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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다 아는데, 난 이해 안가" 좌절하는 아이, 전두엽 의심하라

중앙일보

입력 2022.08.04 06:00

초등 2학년 딸 예지(가명)를 키우고 있습니다. 저는 예지가 영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장 구사력도 좋고요, 학교 들어가기 전 영어 유치원에 다녔는데 별탈 없이 적응했거든요. 집중력이 좀 부족한 것 같긴 했지만, 내향적인 편이라 눈에 띄게 문제가 된다고 느끼진 않았어요.
그런데 지난해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아 아이가 “난 친구들보다 이해력이 부족한 것 같아”라고 말하더라고요. 수업 내용을 친구들은 다 이해하는데, 자기만 잘 모르는 것 같다고요. 생각지도 못한 얘기를 들어서 많이 놀랐습니다.
주변의 권유로 종합심리검사(풀배터리) 검사를 받았어요. 서울의 한 정신과에서요. 심리센터랑 연계해 검사를 진행하는 곳이었어요. 웩슬러 지능검사(5판)를 했는데, 작업기억 지표만 낮게 나왔어요. 하위 23% 정도에 해당했죠. 언어이해와 처리속도 등 다른 지표는 상위 10% 정도에 속했어요. 유독 작업기억 지표만 낮았던 겁니다. 아,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성취압력(사회적 성공을 강하게 요구하는 정도 평가)도 매우 낮다고 했어요.
검사는 받았지만 여전히 궁금한 점이 많습니다. 검사 결과에 대한 전문가 해석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작업기억 지표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고, 이건 어떻게 높일 수 있는 건가요?
성취압박이 낮은 것도 문제가 되나요? 사실 저희 부부는 공부를 잘하는 게, 그래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게 성공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이런 생각 때문에 아이의 재능을 제대로 키워주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적당한 성취 압력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주어야 할까요?

작업기억은 특정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단기간 정보를 유지하고, 활용하는 능력입니다. 단순히 기억하는 수준을 넘어 정보를 검토해 목적에 맞게 처리하는 거예요. 전두엽 발달이 더디면 이런 작업을 수행하는 게 힘들 수 있어요.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배동미(가명)씨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전두엽은 사고와 판단을 관장하고, 행동이나 감정을 조절하는 부위입니다. 세부적으로는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하며, 이를 체계적으로 실행시켜 나갈 수 있도록 관리하는 역할도 하는데요. 전두엽 발달이 더디면 많은 자극 중 중요한 정보를 잡아내고, 통제하는 힘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예지가 그런 경우죠. 그렇다고 예지의 발달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지능(IQ)도 정상이고요. 다만, 전두엽에 남들보다 조금 천천히 자라고 있는 겁니다. 전두엽은 뇌에서 가장 늦게 완성됩니다. 사람에 따라 발달의 편차도 있을 수 있고요. 하지만 이런 상태를 그냥 뒀다간 아이가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 수 있죠. 지능도 떨어질 수 있고요. 신의진 교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의 정신 건강을 주기적으로 체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배동미씨와 신의진 교수의 상담은 지난달 18일 줌을 통해 30분간 진행됐습니다. hello! Parents는 배동미씨의 동의를 얻어 상담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아이가 평소 주의력이 부족하다고 느끼셨나요? 혹시 종합심리검사에서 작업기억 지표가 낮게 나왔나요? 배동미씨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양육자라면 이번 콘텐트에 담긴 아이 훈련법을 실천해보세요.

‘조용한 ADHD’를 아시나요? 

일반적으로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라 하면 충동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떠올리죠. 그런데 산만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 ADHD도 있다고 합니다. ‘조용한 ADHD’라 불리는 이 증상의 특징은 무엇이고, 왜 나타나는 걸까요?

신) 보내주신 아이 검사 결과를 봤는데, 작업기억 지표만 유독 낮게 나왔더라고요. 혹시 아이 평소 성격은 어떤 편인가요?

