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의 ESG인사이트] ESG 혁명기를 극복하는 위너의 길

중앙일보

입력 2022.08.05 15:39

업데이트 2022.08.05 15:41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혁신은 풍요와 순항 속에서 오지 않는다. 혁신은 문제와 한계 속에서 나온다. 큰 문제일수록 큰 기회가 되고, 더 큰 한계일수록 더 큰 성공의 단초가 되는 법이다. 인간이나 조직은 문제와 제약에 직면할 때, 생존과 번영을 위해 본능적 대응 강도가 더욱 높아지는 까닭이다. 과거의 묵은 생각과 관행들을 떨쳐 내려고 몸부림치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각을 더 크게 갈구하며 집중력을 크게 높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궁하면 통한다"라는 혁신의 회로가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한다.

불가항력적 문제와 강압적 제약에 직면할 때 우리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루저의 방식’과 ‘위너의 방식’이 그것이다. 루저는 문제와 제약을 애써 회피하거나 폄훼하며 그것들을 핑곗거리로 삼기에 급급해한다. 반면 위너는 그 조건들을 상수로 놓고 그것을 혁신과 창발의 호기로 받아들인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길 방도를 찾는다. 양자 간 이러한 초동 대처의 차이는 후일 광대한 격차를 낳는다.

문제를 기회로 바꾼 나라 중 핀란드는 대표적이다. 노키아(Nokia)는 강소국 핀란드의 자존심이자 자랑거리였다. 한때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24%, 일자리의 10%, 연구개발(R&D)의 30%, 법인세의 23%를 차지했었다. 하지만 2010년 노키아가 몰락하면서 핀란드 경제도 동반 몰락했다. 그 여파 등으로 2012년부터 4년 동안 핀란드경제는 역성장했다. 수도 헬싱키(Helsinki)는 ‘지옥 헬싱키(Hell Sinki)’로도 불렸다. 각종 평가에서 국가경쟁력 1, 2위를 차지했던 핀란드의 순위도 추락했다. 자타 공인 강소국 핀란드에 닥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궁즉통’의 신묘한 혁신 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핀란드는 스타트업 창업에서 재도약의 실마리를 풀었다. 인재들의 블랙홀이었던 노키아가 인재들의 화이트홀이 되었다. 노키아에서 쏟아져 나온 인재들이 앞다퉈 창업 전사가 되었다. ‘앵그리 버드’로 유명한 ‘로비오(Rovio)’, ‘클래쉬오브클랜스’로 빅히트를 친 ‘슈퍼셀(Supercell)’ 등과 같은 글로벌 게임 기업들도 나왔다. 노키아라는 공룡기업에 안주했던 핀란드 경제가 변모했다. 혁신이 꿈틀대는 벤처 창업 국가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4차 산업혁명 친화형의 경제로 거듭났다.

기실 핀란드 정부는 80년대부터 벤처 생태계를 육성해왔었다. 벤처 생태계에 드리워진 공룡 기업의 그림자가 걷혔기 때문일까. 노키아의 음영이 걷히자 그간 축적된 정책들이 빛났다. 그 한복판에, 지금은 핀란드 고용경제부 산하 ‘비즈니스 핀란드(Business Finland)’로 통합된 ‘테케스(TEKES, 기술혁신지원청)’가 있었다. 테케스는 스타트업들의 연구개발(R&D) 단계부터 회수(Exit) 전 주기 동안 동반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로비오’같은 경우에도 50번 실패하고 51번째 시도에서 ‘앵그리 버드’를 탄생시켰다. 50번 좌절의 순간에도 테케스는 그 곁을 지켰다. 모름지기 모험 자본의 장기 인내 투자란 이러한 것이다.

한편 테케스는 단순히 자금만 대는 것으로 정책금융의 역할을 한정 짓지 않았다. 즉 ‘투자를 넘어선 금융(Beyond Investment)’을 실천했다. 투자 이후 기업 성장 단계마다 기술, 특허, 재무, 인사, 마케팅, 법률 등 다양한 전문성을 제공하며 도왔다. 테케스는 스타트업들에게 필요하지만 부족한 다양한 서비스들의 맞춤형 원스톱 제공자였다.

화제를 바꿔 보자. 미래의 사가들은, 21세기 초엽을 4차 산업혁명과 ESG 혁명이 동시에 일어난 시대라고 기록할 것이다. 이미 하버드대학의 리베카 헨더슨 교수는 ESG를 이렇게 적고 있다. ‘자본주의를 다시 상상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라고! 즉 기업경영에 있어서 사람을 수단으로 인식했던 과거와 현재에서 사람을 목적으로 놓는 방향으로, 개발의 대상이었던 지구생태계를 인간과 대등한 동반자의 관계로 재설정하는 방향으로, 정보의 무한 복제와 유통이 가능한 디지털 세상에서 더욱 예민한 투명성과 섬세한 공정성을 요청하는 방향으로 자본주의는 급속히 변하고 있다. 이것이 곧 ESG 혁명이자 ESG 시대정신이다.

이 불가항력적 시대정신에 대응할 때도 우리 앞에는 두 가지 갈림길이 있다. 위너의 길과 루저의 길이 그것이다. 위너는 피할 수 없다면 즐길 방도를 찾지만, 루저는 피할 방도만을 찾는다. 루저는 이 시대정신을 폄훼하며, 혹세무민형의 논거를 세워 이를 비틀어 설파한다. 예컨대, 기후변화를 여전히 비과학적이라 비판한다. ESG 친화적인 MZ세대로 경제활동인구가 교체되는 현상도 호도한다. ESG가 무역장벽이자 재무 위험이란 명제에도 눈감으라고 한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면 해결될 것이라고 현혹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언행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ESG 혁명을 대응하기 위한 위너의 길은 무엇일까. 핀란드에서 답을 찾자. 핀란드 정부는 테케스 등 관련 정부 기관들을 통합해 ‘비즈니스 핀란드’를 세웠다. 이곳에서 스타트업들의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 원스톱 정책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기 인내 투자도 한다. 투자를 넘어서 다양한 자문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처럼 한국에서도 부처별로 각기 추진되는 ESG 관련 정책 역량을 한곳에 모을 필요가 있다.

가칭 ‘ESG 혁신 코리아’의 설립을 제안한다. 여기서 ESG 관련 정책금융을 통한 투·융자, 보증, 연구개발, 공시기준 수립, 교육 및 인력양성, 기술 지원, 글로벌 동향 연구, 해외 진출, 스케일업 투자 등 다양한 지원들이 함께 제공될 수 있다. 정책의 분절과 중복도 최소화할 수 있다. 경쟁력 있는 ESG 기술, 기업, 프로젝트 등에 장기 모험 인내투자를 한다. 투자를 넘어선 다양한 자문과 서비스도 제공한다. 여기서 글로벌 ESG 혁명의 선도국가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이것이 ‘탄소 중심적’ 국내 중추산업들의 문제와 한계를, ‘탄소 중립’, ‘사람 중심’, ‘투명성 제고’라는 ESG 경제의 기회로 반전시키는 일이다.

핀란드는 노키아가 쓰러진 이후, 본격적으로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우리는 핀란드와는 달라야 한다. 한국의 탄소 중심 핵심기업들이 추락하기 전에 선제 대응해야 한다. 한국의 노키아들이 추락하기 이전에 ‘궁즉통 극즉반(窮則通 極則反)’의 태세를 미리 갖춰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