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들여 사모은 우표 1만장… 1200쪽짜리 역사책이 됐다

중앙일보

입력 2022.08.04 17:45

평범한 부품소재 사업가인 나봉주(75)씨는 취미로 모은 우표 1만여 장 중 약 5000장을 추려 '체부'를 펴냈다. 연대순으로 정리하며 우리나라의 역사 관련 사실을 빼곡히 적어넣어, 1200쪽짜리 근대사 대백과에 가깝다. 김정연 기자

평범한 부품소재 사업가인 나봉주(75)씨는 취미로 모은 우표 1만여 장 중 약 5000장을 추려 '체부'를 펴냈다. 연대순으로 정리하며 우리나라의 역사 관련 사실을 빼곡히 적어넣어, 1200쪽짜리 근대사 대백과에 가깝다. 김정연 기자

"처음엔 우표 도감을 만들 생각이었어요.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우표에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우리 근대사가 배어 있더라고요."

취미로 우표를 모으다 1200쪽이 넘는 우표 역사책까지 쓰게 된 나봉주(75)씨는 "편지와 우표가 사라지는 현실이 아쉽지만 그런 변화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표에 얽힌 생생한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다"는 것.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한 『체부』(박영사)를 쓴 이유다.

최초 우표 5종 찍었지만… 갑신정변으로 3종은 못 썼다

조선 최초 우표인 '문위 보통우표'. 일본에서 인쇄해 들여왔다. 위의 5문, 10문 두 종 우표는 갑신정변 이전 국내에 들어와 약 3일 정도 유통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뒤의 3종은 갑신정변 이후 우정총국이 폐쇄된 뒤 도착해 한 장도 쓰이지 못했다. 나봉주 씨 제공

조선 최초 우표인 '문위 보통우표'. 일본에서 인쇄해 들여왔다. 위의 5문, 10문 두 종 우표는 갑신정변 이전 국내에 들어와 약 3일 정도 유통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뒤의 3종은 갑신정변 이후 우정총국이 폐쇄된 뒤 도착해 한 장도 쓰이지 못했다. 나봉주 씨 제공

책 제목 '체부(遞夫)'는 달리는 사람, 우편집배원을 뜻한다. 나씨의 『체부』에는 1884년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인 문위보통우표 등 5000여 점의 우표가 소개돼 있다. 15년간 수집한 1만여 종 중에서 간추린 것이다.
그런데 문위보통우표는 국내에서 인쇄된 게 아니었다. 우정총국이 설립됐지만 정작 인쇄시설이 없었다. 일본에서 찍어 들여왔다. 그나마 제대로 유통되지 못했다. 일본에서 늑장 배송하는 사이 갑신정변(1884년 12월 4일)이 터져서다. 정변 전에 도착한 5문(文, 조선의 화폐 단위)과 10문짜리 두 종류는 짧은 기간 유통됐지만 우정총국이 폐쇄되는 바람에 늦게 도착한 3종은 써보지도 못하고 무용지물이 됐다.
나씨는 "당시 우정총국의 운영 체제를 감안하면 한성에서 제물포까지 3일에 걸쳐 편지가 체송(遞送)됐을 것"이라며 "한성 일부인이나 인천 일부인이 찍힌 우표가 발견된다면 세계적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했다. 일부인(日附印)은 날짜를 표기한 도장을 뜻한다. 사용하지 않은 우표보다 사용한 우표의 가치를 더 높게 쳐주기 때문에 몇 년 며칠, 어디에서 어디로 배송했다는 기록이 있는 우표가 그만큼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낱장보다는 봉투에 붙어 있는 우표가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처음으로 국내에서 찍어낸 이화보통우표. 사진 우체국 한국우표포털, 나봉주

처음으로 국내에서 찍어낸 이화보통우표. 사진 우체국 한국우표포털, 나봉주

국내에서 찍은 첫 우표는 1900년 이화보통우표다. 나씨는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창경궁 앞 인쇄소에서 찍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때까지도 국내에 인쇄기계도 기술자도 없었지만 독일에서 기계를 사 오고 일본에서 기술자를 데려온 끝에 인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표 도안은 화가 지창환(1851~1921)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5년 한일 통신협정으로 통신권을 일제에 뺏긴 뒤에는 일본 당국이 우표를 발행해 유통했다.

