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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질환 90% 진단, 의료기 게임체인저 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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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27) 의료 스타트업 AMCG

세계 1위, 국내 2위의 사망 원인은? 정답은 심장질환이다. 국내 사망 원인 1위는 암(癌)이지만, 최근 심장질환 사망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인구 10만 명당 46.9명이던 심장질환 사망자 수는 2020년 63명으로, 10년 새 34% 이상 늘어났다. 식단 등 생활 식습관이 서구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문제는 진단이다. 대표적 심장질환 중 하나인 협심증의 경우 흔히 심전도(心電圖) 검사를 통해 처음 알게 되는데, 그 측정 민감도가 28% 불과하다. 오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뜻이다. 컴퓨터단층촬영(CT)의 경우 70%, 양전자단층촬영(PET-CT)는 80%까지 진단 정확도가 올라가지만, 진단 비용이 비쌀 뿐 아니라 방사선에 노출되는 위험도 있다.

심장에서 나온 미세 자기장 측정
심전도·CT보다 정확도 크게 높여
방사선 걱정 없고, 진단시간 짧아
외국산 대비 성능·효율 끌어올려


심장질환 진단과정 2단계로 줄여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심자도 기술을 이전받은 AMCG의 한오석 대표(오른쪽)와 표준연의 이용호 박사. 두 사람 뒤로 최근 개발을 마친 최신형 심자도 진단장치가 보인다. 장진영 기자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심자도 기술을 이전받은 AMCG의 한오석 대표(오른쪽)와 표준연의 이용호 박사. 두 사람 뒤로 최근 개발을 마친 최신형 심자도 진단장치가 보인다. 장진영 기자

지난해 3월 창업한 의료장비 스타트업 AMCG는 심장질환 진단장비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를 노리는 기업이다. 심장질환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허혈 진단에서 AMCG의 진단 민감도는 90%에 달한다. 비결은 심자도(心磁圖)다. 즉 심장 근육에서 발생하는 심근전류가 만들어 내는 미세한 생체 자기장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심자도를 이용하면 진단 정확도가 높아질 뿐 아니라, 방사선 노출 위험이 없고, 조영제나 약물 투입도 필요 없고, 진단에 걸리는 시간도 짧다. 기존 심장질환 진단의 경우 동네 의원에서 심전도 검사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운동부하 검사-심장초음파-흉부 CT-혈관조영촬영 등 5단계 이상을 거쳐야 하지만, 심자도 검사를 이용하면 2단계로 줄일 수 있다.

한오석 AMCG 대표는 “심장진단 장치는 그동안 혈관을 보는 것에 집중되었다”며 “실제 심장근육 활동은 심근세포 전류가 정상적으로 흐르고 있는가가 중요한데 이를 가장 정확히 볼 수 있는 것이 심자도”라고 말했다. 그는 “고속도로가 막혀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기존의 진단기술이라면 심자도는 차량이 실제로 잘 이동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AMCG가 세계 유일의 심자도 측정 장비업체는 아니다. 독일과 일본에도 같은 방식의 의료장비 업체들이 있다. 하지만 AMCG의 경우 심자도 센서가 타사보다 30% 이상 많은 96채널에 달하고, 영하 270도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장치를 위한 고가의 헬륨을 액화해 100% 재활용하는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재활용 기술이 없을 경우 헬륨 보충 비용만 연간 1억원 이상 들어간다.

헬륨가스 재활용 기술도 확보

AMCG는 지난 6월 초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료기기 품목허가도 받았다. 진단 정확도와 안전성에 대해 국가로부터 인증을 받았다는 얘기다. 앞서 지난해 말에는 유안타 등으로부터 100억원의 프리A 투자유치도 받았다. 올해는 연말까지 50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유치도 계획하고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 대표는 “2024년 기업공개와 함께 장비 양산을 시작하고, 2027년까지 약 3000억원의 연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며 “이제 막 시작한 기업이긴 하지만, 세계 최고의 기술을 바탕으로 GE나 필립스 등 세계적 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는 의료기기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창업 2년차, 직원 26명에 불과한 스타트업의 꿈이 국내를 넘어 세계를 무대로 뻗는 건 탄탄한 기술력 덕분이다. 정부 출연 연구소인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오랜 기간 연구·개발(R&D)한 심자도 측정 특허기술을 이전받았다. 이른바 R&D 기반의 딥테크 기술 창업인 셈이다. 표준연은 그 대가로 AMCG로부터 22억원을 선급 실시료로 우선 받고, 장비 1대를 팔 때마다 1500만원의 경상기술료를 받는다.

