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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세상](43) 어리석은 군주의 시기, 현명한 신하의 처세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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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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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얘기다. 3000년쯤 전, 중국 중원(中原)에서 벌어진 일이다. 주역의 탄생과도 관련된 이야기다. 재밌다. 함께 읽어보자.

당시 대륙 중원을 다스리는 왕조는 상(商)이었다. 흔히 은(殷)으로 알고 있는 왕조다. 그 상나라를 이끌고 있던 왕이 주(紂)였다(재위 기간 BC 1075~BC 1046). 용모가 수려했다. 맹수를 잡을 정도로 힘도 셌다. 상나라 경계를 산둥(山東) 쪽으로 넓히기도 했다. '좋은 임금님 나셨네~', 백성의 우러름을 받았다.

힘 있을 때 겸손해야 한다. 권력이 클수록 포용력도 커야 한다. 그래야 정치 역량은 더 커진다. 법이 능사는 아니다. 백성들에게 스스로 생각할 공간을 넓혀줘야 한다. 그러면 여론조사 지지율도 높아진다. 그게 쉽지 않다. 불행하게 만년을 보내야 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적지 않다.

주왕(紂王)도 그걸 못했다. 그는 독선에 빠졌고, 쓴소리하는 충신을 멀리했다. 게다가 달기(妲己)라는 여인에게 홀려 국정을 멀리했다. 맨날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놀았다. 독불장군, 바른말 하는 충신은 불구덩이에 밀어 넣기도 했다. 현명함은 어디 가고 점점 폭군(暴君)으로 변해 갔다.

주왕(紂王)은 독선에 빠졌다. 달기라는 여인에게 홀려 국정을 멀리했다. 현명함은 어디 가고 점점 폭군(暴君)으로 변해 갔다./바이두

주왕(紂王)은 독선에 빠졌다. 달기라는 여인에게 홀려 국정을 멀리했다. 현명함은 어디 가고 점점 폭군(暴君)으로 변해 갔다./바이두

충신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쫓겨났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다. 광명의 시대가 지나고 어둠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주역 36번째 괘 '지화명이(地火明夷)'는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거꾸로다. 지난번 칼럼에서 본 주역 35번째 괘 '화지진(火地晉)'은 불을 상징하는 리(離, ☲)가 위에, 땅을 의미하는 곤(坤, ☷)이 아래에 놓여있다. 불(태양)이 땅에서 솟아오르는 형상이다.

'지화명이(明夷)'는 반대로 땅(☷)이 위에 있고, 불(☲)이 아래에 있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지는 모습이다. '夷(이)'는 '손상당하다'라는 뜻이다(夷者, 傷也). 해가 서녘에 지면서 밝음이 손상당했으니 괘 이름이 '명이(明夷)'다.

주역 36번째 '지화명이(明夷)'는 땅이 위에 있고, 불이 아래에 있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지는 모습이다. /바이두

주역 36번째 '지화명이(明夷)'는 땅이 위에 있고, 불이 아래에 있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지는 모습이다. /바이두

낮이 손상당해 밤으로 바뀌고, 양기(陽氣)가 손상당하니 음기(陰氣)가 퍼진다. '진'괘가 현명한 임금(明君)이 위에 있고 현신(賢臣)이 받쳐주는 치세(治世)라면, '명이'괘는어리석은 임금(暗君)의 등장으로 현명한 신하들이 손상을 당하는 난세(亂世)다.

폭군이 힘을 휘두르는 난세,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명이' 괘는 역사 인물을 한 명 끌어들여 설명한다.

內文明而外柔順, 以蒙大難, 文王以之

'안으로 밝은 빛을 지녔어도 밖으로는 유순하다. 이로써 큰 어려움을 무릅쓰니, 문왕이 그러했다.'

문왕(文王)은 주나라 문왕을 말한다(周文王, BC1152~BC1056). 이름은 희창(姬昌). 원래 서부의 봉지를 다스리는 제후였다. 지금의 시안(西安) 부근 바오지(寶鷄)라는 곳이 그의 근거지다.

