적이 나오며 역시 논란을 불렀다.

이에 대통령실에선 “국회의장이 파트너인데 윤 대통령이 휴가 중에 만나는 것은 적절치 않다”(강승규 시민사회수석)는 반박이 나왔다. 익명을 원한 한 참모는 “윤 대통령의 첫 여름휴가가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이슈 거리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남 거제 저도의 해군 휴양소를 찾은 2013년의 박근혜 당시 대통령. 해변에 ‘저도의 추억’이라고 썼다. 중앙포토

경남 거제 저도의 해군 휴양소를 찾은 2013년의 박근혜 당시 대통령. 해변에 ‘저도의 추억’이라고 썼다. 중앙포토

 역대 대통령들은 주로 ‘7월 말 8월 초’에 여름휴가를 갔다. 특히 취임 후 첫 휴가는 재충전과 함께 정국 구상을 가다듬고 중요 결정을 하는 계기가 되곤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영삼(YS) 전 대통령이다. YS는 청남대에서 첫 여름휴가를 마친 직후인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법을 전격 발표해 ‘청남대 구상’이란 말을 남겼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98년 IMF 충격으로 첫 휴가를 반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각각 대전과 진해에 있는 군 휴양지에서 첫 휴가를 보냈다.

 휴가 일정과 행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첫 휴가를 경남 거제 인근 저도에서 보내며 모래사장에 ‘저도의 추억’이란 글씨를 적고 있는 사진을 SNS에 올렸다. 30여 년 전 이곳에 함께 왔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떠올리며 인간적인 이미지를 부각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휴가 직후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4명을 한꺼번에 교체했다.

반면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여름 첫 휴가를 강원도 평창에서 시작했다.  '2018 평창 겨울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현장 상황을 점검하고 홍보하는 효과를 노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18년 8월 2일 오전 대전광역시 장태산 휴양림을 산책하던 도중 휴식하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18년 8월 2일 오전 대전광역시 장태산 휴양림을 산책하던 도중 휴식하고 있다. 청와대

 ‘휴가 징크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역대 대통령들은 휴가와 함께 찾아온 악재에 고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탄핵 정국, 2006년 북한 미사일 발사, 2007년 한국인 피랍사건 등으로 세 차례나 '관저 휴가'를 보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로 청와대를 지킨 박근혜 전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휴가를 떠나기에는 마음에 여유로움이 찾아들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 시간 동안 남아있는 많은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 역시 출발 하루 전날인 2017년 7월 28일 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휴가가 연기됐다. 이후, 2019년엔 일본의 수출 규제로, 2020년은 폭우, 2021년 코로나 19 확산으로 휴가를 보류했다.

 역대 대통령이 가장 자주 찾은 휴가지는 청남대(靑南臺)다. 충북 청주에 있는 청남대는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이다. 축구 마니아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가족·경호실 직원들과 축구를 즐겼다.

80타 골프 실력을 자랑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골프를,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매일 2km 정도 되는 조깅 코스를 뛰었다. 다리가 불편했던 DJ는 독서와 산책, 서예를 즐겼고, 테니스를 좋아했던 MB는 휴가지에서도 라켓을 놓지 않았다.

유난히 휴가 복이 없던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은 관저나 휴가지에서 독서를 했다. 다독가인 둘은 휴가 때마다 추천 도서를 소개했는데, 국정철학과 정치적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전달해 ‘독서 정치’라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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