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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할 시간 있었는데…” 숨진 간호사는 마지막까지 투석환자 돌봤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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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호 12면

5일 화재가 난 경기도 이천 건물 내부에서 병원 관계자들이 소방대원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5일 화재가 난 경기도 이천 건물 내부에서 병원 관계자들이 소방대원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간호사들은 연기가 차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 최대한 환자의 안전을 보호하려고 남아있지 않았나 추정한다.”

5일,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 학산빌딩에서 난 화재로 이 건물 4층의 투석전문병원에서 5명이 숨졌다. 사망자는 60대 남성, 70대 여성, 80대 남성 2명 등 환자 4명과 50대 여성 간호사 1명이다. 여성 간호사는 현은경(50)씨로 밝혀졌다. 소방당국은 “간호사가 남은 건, 투석 중에 투석을 바로 끊을 수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밝혔다. 화재 당시 4층 내부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숨진 현씨가 끝까지 남아서 환자들을 돌보는 장면이 찍혀 있다. 소방 관계자는 “연기가 서서히 차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현씨에겐) 대피할 순간이 충분히 있었다고 보고 있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양철우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만일 정전 등의 문제로 투석기를 못 돌리게 되면 투석관을 빼고 투석을 중단하거나 손으로 굴리면서 유지를 해줘야 한다”며 “조처를 하지 못하면 1~2분 내에라도 혈전이 생겨서 혈액이 굳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갑작스러운 비보에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군복무 중 휴가를 나와 있던 현씨의 아들 장모(21)씨는 이날 군복을 입은 채 빈소에서 망연자실해 있었다. 장씨는 기자와 만나 “어머니는 병원 환자들이랑 다 잘 지내셨고 가끔 환자들이 치킨 등을 챙겨주셔서 집에서 같이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씨는 간호학과를 졸업한 후 간호사로 일했고, 이 병원에서도 10년 넘게 일했다고 한다.

아들 장씨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건 한 달 전 외박을 나왔던 때다. 장씨는 “원래 어제 휴가를 나오는 거였는데, 올라오는 길에 못 봤던 친구들을 만난 뒤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느라 오늘 아침에 길을 나섰다”며 “오후 2시쯤 어머니 근무가 끝나면 같이 안경 맞추러 가자고 했었는데…”라며 말을 끝맺지 못했다.

현씨의 딸 장모(25)씨는 “어머니가 간호학과에 가신 뒤 생각보다 잘 맞았다고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저에게도 간호학과 진학을 권유하셨다. 내가 다른 학과에 가긴 했지만, 어머니는 간호사 생활에 만족하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장례식장 휴게실에는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 유가족은 “얼마나 살고 싶었으면 신발을 신다가…”라며 눈물을 쏟았다. 한 유가족은 울다 지쳐 구급대원에 의해 응급실로 이송되기도 했다. 60대 동생을 잃은 A씨는 “동생은 3~4년간 투석을 받아 왔다. 당뇨를 앓아 거동이 불편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70대 어머니를 잃은 B씨는 “아버지가 ‘병원에 불났는데 엄마가 전화를 안 받는다’고 해서 차를 몰고 가고 있었다. 가던 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소방당국은 이날 경찰 등 유관기관과 함께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 여운철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합동 감식 결과 발화군은 3층 (스크린)골프연습장 입구에 위치한 첫 번째 방으로 확인된다”며 “발화 원인은 현재로써는 확정하여 논하기 어렵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추가 감식 및 국과수 정밀 감정 후에 최종 판단 예정”이라고 했다. 당시 스크린골프장에서는 근로자 3명이 철거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천장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보고 자체적으로 진화를 시도하려다가 되지 않자 대피해 119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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