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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대통령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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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

근래 윤석열 대통령에게 조언이 쏟아지는데, 몇 가지를 보태려고 한다.

학제 개편안 두고 또 메시지 혼란 #'대통령의 언어' 수준 도달해야 #참모들, 실력·멘털·로열티 있나

“취학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박순애 사회부총리로부터 교육부 업무보고를 받고 했다는 발언이다. 학제 개편안에 드라이브를 걸라는 지시로 받아들여졌다. 대통령실 관계자의 설명은 좀 달랐다. “박 장관이 의견 수렴을 해서 연말에 결정하겠다는 취지로 보고했고, 대통령이 그걸 신속하게 하라고 한 것이다.” 당장 실시는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사실 학제 개편안은 이번에 뚝 떨어진 게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비전2030’에 담긴 내용이고, 이명박 정부 미래기획위의 제안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교육위도 만 5세 방안을 내놓았다. 지금껏 한 발도 못 나아간 건 최근의 반발에서 실감하듯 쉽지 않은 과제여서다.

다시 봐도 대통령실이 보다 정밀하게 조절된 메시지를 내놓았어야 했다. 실제 며칠 뒤 ‘신속한 공론화’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처음엔 왜 그리 나왔을까. 대통령실 내부의 진단이 필요해 보인다.

진정 문제인 건 ‘대통령의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는 해명이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다. 구조적이다. 먼저 윤 대통령 요인이 있다. 대통령의 언어는 최종적이어야 한다. 해당 사안에 대한 마지막 발언(결정)에 해당하는 무게를 지녀야 한다는 뜻이다. 이해관계의 복잡계를 파악·이해하고 최선의 발언을 찾아내는 과정을 거친 후 발화(發話)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언어는 안타깝게도 단정적이긴 해도 최종적이진 않다. 때론 불필요하게 거칠고, 종종 오해를 낳고("국기 문란"), 가끔 논리나 표현법이 일반인과 어긋나("훌륭한 장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과천분원에서 열린 장?차관 국정과제 워크숍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과천분원에서 열린 장?차관 국정과제 워크숍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많이들 잊었겠지만 역대 대통령 중에서 비교적 거침없이 말했던 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국민 평가는 작년에 포기했다” “쪽 팔린다” 등등, 다들 기함했다. 그가 임기 말에 ‘제왕’이란 표현을 쓰며 이렇게 후회했다. “제왕의 위엄이란 게 있다. 어떻든 고상한 언어랄까, 제왕의 위엄에 어울리는 언어가 있는데 그걸 갖추려 노력은 했는데….”

윤 대통령이 과도하게 직관에 의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도 있다. 잘될 거란 낙관 속에서 ‘감’으로 말하고 결정한다는 느낌을 주곤 했다. 저절로 잘되는 건 없다.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은 그나마 운이 좋았다. 다른 정책이나 인사에선? 이미 여파를 보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6월 말 토론회에서 국무회의 분위기를 전하며 한 말엔 징조가 담겼다. “대통령이 지적하고 제기하거나 요구하는 문제들은 후속 작업이 아주 집중적으로 진행된다. (중략) 한편으로는 치밀한 준비와 뒷받침 없이 해서 지시가 됐는데, 그것은 잘되고 다른 부작용이 나오면 어떨까 해서 조금 더 시스템으로 치밀하게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 이런 걸 느끼고 있다.” 직관은 경험과 학습의 산물이다. 대통령으로서 지금은 ‘직관’을 자신할 때가 아니다. 외려 ‘자신감은 넘치되 국정 이해도가 바닥’(스티븐 헤스)이란 겸손함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치 초년병’인 윤 대통령이 참모들의 적절한 조력을 받는지도 궁금하다. 존 F 케네디의 핵심 참모였던 테드 소렌슨은 “대통령 스피치라이터로서 내 성공은 케네디를 잘 알고 오랜 시간(11년) 함께 일하고 대화한 덕분이다. 이런 성공은 그 이후 되풀이될 수 없었다”고 적었다. 윤 대통령의 홍보수석은 첫 회의 때 윤 대통령에게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사적 채용’ 논란이 있지만 대부분 참모는 윤 대통령과 연(緣)이 극히 짧다. 대통령 스타일을 잘 모르니 “너무 오버하거나 너무 조심”하는 양극단을 오간다고 한다. 누군가는 “실력이 없거나 멘털이 약하거나 정무감각이 없거나 로열티가 없다”고 혹평했다. 참모들이 대통령의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증폭하는 것처럼 보인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달라질 건가. 윤 대통령은 ‘1회 대량 실점’(박성민 정치컨설턴트)으로 출발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