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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겁쟁이"…부시 '바지사장' 만든 막강 부통령의 직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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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9일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이 한 토론회에 참석한 모습. AFP=연합뉴스

2011년 9월 9일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이 한 토론회에 참석한 모습. AFP=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거물로 꼽히는 딕 체니(81) 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미국의 246년 역사에서 도널드 트럼프보다 우리 공화국에 더 큰 위협을 가한 사람은 없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겁쟁이”라고 맹비난했다. 체니 전 부통령은 장녀 리즈 체니(56) 하원의원의 와이오밍주 공화당 경선 캠페인 광고에 출연해 이같이 주장했다고 CNBC와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이 보도했다.

체니 전 부통령은 이날 오후 온라인에 공개된 60초 분량의 캠페인 광고 영상에서 “트럼프는 유권자들에게 외면당한 뒤 권력을 유지하려고 거짓말과 폭력을 동원해 지난 선거를 훔치려고 했다”며 “그는 겁쟁이다. 진정한 남자는 지지자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선거에서 패배했고 크게 졌다. 나도 알고, 그도 알고, 공화당원도 대부분이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캠페인 광고 제목도 ‘그는 알고 있다’이다.

反트럼프 선봉에 선 부녀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오른쪽)이 지난 6월 6일 장녀 리즈 체니 하원의원과 의회를 방문했다. AP=연합뉴스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오른쪽)이 지난 6월 6일 장녀 리즈 체니 하원의원과 의회를 방문했다. AP=연합뉴스

그의 이번 발언은 딸인 체니 의원의 선거가 2주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나왔다. 체니 의원은 와이오밍 의석을 두고 오는 16일 치러지는 경선을 앞두고 있지만,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지지하는 해리엇 헤이그만 후보에게 큰 격차로 뒤처져있다. 헤이그만 후보는 한때 트럼프 집권을 반대했지만, 집권 이후엔 “트럼프는 내 인생 최고의 대통령”이라며 입장을 바꿨다. 트럼프는 헤이그만 후보를 앞세워 체니 의원의 낙선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네오콘의 보스’인 아버지가 자신의 정치적 고향과 딸을 지키기 위해 직접 지원사격에 나선 것이다.

리즈 체니 의원은 공화당 내 대표적인 반(反) 트럼프 인사다. 그는 지난해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태 직후 “트럼프가 폭도들을 집결시켰다”고 비판했고, 이후 연방하원의 트럼프 탄핵소추안 표결 때도 찬성표를 던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시 체니 의원을 “끔찍한 인간”이라고 비난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체니 의원은 당내 권력 서열 3순위인 의원총회 의장이었지만, 당 지도부와 갈등 끝에 의장직까지 박탈당했다. 현재 ‘1ㆍ6 의회 난입 사태’ 하원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체니 전 부통령은 그런 딸을 두고 “리즈는 두려움이 없다. 그는 결코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는다”고 응원에 나섰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집무실에 다시는 가까이 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보다 리즈가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은 없다”며 ”그녀는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부부는 리즈가 진실을 옹호하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부시 행정부 막강 실권자 ‘네오콘 보스’  

2001년 9월 12일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과 백악관에서 회의 중인 딕 체니 부통령(왼쪽에서 세 번째). 부시 대통령 왼쪽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 AP=연합뉴스

2001년 9월 12일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과 백악관에서 회의 중인 딕 체니 부통령(왼쪽에서 세 번째). 부시 대통령 왼쪽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 AP=연합뉴스

체니 전 부통령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시절 8년간 부통령을 지냈다. 당시 그의 말 한마디면 바로 정책이 되고, 부시 대통령은 ‘바지사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막강한 실권을 행사했다. ‘네오콘의 보스’로서 부시 대통령이 당시 북한과 이란ㆍ이라크 등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도,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그의 작품이다.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바이스’는 그를 “역사상 가장 비밀스러운 권력자”라며 “그가 이면에서 내린 결정은 세계의 흐름을 바꿔놓았다”고 평가한다.

10년간 와이오밍 하원의원을 거쳐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국방장관을 지낸 뒤 대선 출마를 검토했지만, 꿈을 접고 아예 정계에서 은퇴했다. 동성애에 반대하는 공화당과 동성애자인 둘째 딸 사이에서 한 선택이었다. 그는 이후 에너지기업 최고경영자(CEO)로 있다가 아들 부시의 삼고초려로 외교ㆍ국방 위임을 약속받고서야 2000년 대선 러닝메이트로 출마했다. 지난해 ‘1ㆍ6 의회 폭동 사태’ 직전 트럼프가 “리즈 체니와 같은 아무 쓸모가 없는 허약한 의원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연설하는 것을 생중계로 보고 딸에게 바로 전화해 안전한 곳으로 피하도록 하기도 했다.

한때 세계 최강 대국을 주름잡았다는 자신감에서였을까. 체니 전 부통령은 이번 영상에서 자신이 “딕 체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나는 딕 체니입니다. 나는 자랑스럽게 딸에게 투표했습니다. 당신도 그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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