문왕은 다스림에 출중했다. 힘을 길러 땅을 넓히고, 경제를 살려 민생을 돌봤다. 그가 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따랐다. '서백창(西伯昌, 서쪽의 제후 창)'으로 불리며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한편 중원의 동쪽 '殷(은, 지금의 허난성 안양∙安陽)'에 있었던 주왕(紂王)의 폭정은 날로 도를 더해갔다. 많은 충신이 기름이 칠해진 철봉에서 미끄러져 불구덩이에 타 죽었다. 포락지형(炮烙之刑)으로 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서백창 문왕(文王)은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포락지형만이라도 없애주십시오. 저의 봉토 일부를 떼어 드리겠나이다.'

'그래? 그럼 그래 볼까….'

주왕(紂王)은 문왕(文王)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포락(불에 달구어 지짐)'은 줄었다.

이 일을 계기로 문왕의 인기는 높아졌다. 궁 내부에서도 지지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머리 좋은 주왕(紂王)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정적의 등장에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마침 간신 한 명이 모함한다.

'아무래도 문왕 저 친구가 뭔 일을 꾸미는 것 같아요….'

'뭣이라? 내 그러잖아도 손 한 번 봐주려고 했어….'

주왕(紂王)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중원 서쪽에서 활동하는 문왕(文王)을 동쪽 끝으로 끌어와 유리(羑里)라는 곳에 있던 옥(獄)에 가뒀다. 정치 탄압이다.

주왕은 문왕이 혹 반역의 뜻이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문왕의 아들을 삶아 탕국을 끓어 그에게 보내라.' 문왕은 고깃덩이가 둥둥 뜬 탕국을 받아 들었다. 자기 아들을 삶아 보냈다는 걸 금방 알아차렸다.

어찌해야 하나….

문왕은 유리(?里) 감옥에서 7년을 보내야 했다. 인고(忍苦)의 세월, 그는 철저히 자신의 힘을 숨긴채 참고 또 참았다. /바이두

문왕은 유리(?里) 감옥에서 7년을 보내야 했다. 인고(忍苦)의 세월, 그는 철저히 자신의 힘을 숨긴채 참고 또 참았다. /바이두

문왕은 마셨다.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을 키운다는 뜻)였다. 힘을 숨기며 때를 기다리는 것, 그게 바로 문왕이 선택한 난세의 처세술이다. '안으로 문명(文明)을 지녔어도 밖으로는 유순하다'라는 건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문왕은 유리(羑里) 감옥에서 7년을 보내야 했다. 인고(忍苦)의 세월, 그는 철저히 자신의 힘을 숨긴 채 참고 또 참았다.

그 7년 동안 문왕이 유리 옥에서 한 일이 바로 주역 정리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던 복희씨(伏羲氏)의 64괘에 괘사(卦辭)를 달았다. 이어 그의 넷째 아들 주공(周公)이 384개 효사(爻辭)를 정리했으니,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주역에는 주문왕 부자의 피눈물이 담겨있다.

유리는 지금의 허난(河南)성 안양(安陽)시 근교 탕인(湯陰)현에 해당한다. 중국은 그곳에 '유리성(羑里城)' 유적지를 조성해 주문왕을 기리고 있다. 필자는 가보지 못했지만 주문왕 동상, 8괘를 상징하는 조형물 등이 3000년 전 '도광양회' 스토리를 전해주고 있단다.

주문왕이 옥에 갖혔던 유리는 지금의 허난(河南)성 안양(安陽)시 근교 탕인(湯陰)현에 해당한다. 중국은 그곳에 '유리성(?里城)' 유적지를 조성해 주문왕을 기리고 있다./바이두

주문왕이 옥에 갖혔던 유리는 지금의 허난(河南)성 안양(安陽)시 근교 탕인(湯陰)현에 해당한다. 중국은 그곳에 '유리성(?里城)' 유적지를 조성해 주문왕을 기리고 있다./바이두

낮이 가면 밤이 오고, 밤이 가면 또 해가 뜬다. 어둠이 길면 광명의 시간은 꼭 오게 마련이다. 문왕(文王)은 끝내 풀려나게 된다. 주변 충신들이 주왕(紂王)에게 돈과 여자를 바친 덕택에 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풀려난 문왕은 드디어 반상(反商)의 기치를 든다. 그렇다고 서두르지는 않았다. '명이' 괘는 세 번째 효사에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明夷于南狩, 得其大首, 不可疾, 貞

'해가 떨어질 때쯤 남쪽으로 사냥을 떠나 큰 괴수를 잡는다. 서둘러서는 안 된다. 곧음을 지켜야 한다.'

