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몰입감 좋아” 베스트셀러 된 대본·각본집

중앙선데이

입력 2022.08.06 00:47

업데이트 2022.08.06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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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호 18면

서점가 휩쓴 팬덤의 힘

드라마 ‘그 해 우리는’ 방송 장면.

드라마 ‘그 해 우리는’ 방송 장면.

“최우식과 김다미의 셀렘 가득한 연기 속에 어떤 대본을 받고 그렇게 표현했는지 궁금해서 대본집까지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대본으로 기억나는 대사를 읽으면 드라마의 그 장면이 떠올라서 몰입감이 너무 좋아요!” “드라마를 기억하기위해 구매했어요.” 드라마 ‘그 해 우리는’ 대본집을 산 구매자들의 리뷰다.

1·2권으로 출판된 드라마 ‘그 해 우리는’ 대본집. [사진 각 출판사]

1·2권으로 출판된 드라마 ‘그 해 우리는’ 대본집. [사진 각 출판사]

드라마 대본집과 영화 각본집이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최근 3년간 1월~7월 기간 드라마 대본/영화 각본 출간 수는 2020년 14종, 2021년 48종, 2022년 58종으로 늘었다. 전년 동기 대비 판매 증가율도 2020년 93.2%, 2021년 54.5%, 2022년 121.0%를 기록했다.  현재 서점가 ‘베스트 드라마 대본/영화 각본’ 1·2위는 올해 1월 종영된 드라마 ‘그 해 우리는’ 1·2편이다. 2월에 출간했는데 7월 말 누적판매수가 벌써 9만부를 넘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 각본집의 인기도 심상치 않다. 지난달 19일 예약판매를 시작한 후 하루만에 6000부 이상 팔렸고, 8월 첫째 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차지했다. 박찬욱 감독의 전작 ‘박쥐’(2009년 개봉)와 ‘아가씨’(2016년 개봉) 각본집도 역주행하며 전주 대비 400% 이상 판매 증가를 보였다.

2022년 드라마 대본·영화 각본 베스트 10

2022년 드라마 대본·영화 각본 베스트 10

‘그 해 우리는’ 대본집을 기획·편집한 김영사의 김민경 차장은 “영상 시대인 만큼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이유지만, 무엇보다 드라마 대본집 판매를 견인하는 힘은 ‘팬덤’”이라며 “요즘 1020세대는 시청률과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드라마, OTT 서비스 왓챠에서 상영된 ‘시맨틱 에러’처럼 내가 좋아하는 장르에 투자하고 응원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위해 구매하는 관련상품 ‘굿즈’ 카테고리에 대본집도 포함됐다는 얘기다.

언제 읽어도 좋을 우리 이야기

‘나의 아저씨’ 대본집은 종영 4년 만에 올해 출판됐지만 반응이 좋다.

‘나의 아저씨’ 대본집은 종영 4년 만에 올해 출판됐지만 반응이 좋다.

흥미로운 것은 이미 종영한지 오래된 드라마 대본/영화 각본집도 올해 본격 출간됐는데 그 판매순위 역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JTBC ‘나의 해방일지’를 통해 ‘구씨 신드롬’과 ‘추앙’ 열풍을 일으킨 박해영 작가의 전작 ‘나의 아저씨’ 대본집은 드라마가 종영된지 4년 만인 올해 3월 출간됐는데 판매 순위 4위에 올랐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도 2019년 방영됐던 드라마인데 대본집 1·2편이 나란히 판매순위 8·9위에 올랐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무려 20년 전 개봉작인데 올해 4월 특별판 각본집이 출판됐고 현재 판매순위 7위를 기록하고 있다.

‘나의 아저씨’ 대본집은 종영 4년 만에 올해 출판됐지만 반응이 좋다. [사진 각 출판사]

‘나의 아저씨’ 대본집은 종영 4년 만에 올해 출판됐지만 반응이 좋다. [사진 각 출판사]

‘나의 아저씨’ 대본집을 기획·출판한 세계사의 강현지 편집자는 뒤늦은 출간 이유에 대해 “‘나의 아저씨’는 수많은 사람의 인생드라마로 기억되면서 삶에 유의미한 의미를 남긴 작품”이라며 “일상에서 주고받는 보통의 언어들이 상황에 따라 이렇게 힘 있고 따뜻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나의 아저씨’를 반복해 보며 깊게 실감했고, 이토록 좋은 이야기라면 ‘언제 나와도’ 많은 사람에게 읽힐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결국 대본집도 ‘책’이다. 팬들이 평범한 굿즈와는 달리 대본집에서 기대하는 바도 ‘소장가치’다. 언제 꺼내봐서 읽어도 내 이야기인 듯 가슴에 꽂히는 문학서적처럼 대본집도 결국 ‘이야기의 힘’이 기본이다. 때문에 출판사 편집자들은 “어떤 드라마의 대본집을 만들까 고려할 때 작품성과 가치, 재미를 동시에 고려하는 게 기본”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시청률도 좋았지만 ‘야구판 미생’이라 불릴 만큼 젊은 층에 시사하는 점이 많았다. 드라마 ‘오월의 청춘’은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5·18 민주화투쟁을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 출판을 결정한 경우다.