배) 조심성이 많고, 차분한 편이에요. 무언가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고요. 유치원 다닐 때도 1학기 땐 좀 눈치를 보다가 2학기 되면 아이가 밝아진다는 얘기를 듣곤 했어요. 아이가 산만한 건 아닌데, 집중력이 약한 것 같았어요. 티 안 나게 딴 생각한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신) 예지를 직접 보지 않아 단정할 순 없지만요, ‘조용한 ADHD’인 것 같아요. 전두엽에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이 떨어지는 경우를 말하는데요. 일반적인 ADHD와는 다른 특성을 보여요. 산만하진 않지만 집중하는 시간이 짧은 게 대표적입니다. 집중력만 낮은 게 아니라 여러 자극 중 중요한 걸 골라내는 힘도 부족해요.

배) 교수님이 말씀하신 그걸 예지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친구들은 수업 내용을 다 알아듣는데, 나는 아니야.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라고 했습니다. 충격이 컸죠. 아이가 주의력이 약간 떨어지긴 하지만 언어 구사나 연산 능력도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신) 공부를 잘하려면요, 뇌에서 ‘멈추기’와 ‘시작하기’를 잘해야 해요. 멈추기는 여러 자극 중 중요한 부분에서 머무르는 겁니다. 이때 이 자극을 분석하고 이해합니다. 이런 작업이 끝나면, 다시 여러 자극을 탐색하고요. 그런데 전두엽 발달이 더딘 아이들은 중요한 걸 잡아내고, 여기에 집중하지 못해요. 수많은 자극을 훑기만 하는 거죠.

배) 그래서 예지가 이해력이 떨어진다고 느꼈나 보네요. 그런데 다른 능력은 평균 이상인데, 작업기억 능력만 떨어질 수 있는 건가요?

신) 지능과는 관련 없습니다. 물론 이런 상태로 내버려두면 지능까지 떨어질 수 있어요. 무엇보다 아이가 지금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잖아요. 다른 아이들은 무언가를 접했을 때 딱 보고 이해한 뒤 넘어가는데, 예지는 열심히 해도 놓치는 게 있는 거죠. 이런 게 반복되면 아이가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 거고요.

작업기억 낮은 아이, 계획표 짜게 하라 

작업기억이 낮은 아이는 계획표를 짜 실천하는 게 중요합니다. 탐색을 멈추고 생각을 시작하는 바로 그 조절력이 약하기 때문에 스스로 통제하는 연습을 하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배) 온 가족이 1년간 미국에서 살 기회가 생겼어요. 그동안 저도 일을 하다 보니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는데요, 이번 기회에 아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작업기억이 낮은 예지를 위해 제가 어떤 걸 해야 할까요?

신) 예지 같은 아이는 시간표를 짜서 실천하는 게 매우 중요해요. 멈춰야 할 때, 해야 할 때를 짚어주는 거죠.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날 건지, 숙제는 언제 할 건지 규칙을 반드시 정하세요. 예지는 내향적인 기질의 아이잖아요. 강요하거나 혼내면 아이가 주눅 드니 그러지 마시고요. 계획표를 벽에 붙여놓고 그에 맞게 움직이게 하세요.

배) 잔소리 대신 칭찬을 하면 될까요?

신) 맞습니다. 아이가 규칙을 잘 지켰으면 정말 잘했다고 말해주세요. 좀 못했을 땐 다시 해보자고 북돋워 주시고요. 혼내면 ‘내가 진짜 이해력이 부족하구나’ 생각할 수 있으니 말 한마디라도 정말 조심하셔야 합니다. 예지는 겁이 많은 동시에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 안 되는 거잖아요. 스스로 얼마나 불안하고 허둥지둥하겠어요.

배) 아이의 마음을 잘 헤아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얼마 전에는 아이가 우산을 3일 연속으로 학교에 두고 오는 일이 있었어요. 4일째 되는 날 우산 3개를 들고 왔고요. 본인도 당황해하더라고요.

신) 그럴 때 화내지 말고, “우리 우산 안 잃어버리는 방법을 찾아볼까?”라고 해보세요.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공부할 때 집중하기 어려우면 줄을 그어 표시하는 것도 좋아요. 이것도 어려우면 입으로 조용히 읽는 것도 방법이에요. 그럼 포인트를 잘 잡아낼 수 있거든요.