5푼 이화보통우표에 일부인이 찍힌 우표는 나봉주씨의 가장 귀한 소장품 중 하나다. 김정연 기자

5푼 이화보통우표에 일부인이 찍힌 우표는 나봉주씨의 가장 귀한 소장품 중 하나다. 김정연 기자

잘못 찍힌 우표가 더 귀하다… 일제는 엽서로 정책홍보

전위첨쇄보통우표(1901~1903) 2전 첨쇄 우표 중 누락 에러 우표. '2전'이라고 찍어야 할 검정색 글씨가 찍히지 않은 마지막 두 장 우표가 '에러 우표'다. 사진 나봉주

전위첨쇄보통우표(1901~1903) 2전 첨쇄 우표 중 누락 에러 우표. '2전'이라고 찍어야 할 검정색 글씨가 찍히지 않은 마지막 두 장 우표가 '에러 우표'다. 사진 나봉주

나씨는 "잘못 제작한 '에러 우표'도 귀한 취급을 받는다"고 했다. 낱장으로 뜯을 수 있게 뚫어놓은 구멍과 인쇄 영역이 맞지 않아 정상적으로 쓸 수 없는 우표가 에러 우표의 한 사례다. 나씨에 따르면 보통 50~100만장을 찍어내는 정상 우표에 비해, 에러 우표는 많아야 1만장 인쇄된다. 정상 유통이 안 되기 때문에 오히려 구하기가 더 어렵고, 더 비싸다. 인쇄 기계가 발전한 요즘은 에러 우표가 거의 없고, 만약 나온다면 수집가들 사이에 귀한 대접을 받을 거라고 했다.

일제는 식민지배의 성과를 홍보하기 위해 통계를 엽서로 많이 발행했다. 조선총독부 발행 그림엽서. 1912년, 1923년. 조선 무역 누년 비교(이출, 수출, 수입, 이입). 사진 나봉주

일제는 식민지배의 성과를 홍보하기 위해 통계를 엽서로 많이 발행했다. 조선총독부 발행 그림엽서. 1912년, 1923년. 조선 무역 누년 비교(이출, 수출, 수입, 이입). 사진 나봉주

일제는 식민 지배의 타당성을 홍보하는 엽서도 제작했다. 1910년 한일병합 같은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엽서를 발행했다. 나씨는 "경제학자들이 참고할 만한 내용도 있다"고 했다.

형 따라 어릴 적 우표 모은 기억… 이베이 뒤지며 15년간 10억 썼다

나봉주(1947)씨. 김정연 기자

나봉주(1947)씨. 김정연 기자

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나씨는 부품 소재 사업을 한다. 해방 직후 9남매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형을 따라 국민학교(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우표를 샀다. 당시 체신부 산하 체성회에 가입해 월회비를 내면 새 우표가 발행될 때마다 집으로 보내줬다고 한다. 그렇게 우표책을 채워나갔다. 처음 수집한 우표는 국악기 시리즈였다.

이후 학업과 사회생활을 하며 한동안 우표 수집에서 멀어져 있었지만 삶에 여유가 생기자 곧장 우표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해외 수집가가 우리 우표를 수집한 경우도 많아 이베이 같은 해외 경매 사이트를 자주 뒤진다. 시차 때문에 한국 시간으로 오전 3~4시에 마감되는 경매가 많아 놓치는 물건도 많다고 했다. 그간 우표를 사 모으느라 쓴 돈이 15년간 10억원가량이라고 했다. "사업으로 돈 벌고 여행 가고 세금 내며 살던 사람이 우표를 모으고 우표 역사를 정리하면서 애국자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정가 12만원인 책 1000권을 자비로 찍었고, 지금까지 도서관·대학 등에 등 600권을 기증했다. 나머지도 모두 기증할 생각이다.

가장 힘들었던 작업은 조선 총독부 관보 17만 2510건을 6개월간 샅샅이 훑어 워드로 정리한 '일제강점기 전국 우편국 명단'이다. 출력한 문서를 쌓으니 높이가 30cm가 넘었다고 한다. 이를 요약한 표도 깨알 같은 글씨로 22장에 달했다. 귀한 자료들이라 우표 수집가들이 쓰는 개별 포장 비닐에 낱장씩 집어넣은 다음 습기 피해가 없도록 건조한 방에 보관한다. 나씨는 "경기도 양평에 '체부 박물관'을 세울 계획"이라고 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듯, 젊은이들이 우표를 통해 우리 역사에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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