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잘 못하는데 학교 가라고? ‘코로나 베이비’ 부모 분통

중앙선데이

입력 2022.08.06 00:04

업데이트 2022.08.0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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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호 02면

만 5세 조기입학, 엄마들은 왜 분노하나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만 5세 초등 취학 저지를 위해 집회에 참여한 학부모와 어린이가 개편안 철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만 5세 초등 취학 저지를 위해 집회에 참여한 학부모와 어린이가 개편안 철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광진구에서 2019년 2월생(4세) 아들을 키우는 이모(34)씨는 지난해 유독 말이 느린 아들의 발달상태가 걱정돼 병원을 찾았다. 어린이집에서 다른 엄마들이 “왜 뛰어다니는 아이가 아직 말을 못 하느냐”고 자주 물어 언어 지연 검사를 받기로 했다. 하지만 언어치료의 길은 험난했다. 지난해 6월 인근 대학병원에 방문해 검사를 신청했지만, 대기 환자가 많다는 이유로 2개월 후인 지난해 8월에야 겨우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이씨는 “진단 후에도 치료를 받기까지의 대기만 7개월이라 올해 1월에야 언어치료사와 처음 만날 수 있었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언어 발달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많다는 건 주위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작년 언어장애 2017년 대비 30% 늘어

경기도 수원에서 4살 딸을 키우는 엄모(38)씨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2월 인근 대학병원 재활의학과에서 언어 지연 진단검사를 받으려 했으나 검사 대기만 1년이라는 말에 결국 진단검사를 포기했다. 엄씨는 “대학병원에서 진단을 받아야만 진료비도 경감되고, 정확한 치료도 가능한데 1년을 기다리기엔 아이에게 너무 긴 시간”이라며 “두 살 터울의 오빠와 동일하게 키웠음에도 마스크 때문에 언어를 익히는 속도가 너무 느려 걱정이 크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2일 서울 내 언어치료센터 3곳에 직접 문의한 결과 언어 지연 등 말하기·언어장애를 진단받은 후 즉시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 곳은 하나에 불과했다. 나머지 2개 기관은 모두 현재 치료 중인 아동들이 치료를 중단할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5세 미만 말하기·언어장애 환자 수는 2017년 7075명에서 지난해 9219명으로 30% 정도 늘었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상담센터의 직원은 “과거에는 자폐스펙트럼장애나 정서발달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의 방문이 잦았는데, 최근에는 언어치료가 독보적으로 많다”며 “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를 착용하다 보니 기존에는 정상 발달과정을 밟았을 아이들도 말이 느려 센터를 찾곤 한다”고 전했다.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교육부는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지능·언어 발달에 어려움을 겪는 ‘코로나 베이비’ 학부모에게 기름을 부었다. 지난달 29일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교육 기능을 강화하는 유보통합과 모든 아이가 1년 일찍 초등학교로 진입하는 학제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만 5세 입학 시행 첫 세대인 2019년 이후 출생자들이 코로나19의 영향을 직격으로 받은 세대라는 점이다. 이들은 만 1세가 되던 해 코로나19 확산으로 타인과의 접촉이 최소화돼 가족을 제외한 사회구성원과 소통할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보육시설 내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감염 방지를 위해 칸막이를 사용하다 보니 놀이 위주의 교육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아이들은 입 모양으로 언어를 익히는 언어발달이나 사교성 발달에 특히 어려움을 겪었다. 가뜩이나 사회적 재난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기존보다 1년 빠르게 입학시킨다는 구상에 학부모는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다. 5일 오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장관의 사퇴와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오후에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45개 시민단체가 모인 ‘만5세초등취학저지를위한범국민연대’가 총궐기대회를 열어 “학부모를 불안에 떨게하고 영유아의 놀 권리를 침해하는 정책을 즉각 철회하라”며 윤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최윤경 육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에도 보육 공백을 막기 위해 어린이집·유치원의 문을 열었지만 아이들이 받는 타격은 상당했다”며 “여전히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발달지연 문제는 계속 이어질 것이고, 특히 취약계층 등 같은 세대 내 격차는 코로나 이전 세대와 분명한 차이를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베이비 세대의 발달 지체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과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서울·경기지역 국공립어린이집 원장 및 교사, 학부모 145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어린이집 원장 및 교사의 71.6%, 학부모의 68.1가 ‘코로나19가 아동의 발달에 영향을 줬다’고 답변했다. 바깥 놀이가 위축돼 신체 발달이 지연되고(77.0%), 마스크 사용으로 인해 언어 발달이 지연됐으며(74.9%), 과도한 실내 생활로 인한 정서적 문제(63.7%) 및 사회성 발달 문제(55.5%)가 발생했다고 답했다.