곧장 주왕(紂王)에 칼을 겨누지 않았다. 남쪽으로 우회하면서 '상나라 타도'의 힘을 규합했다. 주왕 정벌의 당위성을 전파하고, 주변을 설득했다. 한자 '疾(질)'은 서두르다는 뜻. 문왕(文王)은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명분을 쌓았고, 주(周)나라 설립의 토대를 닦을 수 있었다.

상나라 타도의 역사(役事)는 그의 아들 주무 왕(周武王)에 이어져 결실을 보게 된다. 주무 왕은 BC1046년 목야(牧野)의 전투에서 주왕(紂王)을 격파하니, 중원은 주(周)왕조가 지배하기 시작한다.

옛날얘기, 여기까지다. 다시 주역으로 돌아가자.

주역은 세상이 혼탁해 나의 재능을 숨기는 것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명이' 괘는 내가 힘이 있고, 잘 나갈 때도 힘을 숨겨야 한다고 말한다.

明入地中, 明夷, 君子以莅衆, 用晦而明

'밝음이 땅속으로 들어가니 '명이' 괘다.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군중을 다스리면서 어두움을 이용해 밝게 한다.'

권력자가 권세를 온전히 다 드러내면 정치는 가혹해진다. 백성들은 권력자의 눈치를 보게 되고, 마음의 문을 닫는다. 힘을 숨겨야 한다. 백성에 겸손하게 다가가야 한다. 법망을 느슨하게 풀어 백성의 생각 공간을 넓혀야 한다. '어두움을 이용해 밝게 한다'라는 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돈 많다고 금권을 휘두르면 주변에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위에 있다고 아랫사람 막 부려서도 안 된다. 겸손과 포용, 너그러움…. 그래야 부(富)는 커지고, 아랫사람의 존경도 받는다. 그게 '명이' 괘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권력을 더 키우고 싶은가?
그렇다면 힘을 감춰라.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은가?
그렇다면 더 너그럽게 베풀어라.

아랫사람의 존경을 받고 싶은가?
그렇다면 더 겸손해라.

주역은 '어둠 속에 힘을 숨길 수 있는 자가 진정한 강자'라고 말하고 있다. 도광양회의 지혜다.

한우덕

후기: 주문왕과 그의 아들 주공이 주역 64괘 괘사와 384개 효사를 정리한 지 약 500년 후. 공자(BC551~BC479)는 10권의 주역 해설서를 썼다. 흔히 십익(十翼)이라 한다. 그가 홀로 10익을 썼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지만, 공자가 주역 해설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공자는 10익을 통해 주역 괘사와 효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단전, 상전), 괘의 순서는 어떻게 짜였나(서괘전), 괘의 상징성은 무엇인가(설괘전), 음양의 논리는 어떻게 짜여있나(계사전)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로써 주역 텍스트가 완성됐고, 민간 점서에 그쳤던 주역은 철학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주역의 저작을 말할 때 흔히 '복희씨가 8괘를 만들었고, 주문왕이 64괘 괘사를 정리했고, 주공(周公)이 384개 효사를 붙였고, 공자가 10익을 지었다'라고 한다. 전설상의 인물인 복희씨가 8괘를만들었는지 아닌지는 불분명하지만 주문공, 주공, 공자의 기여는 기록으로 남아있다. 주역이 수천 년 역사를 거치며 경험치로 완성됐음을 말해준다. 동양의 철학 정수가 그 속에 담긴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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