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기의 연령별, 상황별 연금 설계
은퇴 후 생활비는 얼마가 적정액일까? 국민연금공단의 2019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50세 이상 중고령자 부부의 적정 노후 생활비는 월 268만원이라고 한다. 최소 노후생활비는 195만원으로 조사됐는데, 공단은 부부 모두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20년 이상의 수급자라면 연금급여(평균 92만원)만으로도 최소 수준을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과연 그럴까? 국민연금(이하 노령연금 기준) 수급자는 2022년 3월 현재 496만 명이고, 월 수급금액 최빈값(mode)은 남녀 모두 20만~40만원이다. 최소 생활비를 위해 부부 기준으로 각각 받아야 하는 100만~120만원 구간의 수급자는 남자 18만7631명, 여자 8450명이다. 남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고, 부부가 모두 받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되며, 국민연금만으로는 부부는커녕 개인 기준의 최소 수준 생활도 유지할 수 없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부족한 노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 국민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격년 단위로 실시되는 통계청의 2021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19세 이상 국민들의 노후준비방법은 국민연금(59.1%), 예금·적금(14.0%), 직역연금(8.5%), 사적연금(6.5%), 퇴직급여(3.8%) 등으로 나타났다. 연금을 포함한 금융자산 비중이 91.9%에 달한다. 문제는 이러한 금융자산만으로는 부족하고 또 다른 노후 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주택을 활용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2020년 국민대차대조표 통계에 따르면 가계자산(금액)의 62.5%가 부동산이고, 주택만 한정하면 42.8%에 달한다. 57.9%의 가구가 자신이 소유한 주택에서 자신이 살고 있다. 자기 집에 그대로 살면서 노후소득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 주택연금이다. 하지만, 19세 이상 노후준비방법에서도 나타나듯이 주택연금 활용도(1.6%)가 너무 낮다. 주택연금 가입자 수는 2022년 5월 말 현재 9만7658명에 불과하다.
주택연금은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맡기고 자기 집에 살면서, 매달 주택금융공사가 보증하는 대출을 연금방식으로 매월 받는 제도이다. 국민연금과 더불어 종신수령이 가능하다. 주택연금에 가입한 후에 집값이 내려가더라도 처음 가입할 때 정해진 연금지급액이 줄어들지 않고 평생 연금수령이 가능하다. 변동성이 없이 고정적인 수입이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또한, 가입자가 사망해도 배우자에게 동일하게 100% 보장된다. 국민연금은 가입 기간에 따라 40~60% 정도만 배우자에게 지급되는데, 주택연금은 똑같이 100%를 보장해 준다. 특히, 신탁방식 주택연금의 경우에는 주택 소유자가 먼저 사망해도 자녀 동의와 무관하게 배우자가 계속 주택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국민연금과 마찬가지로 압류방지 통장으로 받으면 최대 월 185만원까지 압류 걱정 없이 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입 대상에 제한이 있다. 또한, 부부 중 한 사람은 만 55세 이상이어야 하고 공시가격 9억원 이하의 주택만 가능하다. 다주택자인 경우에는 집값을 모두 더한 금액이 9억원을 넘지 않으면 된다. 9억원을 넘는다고 해도 3년 이내에 주택을 처분해서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현재 가입 대상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확대하는 작업이 진행 중인데, 연내에는 시행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주택연금으로 매달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 연금액은 일반주택, 노인복지주택, 주거 목적 오피스텔에 따라 다르고, 지급방식이 종신이냐, 확정기간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무엇보다 지급받는 가입자와 배우자의 연령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이트에서 월지급금 예시나 예상연금조회를 통해 대략적인 금액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시가격 5억원의 일반주택에 55세 연령이고 배우자 없이 월정액으로 종신지급 받는 경우에는 월 80만5000원을 받을 수 있다. 만약 같은 조건으로 80세부터 받는 경우라면 240만원을 수령할 수 있다. 만약, 100세까지 산다면 수령액이 4억4000만원으로 집값 5억원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볼 수 있지만, 80세에 가입하고 100세까지 사는 경우에는 수령액이 6억원으로 가입 시점의 집값보다 더 커진다.
주택연금은 수령 기간이 길수록 연금액이 줄어든다. 연금지급을 보증하는 주택금융공사 입장에서 보면 기간이 길수록 집값 변동 위험, 즉 가격하락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공사 보증으로 은행과 보험사들이 대출을 해 주고 가입자와 배우자가 사망하면 집을 매각하여 상환하는 구조인데, 집값이 대출 원리금액보다 적어지면 공사가 대신 지급해야 하는 구조다.
주택연금 외에도 현재 거주 주택을 팔고 저가 주택을 매입하거나 임대주택으로 이사하여 주택 매매차익을 노후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정부도 이러한 방식의 노후소득 마련을 지원하기 위해 최근 발표한 2022년 세제개편안에서 매매차익 중 1억원까지 세제적격 연금계좌에 추가 납입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만기 도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연금계좌 전환에 이은 두 번째 세제혜택 조치다.
물론, 주택 다운사이징이 주택연금과 같을 수는 없다. 주택을 활용한다는 측면은 같지만 주거 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가구의 상황이나 개인별 선호가 다 다를 수 있다. 세금 측면에서도 따져봐야 할 게 꽤 많다. 중요한 것은 부족한 노후소득을 보완하기 위해 주택과 같은 보유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다양한 방안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우리 가계와 정부도 전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 서울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장기신용은행 연구원을 거쳐 기획예산처 등에서 근무했다. 하나금융지주에서 전략 실무를 총괄했으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모바일 연금자문회사 웰스가이드를 설립해 ‘좋은 사회를 위한 금융’이라는 미션을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