서울에 위치한 공립유치원의 교사 이모(29)씨는 “영유아는 놀이를 통해 언어를 익히고, 사회성을 습득하게 되는데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이런 기회 자체가 차단돼 발달에 악영향을 미쳤다”며 “코로나19 확산 이전에 가르치던 아이들과도 확연히 달라 교사들 사이에서도 대응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어린이집·유치원에서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의 타격도 적지 않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인 주모(32)씨도 “지난 2년간 입학한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배웠어야 할 생활습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며 “조기입학 정책을 펼치면 코로나 베이비 세대가 겪을 간극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학기 학사 운영 방안을 설명한 뒤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있다. 박 부총리는 브리핑 후 질문을 받지 않고 자리를 떴다. [연합뉴스]

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학기 학사 운영 방안을 설명한 뒤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있다. 박 부총리는 브리핑 후 질문을 받지 않고 자리를 떴다. [연합뉴스]

특히 도입 초기 조기입학을 해야 하는 2019년 1~3월생, 2020년 1월~6월생 등 ‘통합시기’에 태어난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들은 더욱 분통이 터진다. 2019년 2월 아이를 출산한 최이레(35)씨는 연말에 아이를 낳으면 또래와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주변의 권유에 시기에 맞춰 계획 임신, 출산했다. 최씨는 “어린이집의 4세 반 아이들 사이에서도 인지발달이 월등한 수준이고, 연말에 태어난 아이들과의 차이가 커 비슷한 개월의 아이들이 많은 어린이집으로 옮겨야 할지 고민까지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 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최씨의 아이는 함께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2018년 1월생과 약 13개월가량 차이가 벌어진다. 최씨는 “아이들은 하루하루가 다른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정책을 바꾸면 피해를 볼 아이들의 손해는 누가 보완해주느냐”라며 “지능발달 차이는 물론 신체적 발달 차이도 크기 때문에 만약 정책을 강행한다면 무조건 입학을 유예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반대 의견이 절대적으로 많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실이 지난 1∼3일 교직원·학생·학부모 13만1070명을 대상으로 ‘초등학교 만 5세 입학 연령 하향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97.8%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학생 발달단계에 맞지 않아 연령이 낮은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 있으며(68.3%), 영·유아 교육시스템이 축소·붕괴할 수 있고(53.3%), 조기교육 열풍으로 사교육비가 폭증할 수 있다(52.7%)는 점을 꼽았다.

‘빠른 입학’ 폐지 후 입학 유예 더 많아

전문가들은 만 5세 입학 정책에 대해 아이들의 발달단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권정윤 성신여대 유아교육과 교수(한국4년제유아교사양성대학교수협의회 회장)는 “만 5세 수준의 아이들은 신체적 발달에서부터 월령에 따른 차이가 크다”라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도 이 차이가 이어지는데, 이런 발달과정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채 정책을 편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만 5세를 조기 취학시키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가 사회적 취약계층의 보육을 강화하겠다며 5세 취학 정책을 들고나온 것에 대해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이 발생했을 시점 학교는 문을 닫았지만,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끝까지 긴급보육을 진행했다”며 “보육에서는 학교보다 아동 보육기관이 더 적절하다는 증거”라고 반박했다.

2009학년도부터 1~2월생의 ‘빠른 입학’ 제도가 폐지된 이후 조기입학보다 입학유예자가 더 많다는 점도 만 5세 입학에 부정적인 요인이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연간 초등학교 조기 입학자는 2009년 9707명으로 고점을 찍은 뒤 지난해에는 537명까지 줄었다. 오히려 입학유예 아동 수가 757명으로 더 많다. 조형숙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한국영유아교원교육학회 회장)는 “조기입학을 할 경우 학교 부적응이나 스트레스 등의 부작용이 뒤따른다는 것은 이미 연구결과로 증명된 사실”이라며 “만 5세에는 정서발달과 사회적응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졌기에 이 정책은 반드시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국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만 5세 입학을 강행해도 실제 법 개정까지는 진통이 따를 전망이다. 취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기 위해선 초·중등교육법상 만 6세로 규정된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개정해야 하는데,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다수가 이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설문조사 결과 이미 절대다수의 국민이 만 5세 입학 추진 정책을 반대한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대선 공약이나 국정과제에도 없었던 이 정책은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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