영화 ‘헤어질 결심’.

영화 ‘헤어질 결심’.

2009년부터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대본집을 꾸준히 출판해온 북로그컴퍼니의 김정민 대표는 지난해 문화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드라마 대본집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출판시장 창조경제에 앞장서고, 해외 판권수출이라는 새로운 판로를 여는 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2009년 출판한 노희경 극본, 현빈·송혜교 주연의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대본집은 판매용으로 출간된 국내 최초의 대본집이다. “출판사를 시작하기 전 나 스스로 드라마 작가 지망생으로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너무 좋아했어요. PC통신 천리안 자료실에서 일일이 낱장 대본을 프린트한 후 제본해서 보곤 했죠.”  하지만 김 대표도 요즘처럼 서점가에서 대본집이 큰 반응이 있을지는 전혀 예상 못했다고 했다. “‘그들이 사는 세상’ 대본집을 출판하고 싶다고 했을 때 노희경 작가조차도 ‘누가 이미 방송이 끝난 드라마 대본을 돈 주고 사보냐, 이거 분명 망한다. 하지 마라’ 말렸죠.”(웃음)

8월 첫째 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차지한 영화 ‘헤어질 결심’ 각본집. [사진 각 출판사]

8월 첫째 주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차지한 영화 ‘헤어질 결심’ 각본집. [사진 각 출판사]

뚝심 있게 출판한 ‘그들이 사는 세상’ 대본집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팔리는 베스트셀러다. 이후 김 대표는 노희경 작가의 여러 작품을 비롯해 ‘비밀의 숲’ ‘갯마을 차차차’ 등의 대본집을 출판했고, 인도네시아·대만·필리핀·중국 등에 판권을 수출해왔다. 특히 러시아-우크리아니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러시아에서 한류 드라마의 인기는 대단해서 종영한지 3~4년 지난 드라마의 대본집 판권수출도 활발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드라마 대본집이 출간되는 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때문에 일본을 비롯해 동남아, 러시아 등에서 K드라마, K출판을 견인하는 데 한 몫 하고 있다”고 했다.

영화 ‘박쥐’ ‘아가씨’ 각본집 역주행

시청률 14.6%로 종영한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시청률 14.6%로 종영한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김 대표 역시 드라마 대본집/영화 각본집의 인기 원인은 ‘팬덤’이라고 했다. “대본에 저 장면은 어떻게 써 있길래 내 배우가 저렇게 연기를 할까 궁금해서 대본집을 구매한다는 독자가 많아요. 내 배우가 뜨려면 이 드라마 대본 집이 나와야 한다며 드라마 제작사로 전화를 걸어 출판 여부를 문의하고, 출판 요청까지 하는 팬들도 있죠. 대본집을 두 권씩 사서 한 권은 소장형으로 책꽂이에 두고, 한 권은 형광펜으로 밑줄 치고 포스트잇 붙여가며 읽은 후 SNS 인증샷 올리기 경쟁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누가 더 열심히 대본을 해석했는가 경쟁하는 거죠.”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대본집. [사진 각 출판사]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대본집. [사진 각 출판사]

물론 굳이 돈을 내고 대본집을 사는 데는 그만의 차별화된 매력도 있어야 한다. 김민경 차장은 “각 회차 별 작가가 꼽은 명대사를 따로 부탁한다”며 “작가의 시그니처 대사와 함께 드라마를 더 잘 기억할 수 있는 가치를 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 해 우리는’ 대본집은 주인공 최웅(최우식)과 국연수(김다미)의 고교시절 명찰을 선물로 주는 이벤트도 실시했는데 3분 만에 완판 됐다. 현재 그 명찰은 중고시장에서 6만원에 거래중이다. ‘우리들의 블루스’ 대본집에는 ‘노희경에게 묻고 듣다’ 인터뷰를 비롯해 등장인물 소개 부분에 수십 페이지를 할애했다. 사람의 감정을 심도 깊게 연구하는 노 작가답게 주인공들의 사연과 캐릭터를 읽다보면 왜 이 인물이 그렇게 그려졌는지, 왜 그 장면에서 이런 연기를 하게 됐는지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진다. 김정민 대표는 “드라마를 다시 보면서 작가의 처음 설정과 방송에서 다르게 표현된 부분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대본집을 읽는 쏠쏠한 재미”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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