특허기술의 주인공은 표준연에서 초전도양자컴퓨팅시스템연구단을 이끄는 이용호 단장(책임연구원)이다. 이 단장은 KAIST 물리학 박사 출신으로, 1989년 표준연에 입사해 첫 임무로 연구소에 필요한 정밀측정 수단인 초전도양자간섭장치(SQUID·Superconducting Quantum Interference Device) 개발을 맡았다. SQUID는 초전도체에서 일어나는 양자현상을 이용한 초고감도 자기(磁氣) 센서로, 인류가 개발한 자기장 센서 중 가장 민감한 센서다. 주로 기초과학·의료진단·자원탐사·양자컴퓨터 등에 쓰인다.

이용호 단장은 “연구소의 정밀 측정 업무에 필요한 SQUID 센서 및 측정기술을 개발하다가 심장이나 뇌에서 나오는 생체 자기 신호를 측정하면 의료용 진단기기로도 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심자도 측정장치 개발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표준연 R&D기술 사업화에 성공

기술사업화의 첫 성과는 2010년에 나왔다. 표준연의 독보적 기술을 알아본 독일 의료기기 제조업체 바이오마그네틱파크와심자도 측정장치 기술이전 계약을 했다. 당시 선급기술료 15억5000만원에 2030년까지 장비 판매 매출의 3%를 경상기술료로 받기로 했다. 국내 출연연이 개발한 기술을 외국기업에 이전하는 것에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 대기업 중에 표준연의 심자도 기술에 관심을 가지는 곳이 전무했다.

아쉽게도 바이오마그네틱파크로 기술 이전은 사실상 실패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헬륨 리사이클 기술이 없다 보니 비용이 많이 들었고, 대규모 투자도 이뤄지지 않았다. 새로운 장비가 만들어낸 데이터에 대한 의료진의 판독 능력도 떨어졌다. 결국 표준연의 기술이전 수입은 15억5000만원의 선급기술료에 그쳤다. 자연스럽게 기술이전 계약도 해지됐다.

이후 표준연은 센서 채널수도 보강하고, 헬륨 리사이클 장치도 만들어 기존의 단점을 보강했다. AMCG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심자도 측정 하드웨어 기술에, 인공지능(AI) 딥러닝 소프트웨어 기술을 더해 데이터를 읽어내는 알고리즘을 더욱 쉽게 만들어 낼 계획이다. 제품 상용화까지 남은 AMCG의 마지막 숙제다. 한 대표는 이를 ‘마지막으로 남은 죽음의 계곡’이라고 표현했다.

건강보험 심사현장서 쌓은 경험

이용호 단장은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도 왜 직접 창업에 나서지 않았을까. 그는 그 이유를 의료기기의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단장은 “고가의 의료기기를 직접 창업하려면 많은 돈과 인력, 시간이 필요하다”며 “품질관리(GMP)와 안전성검사, 품목허가, 임상시험 등을 해야 하므로 연구소 기업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한오석 대표다.

한 대표는 약대 출신으로, 대부분의 경력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지냈다. 보험수가 등을 위해 약효나 의료장비의 성능을 평가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오다 보니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심자도 측정기술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간의 쌓아온 네트워크로 창업 자본도 끌어올 수 있었다. 이용호 단장은 AMCG의 임직원이 아니지만, 기술개발자로서 심자도 시스템의 설계와 제작·설치뿐 아니라, 기술 교육과 지도도 해오고 있다. 정부 출연 연구소 연구원의 경우 직접 창업한 경우가 아니면 겸직을 제한하고 있다. 연구자가 기술을 이전한 회사에 또 다른 직을 두는 것은 이해 충돌 소지가 있다는 논리다.

한 대표는 이런 겸직 금지 규정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기술이전을 받는 회사 입장에서 보면 기술을 개발한 연구자가 초기 단계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와서 기술 이전이 완성될 때까지 해주길 굉장히 바란다”며 “표준연의 경우는 기술이전 계약에 ‘기술교육과 지도’까지 들어가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정부 출연연구소의 기술을 이전받는 모든 업체의 불만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국책연구소가 개발한 기술을 이전받아서 성공한 회사가 많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연구소가 기술이전을 해놓고 이후엔 매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혁신생태계 조성의 전제 조건

한 대표는 국산 의료장비에 대한 의료계의 불신도 관련 국내 스타트업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는 “식약처 허가를 받은 의료장비라면 국기기관으로부터 성능과 안전성을 입증받은 것인 만큼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라도 병원에서 국산장비를 적극적으로 쓸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홍순정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성과일자리정책과장은 “AMCG는 정부 출연연 연구자가 오랫동안 기초연구해 온 것을 기술사업화한 대표적 사례”라며 “이런 스타트업들이 성장해 세계시장에 진출하거나 국내 대기업에 제값을 받고 인수되는 등 혁신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가 조성돼야 한국이 퍼스트무버(first mover) 국가로 변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