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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헌법기관의 격 무너뜨린 감사원과 선관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00호 30면

감사원장 “국정운영 지원기관” 발언 물의

불공정 시비 자초, 신뢰 잃은 중앙선관위  

환골탈태해 정치 중립과 독립성 되찾길

최재해 감사원장이 사퇴 논란에 휩싸였다. 엊그제 민주당이 최 원장의 사퇴 촉구 결의안을 냈다. 지난 29일 법사위에서 최 원장이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말한 게 원인이다. 민주당은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법의 정신을 부정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최 원장이 사퇴 논란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감사원은 국회와 법원처럼 헌법에 명시돼 있는 기관이다. 대통령에 속해 있으나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직무에 관한 독립적 지위를 인정받는다(감사원법 2조). 핵심 역할은 회계검사와 직무감찰을 통해 정부를 견제하고 공직사회의 부패를 막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감사원장의 임기는 4년으로 헌법이 보장한다. 헌법과 법률이 감사원의 독립적 지위를 규정해 놓은 것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으로 정부의 감시·견제 역할을 하라는 취지다. 최 원장도 취임사에서 “감사원의 핵심 가치는 직무상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최 원장의 발언은 여당 소속인 김도읍 법사위원장마저 “귀를 의심케한다”고 했을 정도로 비판을 받고 있다. 법치주의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망언에 가깝기 때문이다. 단순 실수가 아니고 감사원에서만 28년을 근무한 그의 진심이 반영된 것이라면 사퇴하는 게 마땅하다. 말은 한번 내뱉으면 끝이지만, 그 파장은 길고 오래간다. 자칫 정치적·정파적이란 공격과 불신을 받기 쉽다. 최근 진행 중인 방송통신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 감사 등을 놓고 민주당은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의 사퇴를 압박하는 용도라며 반발하고 있지 않은가. “감사원의 갑작스러운 감사로 조직과 직원이 불이익을 겪을까봐 사퇴했다”(홍장표 전 한국개발연구원장)는 식의 발언도 바탕에 불신이 깔려 있다. 법이 정한 정상적 감사 활동조차 정치적 공방거리로 전락해 불필요한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감사원이 감사 의지를 밝힌 탈원전 정책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 역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다. 대선에서 등장한 ‘소쿠리 투표함’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4월 감사원이 이에 대한 직무감찰 계획을 발표하자 선관위는 “선관위를 직무감찰 하는 건 헌법기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반발했다. 그러면서 자체적 감사 혁신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후속조치로 지난 1일 사무처에 속한 자체 감사기구를 독립시켜 중앙위원회에 두겠다고 발표했다. 자체 감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감사원의 감사를 피해가겠다는 꼼수라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선관위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국민이 과연 얼마나 납득할지 의문이다.

특히 선관위는 문재인 정부시절 민주당 세력에 유리한 결정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2021년 4·7 재보궐선거에서 내로남불·위선·무능 등의 표현이 “특정 정당(후보자)을 유추시킨다”며 사용을 금지한 게 대표적이다. 반대로 올해 3월 대선에선 민주당의 현수막에 등장한 주술·굿판 등의 표현을 허용해 편향적이란 비판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헌법기관인 감사원과 선관위의 위상이 함께 추락한 것은 두 기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두 기관이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제 역할을 다하려면 그 어느 때보다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환골탈태의 노력을 해야 한다. 이제라도 감사원과 선관위는 두 기관을 독립적 헌법기관으로 정해 놓은 헌법 정신과 취지를 무겁게 곱씹어봐야 할 때다. 꼼수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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