배) 미국에 가기 전에 교수님을 뵙게 돼서 정말 다행입니다.

신) 낯선 환경을 만났을 때 예지는 다른 아이들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아이에게 “가자마자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천천히 따라가도 누가 뭐라 할 사람 없어. 엄마도 영어 잘하지 못하는 거 알지? 너도 굳이 말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세요. 가서 학교 선생님한테도 아이의 기질에 대해 미리 알려주시고요.

배) 안 그래도 아이에게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 정도는 영어로 할 줄 아니?”라고 물어봤어요. 안다고 하더라고요. “그거면 됐어”라고 했죠. 그럼 당장 병원에 다니지 않고, 가정에서 연습해봐도 되는 거겠죠?

신) 네, 예지는 증상이 심하지 않으니 말씀드린 훈련을 꾸준히 한다면 좋아질 겁니다. 혹시 차도가 더디다면 1년 뒤 다시 한국에 왔을 때 소아정신과를 찾으시고요.

아이 종합심리검사, 소아정신과서 받아야 

아이종합심리 검사에 대한 양육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하지만 수십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내고,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지 못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신의진 교수는 소아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라고 권했는데요, 그 이유가 뭘까요?

배) 종합심리검사에서 부모의 성취압력이 매우 낮다는 결과가 나왔는데요. 내성적인 예지에게 어떻게 성취압력을 줘야 하는 걸까요? 잘못했다간 아이가 부담만 느낄까 봐 걱정돼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아이의 재능을 방치하는 것 같고요.

신) 사실 전 검사 결과에 대한 분석이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취압력이 낮은 게 나쁘다고 볼 수 없어요. 또 작업기억 지표만 낮게 나왔는데, 집중력 검사를 따로 하지 않은 것도 걸렸고요. 이런 경우 집중력 검사를 추가로 해야 하거든요. 사실 집중력 검사가 복잡한 게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보고 들은 것을 기억하고 따라 하게 하거나, 숫자를 거꾸로 따라 말하게 하는 간단한 검사로 확인할 수 있어요.

배) 서울의 한 심리센터가 정신과와 연계해 진행하는 검사를 받았어요. 검사비도 50만원 정도 했는데, 결과에 대한 해석을 제대로 못 들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ADHD 기질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는데, 관련해서 가이드도 주지 않았고요.

신) 이 검사 결과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보여주신 검사 결과지를 봤는데, 문장완성검사와 심리검사에 대한 분석도 일관성도 없더군요. 미국에서 돌아와서 제대로 된 기관에서 다시 검사를 받아보세요. 지능 검사는 1년 이내에 재검사를 하면 안 되거든요.

배) 왜 1년 안에는 재검사를 하면 안 되는 거죠?

신) 검사 내용을 기억하고 있을 수 있거든요. 그러면 제대로 측정할 수 없겠죠?

배) 다시 받을 땐 꼭 소아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야 하는 걸까요?

신) 저는 그걸 권합니다. 소아정신과 의사들은 일반 정신과 의사들보다 2년여간 추가로 수련을 받거든요. 아무래도 급격하게 변하는 아이들의 뇌를 더 잘 볼 수 있겠죠. 꼭 증세가 심각한 아이가 아니라도 소아정신과 의사를 만나면 좋아요. 아이의 정신 건강은 눈에 보이지 않아 놓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에요. 예지 같은 아이들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거죠.

배)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꼭 교수님 말씀대로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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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진 교수의 총평 및 솔루션
① ADHD가 산만하고 충동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내향적 성격이거나 전두엽 부위에 따라 ADHD라도 티가 잘 안 날 수 있어요. 무언가 의심스럽다고 느껴지면 병원을 찾으세요.
② 작업기억 지표가 낮은 아이들은 뇌에서 모든 자극을 훑기만 하는 겁니다. 특정 정보를 골라내지 못하는 거죠. 이럴 땐 계획에 맞춰 스스로 통제하는 연습을 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③ 종합심리검사는 소아정신과 병원에서 받으세요. 아이의 뇌는 급변하고, 예민하기 때문에 관련 공부를 전문적으로 한 의사에게 평가를 받는 게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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