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남매 중 여섯이 앓았다…최악 견뎌온 삶의 여정

중앙선데이

입력 2022.08.06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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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호 20면

히든밸리로드: 조현병 가족의 초상

히든밸리로드: 조현병 가족의 초상

히든밸리로드: 조현병 가족의 초상
로버트 콜커 지음
공지민 옮김
다섯수레

열두 명의 자녀 중 여섯 형제가 조현병을 앓는다면? 미국 콜로라도주 콜로라도스프링스에 살던 갤빈 가족이 1950년대부터 겪고 있는 장구한 현실이다.

저널리스트인 지은이는 조현병이 인간의 질병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질환이라고 지적한다. 한 세기 동안 연구됐지만, 해결의 열쇠를 발견하기는커녕 원인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수많은 유전자, 주위 환경, 유전과 환경의 상호 작용 등이 복잡하게 얽혀서 발병한다고 짐작하는 정도다.

여섯 형제는 환각·망상·환청에 혼수상태에 가까운 의식 혼탁, 비체계적 사고나 연상 등 제각기 다른 증상을 보였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자신을 찾는다든지, 침대 아래에 악마가 산다거나, 누군가 집을 공격한다고 믿기도 한다. 무서운 일은 감정이 극으로 치닫는 경우다. 주변 사람은 겁먹거나 절망할 수밖에 없다. 깊은 두려움을 내내 숨기고 살다가 단 한 번의 이해할 수 없는 폭력적 행동으로 가족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한다.

조현병은 의학적 정의·의견·접근법이 계속 바뀐다. 본질을 놓고 상반된 이론이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환자마다 증상이 다르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겪기 때문에 다루는 방법도 일정하지 않다.

아버지 돈(도널드 윌리엄 갤빈)이 찍은 가족 사진. 열두 남매와 어머니 미미(마거릿)가 히든밸리로드의 집 앞에 서 있다. [사진 다섯수레]

아버지 돈(도널드 윌리엄 갤빈)이 찍은 가족 사진. 열두 남매와 어머니 미미(마거릿)가 히든밸리로드의 집 앞에 서 있다. [사진 다섯수레]

게다가 여섯 형제에게 이 질환이 차례로 발견된 50~60년대는 지금보다 과학적 연구와 사회적 이해의 정도가 달랐다. 정신병원 수용과 전기충격요법, 심리요법, 명상요법 등이 적용됐다. 이처럼 구속·감금 등 비인권적 수단과 장기입원 치료는 50~60년대 클로르프로마진·할로페리돌 등 항정신병 약물의 개발과 63년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지역사회 정신보건법이 도입돼며 인권적인 치료와 수용 배제로 전환됐다.

또 다른 문제는 부모가 무언가를 했거나 하지 않아서 아이들이 이 질환에 걸린 것처럼 비난의 화살을 돌리던 시절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신의학자·신경생물학자·유전학자들은 유전적 배경은 있지만, 부모에서 자식으로 직접 전해지는 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지은이는 이런 상황에서 여섯 환자를 포함한 12명의 남매, 그리고 어머니 미미와 아버지 돈이 겪어야 했던 삶의 여정을 차분하게 그린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사랑하는 가족에게 상처를 받으면서도 최악의 상황을 견뎌온 막내 메리에게 초점을 맞춘다. 린지로 이름을 바꿨을 정도로 고통을 겪었지만 지긋지긋한 콜로라도를 떠나지 않고 병원에 입원한 큰오빠 도널드를 비롯한 가족을 보살피며 자신의 삶을 꾸려간다. 지은이는 이러한 논픽션 기록을 통해 환자들의 인간다움을 재발견하고, 가족의 의미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에 초점을 맞춘다. 병이 아닌 인간을 보자는 외침이다.

같은 부모를 둔 열두 자녀 중 여섯 형제에서 이 질환이 발병한 건 희귀한 일이다. 이 때문에 콜로라도대와 국립정신보건원, 하나 이상의 제약사가 그들의 유전물질을 연구하며 극복 방법을 찾고 있다.

조현병은 사실 인류의 거대한 도전 과제다. 현재 전 세계의 8200만 명이, 미국에선 300만 명이 앓고 있다. 인구 100명당 약 한 명꼴이다. 문제는 진단을 받은 환자가 미국 정신과 병상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증상이 있는 성인의 약 40%가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는 현실이다. 더욱 비극적인 건 환자 20명 중 한 명이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는 사실이다.

조현병은 정신·심리·신경 분야의 난제이자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다. 첫 기록은 독일의 전직 판사 다니엘 파울 슈레버가 1903년 출간한 『어느 신경환자의 회상록』이다. 망상 형태의 환각성 정신이상 진단을 받고 9년을 입원했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주치의와 우주 차원에서 정신적으로 교류 중이라며, 기이하고 경이로운 ‘망상’을 세세하게 기록했다.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를 읽고 ‘편집증 환자 슈레버-자전적 기록에 의한 정신분석’이라는 논문을 썼다. 프로이트는 조현병을 어렸을 때의 경험과 기억, 성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무의식에서 생긴 것으로 여겼다. 프로이트에게 이 책을 권한 카를 융은 조현병이 유전될 수 있는, 유기체이며 생물학적 질환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러한 견해 차이는 스승과 제자인 두 사람이 학문적으로 갈라서는 계기의 하나가 됐다. 조현병의 난해함을 보여주는 일화다.

환자가 내부와 외부의 세계, 즉 인식과 현실의 간극을 보인다는 이유로 한때 이 질환을 ‘정신분열증’으로 불렀다. 하지만 2011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뇌의 문제 때문에 적절한 긴장 유지에 문제가 생긴 질환이라는 뜻으로 조현병으로 고쳐 부르기로 했다. 영화 ‘사이코’‘이브의 세 얼굴’ 등에서 표현한 성격의 분열은 이 병의 본질을 호도한다는 게 지은이의 지적이다.

서울대 정신과학·뇌인지과학과 권준수 교수가 추천사에서 인용한 호주 학자 존 맥그레스의 비유는 이 병에 대한 이해를 도우면서 잔잔한 울림을 준다. “과거엔 고열을 하나의 질병으로 여겼지만, 이젠 단지 다양한 질병의 비특이적 반응으로 간주한다. 정신질환도 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단순 반응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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