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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쌍꺼풀, 수술비는 같다…간호사 죽음 뒤엔 이런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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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아산병원 30대 간호사가 지난달 24일 출근 직후 뇌출혈(뇌동맥류)로 쓰러진 후 수술할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다른 데도 아닌, 국내 최고병원에서 일어난 일이라 충격이 컸다. 파장이 커지자 보건복지부는 4일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뇌동맥류는 뇌혈관 벽이 약해져 꽈리처럼 부풀어 있다가 터지는 초급성 뇌질환이다.

뇌출혈 수술은 신경외과 의사(Neurosurgeon)가 한다. 그날 아산병원엔 신경외과 세부과목인 뇌혈관외과 의사가 온콜(On-call, 전화로 호출) 당직을 서다 응급 시술을 했다. 그 의사는 머리를 여는 개두(開頭) 수술 전문이 아니어서 대퇴부로 관을 삽입해 여기를 통해 얇은 백금 철사를 뇌로 보내 출혈부위를 막는 중재시술을 했다. 그 방법으로 출혈이 멎지 않자 개두수술 의사를 수배해 서울대병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아산병원에는 개두수술 의사(뇌혈관외과)가 2명 있는데, 1명은 해외에 나갔고, 다른 1명은 지방에 있어서 골든타임에 올 수 없었다고 한다.

뇌혈관조영술로 촬영한 뇌동맥류 모습. 혈관 벽이 약해지면서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뇌혈관조영술로 촬영한 뇌동맥류 모습. 혈관 벽이 약해지면서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은 병상 2943개, 의사 1659명(치과의사 제외)의 국내 최대병원이다. 신경외과 의사만 25명이다. 그런데 개두수술 의사는 2명이다. 여기만 그런 게 아니다. 중앙일보가 4일 전국 주요 상급종합병원의 신경외과 전문의 실태를 조사했더니 병원별로 1~5명에 불과했다. 서울아산·삼성서울 등 서울의 '빅 5' 병원도 2~4명이다. 정부가 설립비 15억원, 이후 10년 간 운영비 일부를 지원하는 권역별 심뇌혈관질환센터 13곳도 사정이 비슷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국 뇌혈관 개두 수술 의사를 합쳐도 146명에 불과하다. 심평원에 등록된 신경외과 의사 3025명(6월 기준)의 5%이다. 대한신경외과학회가 3~4일 전국 89개 수련병원(전공의 교육을 하는 큰 병원)을 조사했더니 이렇게 나왔다. 병원당 1.68명이다. 60대 이상이 24명이다. 코일 중재시술 의사는 130명, 둘 다 가능한 의사는 120명이다. 대한신경외과학회 김우경 이사장(가천대 길병원 원장)은 "수련병원 89곳에 뇌혈관 개두수술을 하는 의사가 없는 곳이 있다. 이런 병원 주변 주민이 뇌동맥류에 문제가 생기면 비극적인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분당서울대병원 뇌혈관외과 방재승 교수는 인터넷 댓글에서 "서울아산병원 뇌혈관외과 의사 2명이 365일 '퐁당퐁당 식' 당직근무를 했다"며 "나이 50세 넘어서까지 자기 인생을 바쳐 과로하면서 근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라고 말했다. 최석근 경희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우리 병원은 뇌혈관 전문의 2명이 돌아가며 당직을 선다. 전날 응급환자를 수술하고 다음날 중요한 혈관 수술이 3개 잡혀 있을 땐 힘이 들고 인력 부족을 체감한다”며 “명예와 사명감을 갖고 20년 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뇌혈관 외과 의사가 얼마 안 되지만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뇌동맥류 개두수술 환자는 크게 증가한다. 심평원에 따르면 2017년 9469명에서 지난해 1만3769명으로 4년만에 45% 증가했다. 지난해 뇌출혈로 인한 혈종제거 개두수술 환자가 4014명, 뇌의 아랫부분 출혈이 발생한 뇌기저부 개두수술 환자가 503명도 뇌혈관외과 의사의 몫이다.

왜 개두수술 의사가 부족할까. 김우경 이사장은 "뇌출혈 환자는 '동네 환자'라서 가까운 병원에 갈 수밖에 없다. 암 환자는 서울의 큰 병원으로 몰리지만 뇌출혈 환자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의료 수가가 높지 않다. 뇌동맥류 수술 수가(상급종합병원)는 290만2920원에 가산료가 붙어 377만원이다. 5~6시간 수술한다. 쌍꺼풀(재수술)·코·턱 성형수술이나 지방흡입술, 초음파 리프팅 시술과 비용이 비슷하다.

신경외과는 매년 전공의 모집 때 정원을 채우고도 남는다. 올해 89명 정원에 100명을 확보했다. 최석근 교수는 “신경외과 내에서는 응급 수술 없는 척추질환 쪽으로 많이 가서 개원한다. 응급을 많이 다루는 뇌혈관 전문 쪽에는 아주 극소수가 지망한다”고 말한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김용배 교수는 "현장에서 헌신하는 의사를 좀 더 배려해야 한다. 그래야 젊은 의사들에게 동기 부여가 돼 뇌혈관외과를 지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뇌혈관외과 의사는 수술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아 소송에 휘말릴 위험이 크다.

방재승 교수는 "신경외과 전공의들이 수련을 마친 뒤 현실의 벽에 절망해 척추 전문의가 된다"며 "현직 뇌혈관외과 의사로 살아보니 독립운동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김용배 교수는 "뇌혈관 개두수술 의사도, 후학을 양성할 의사도 줄어든다"며 "앞으로 수술 이외 다른 방법이 없는 환자의 사망 예방률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우경 이사장은 "병원당 최소 서너 명의 뇌혈관외과 의사가 있어야 당직이 돌아간다. 병원 경영자가 비용 때문에 그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가 이런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기보다 지금의 의사가 뇌혈관외과를 지원하도록 지원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의대생 정원만 늘려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신경외과ㆍ흉부외과 등 응급상황에 대비해야하는 과에 지원이 줄어드는건 수입 문제 뿐 아니라 자기 생활을 우선시하는 풍조가 결합돼 생기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의대생 입학 단계부터 특정과로 길을 좁혀서 선발하고, 해외처럼 뇌나 심장 분야 전문의들에게 다른과보다 훨씬 큰 혜택이 돌아가도록 구조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김윤 서울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근본적으로 인력 부족으로 생긴 사건이지만, 골든타임이 중요한 분야에서 학회ㆍ휴가 등을 당직 의사 없이 다 비우고 가는 건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수가가 낮은 것도 사실이지만 인력에 대한 법적 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 병원은 수가를 아무리 올려주더라도 추가 인력을 뽑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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