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ZZLE]여름 바다의 움직임에 취했던 책방의 추억

중앙일보

입력 2022.08.04 16:14

업데이트 2022.08.04 16:16

[PUZZLE] 조성은의 도서 공간 이야기(2) 

본격적 휴가시즌이다. 여름 하면 깊고 푸른 바다가 빠질 수 없지. 끝없이 펼쳐지는 넓은 공간감을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도시의 삶에서 바다에 대한 로망은 당연한 거다. 차가운 겨울 바다는 별미지만 바닷속으로 바로 뛰어들 수 있는 여름 바다는 그야말로 진리. 뉴스에서 해운대 백사장에 줄지어 펼쳐진 파라솔과 바다를 배경으로 흐르는 비치 보이스의 ‘Surfin USA’ 음악은 “자, 여러분 여름이 공식적으로 시작됐으니 어서 휴가를 준비하세요”를 알리는 신호이자 상징이다. 마음은 싱숭생숭 왠지 떠나야 할 것만 같다.

아름다운 바다의 기억은 매해 직간접 경험으로 업데이트되는데, 이번은 ‘헤어질 결심’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추가되었다. 비현실적 수평선, 세상을 삼켜버릴 듯한 거대하고도 부서지는 파도, 화면을 가득 채운 압도적 바다의 모습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촬영은 서해와 동해의 특징적인 아름다운 모습을 한 장면에 담아 환상적이고도 다시는 볼 수 없는 슬픈 메타포를 만들어냈다. 마음이 터져버릴 것 같았던 이 장면은 당분간 나의 가장 아름다운 바다의 기억이 될 것이다.

여름의 맛을 만끽할 수 있는 책들

이맘때는 장마 지나 선보일 한여름을 위한 북큐레이션을 작업하는데, 빼놓지 않고 선정하는 책들이 있다. 일단 책 속에는 바다가 있고, 맥락의 큰 줄기는 더위에 지쳐 있을 몸을 위한 ‘휴식’과 ‘환기’다. 이 책장을 통해 독자들로부터 기대하는 감정은 리프레시를 마치고 새로운 다음을 시작하게 하는 보양식 같은 에너지다.

먼저 펼쳐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시원해지는 책을 준비한다. 예를 들면 이수지 작가의 『물이 되는 꿈』·『여름이 온다』 또는 박혜미 작가의 『빛이 사라지기 전에』 같은 여름 색과 빛이 가득한 책들이다. 두 번째는 본격적으로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글로 바다의 맛을 흠뻑 즐길 수 있는 책들로 구성한다.

“서핑은 홀로 뛰어든 사람이 힘들게 얻은 기술을 장엄한 대양의 거친 힘에 대항해 발휘하는 것.”-『바바리안 데이즈』,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더 예민하게 바라보고, 자신의 기분과 본능에 집중하고, 스스로 한계를 존중하면서(이유를 불문하고 어떤 방향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고) 바다의 품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것이다.” -『깊은 바다, 프리다이버』,

“이 세계에는 실재인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실재인 것들이. 어떤 분류학자가 어떤 물고기 위로 걸어가다가 그 물고기를 집어 들고 ‘물고기’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물고기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이름이 있든 없든 물고기는 여전히 물고기인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계절 감상기보다는 여름과 연관된 키워드에 부합되는 책 중에 서사 속에서 그 미지의 세계에 한 발짝 더 다가가며 이해를 폭을 넓히는 책을 소개하기 위해 노력한다. 읽는 맛의 기본에 감동은 덤이다.

레스케이프 호텔에서 진행했던 시즌 북큐레이션, 여름책장. [사진 조성은]

레스케이프 호텔에서 진행했던 시즌 북큐레이션, 여름책장. [사진 조성은]

여름 바다의 빛과 움직임의 매혹에 빠져 작업한 라이브러리의 추억도 소개하고 싶다. 바다하면 동해가 아닌 서해. 어느 날 “바닷가에 라이브러리 만들어주세요” 의뢰가 왔고 먼 거리였기에 별 뜻 없이 그래도 일단 방문했던 제부도에서의 일이다. 하루 동안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와 하늘이 만드는 풍광에 그만 마음이 빼앗겨 버렸다. 일출과 일몰, 밀물과 썰물 눈앞에 바다는 한시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우와. 너무 신비스럽고 아름답잖아!” 살고 있는 주민에게는 일상적이고 너무도 당연한 이 자연의 변화가 외지인인 나의 눈에는 한없이 낯설고 신기했다. 생각해보면 바다와 맞닿은 육지의 어느 한 편에 도서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소망이 실현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망설임 없이 ‘바다 책방’으로 이름 짓고 이 자연의 신비를 이제서야 알게 되었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서 반갑다는 의미로 ‘안녕바다’라는 서브타이틀을 붙였다. 일출에서 일몰 사이 제일 선명하고 인상적인 4개의 시간대를 카테고리 삼아 책을 큐레이션 하기 시작했다. 해뜨기 전은 바다와 관련된 소설과 그림책을, 한낮은 바다에서의 추억과 상상력을 만끽할 수 있는 그림책을, 해 질 녘은 바다와 환경 이야기를, 일몰은 생명이 숨 쉬는 바다 생물 이야기로 구성했다. 짧은 시간 물때 시간까지 맞춰가며 공간 구성까지 해야 하는 녹녹지 않은 작업 상황이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냥 바다에 취해 일했던 기억이 난다.

북큐레이션 작업은 일종의 관계 맺기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휴식을 위해 제부도를 방문한 사람들이 바다가 보이는 바다 책방에 들러 잠깐이나마 책을 펼쳐보고 읽어보는 과정을 통해서 바다와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언젠간 바닷가의 풍경을 가진 일상을 꿈꾸게 된 시간이기도 했고 나에겐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여름 추억의 하나로 각인되었다.

 제부도아트파크 팝업라이브러리, 바다책방. [사진 조성은]

제부도아트파크 팝업라이브러리, 바다책방. [사진 조성은]

사라지기 전에 지켜야 할 바다

이토록 예정하는 여름 바다에 청천벽력 같은 뉴스가 들려온다. 바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계획 소식이다. 오염수 방류 260일 후에는 제주도를 비롯해 남해안에, 400일 후에는 남한 전체에, 520일 후에는 한반도 전역이 오염된다는 충격적인 시뮬레이션 결과가 발표됐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특히 한국의 연안에 치명적 피해가 예상된다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는데, 반대나 항의에 대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활생의 바다를 오염에 영원히 빼앗길 것 같은 불안감이 파도처럼 찰싹거린다.

바다는 누구의 것이 아니다. 오늘 쓰고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에게 미래에도 유효한 추억이 될 수 있도록 소중히 지키고 이어줘야 한다. 되찾는 건 에너지가 더 많이 든다. 절망적인 건 어쩌면 속수무책으로 영원히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언제든 갈 수 있는 지금의 바다가 아닌 가서는 안 되는 금지구역의 죽음의 바다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다. 심각성을 인식하고 사라지기 전에 지켜야 한다. 우리의 바다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나는 이 책장은 만들고 싶지 않다.

제부도아트파크 팝업라이브러리, 바다책방. [사진 조성은]

제부도아트파크 팝업라이브러리, 바다책방. [사진 조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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