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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탈북민은 외국인"에 "엉뚱한 해석"…판례싸움 뜨겁다

중앙일보

입력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무유기 등으로 고발된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등에 대한 소환 조사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가운데 ‘장외’에서의 논리 싸움은 이미 막이 올랐다. 고발인 측은 탈북 어민이 엄연한 한국인이며 외국인임이 명확하지 않은 한 국외로 추방할 근거가 없다는 판례를, 피고발인 측은 북한이 외국이며 이들은 외국인에 준한다는 판례를 들어 각자 유·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北=외국에 준한다” 정의용 힘 실은 헌재 판례

지난 2019년 4월 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 전 차담회에서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대화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지난 2019년 4월 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 전 차담회에서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대화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피고발인 중 한 명인 정 전 실장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는 북한이나 북한 주민에 대해 외국이나 외국인의 지위에 준해 개별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며 “비정치적인 중대 범죄자는 국제법상으로도 난민으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원 판례상 탈북 선원들은 외국인으로 볼 수 있고 이들이 선상에서 16명을 살해했기 때문에 난민 인정을 제한(난민법 제19조 3항)하거나, 보호하지 않고(북한이탈주민법 제9조) 사실상 추방할 근거도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판단은 지난 2005년 6월 ‘구 외국환거래법 제27조 1항 제8호 등 위헌소원(2003헌바114)’에 대한 헌재 결정에 근거했다. 헌재는 당시 외국환거래법 제15조 3항 내용 중 북한 주민이나 단체가 거주자나 비거주자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며 “개별 법률의 적용 내지 준용에 있어서는 남북한의 특수관계적 성격을 고려하여 북한 지역을 외국에 준하는 지역으로, 북한 주민 등을 외국인에 준하는 지위에 있는 자로 규정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고 했다.

“판례 해석 오류…北주민은 韓국민 명확”

북한인권정보센터 인권침해지원센터 관계자들이 지난 2019년 '탈북어민 북송 사건'과 관련해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당시 정부 및 군 관계자를 인권침해 가해자로 고발하기 위해 지난 7월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뉴스1

북한인권정보센터 인권침해지원센터 관계자들이 지난 2019년 '탈북어민 북송 사건'과 관련해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당시 정부 및 군 관계자를 인권침해 가해자로 고발하기 위해 지난 7월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고발인인 북한인권정보센터 측은 정 전 실장이 이 판례를 잘못 해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헌재가 이 판례에서 ‘북한 주민 등을 외국인에 준하는 지위로 규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우리 헌법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영토조항(제3조)을 두고 있는 이상 대한민국의 헌법은 북한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에 그 효력이 미치고 따라서 북한 지역은 당연히 대한민국의 영토가 되므로, 북한을 법 소정의 ‘외국’으로, 북한의 주민 또는 법인 등을 ‘비거주자’로 바로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단서를 달았기 때문이다.

고발인 측은 “헌재가 ‘북한 주민=외국인’이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며 “적용할 수도 없는 판례를 인용했고 이마저도 내용과 취지를 왜곡해 탈북 어민을 강제북송했다”고 비판했다. 고발인 측인 윤승현 변호사는 오히려 1996년 11월 선고된 대법원 판례(96누1221)를 들어 “(대법원이)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임을 명확히 밝혔다”며 피고발인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대한민국 국민을 북한으로 강제 추방하거나 국내에서 재판을 못 받게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檢 직접 언급한 판례, “北 공민증 받아도 추방 못 해”

서울중앙지검. 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연합뉴스

고발인 측이 든 대법원 판례의 원심은 1995년 서울고법 판결(94구16009)이다. 이에 따르면 1937년생으로 분단 이후 북한 지역에 살던 A씨는 1960년 생업을 찾아 중국으로 가 1977년 중국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해외공민증을 받았다. A씨는 1992년 한국으로 오기 위해 체류 기간이 30일인 중국 여권을 발급받았고 2년 후 서울 남대문경찰서로 찾아가 귀순 의사를 표시했지만, 서울외국인보호소는 A씨를 외국인으로 보고 체류기간·체류자격 위반으로 강제퇴거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이에 대해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강제 퇴거를 시키기 위해선 상대방이 대한민국 국적을 갖지 않은 외국인이라고 단정할 수 있어야 한다”며 “북한 역시 대한민국의 영토에 속하는 한반도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어서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칠 뿐이고 대한민국의 주권과 부딪치는 어떠한 국가단체나 주권을 법리상 인정할 수 없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원고가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하고 이를 유지함에 있어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며 강제 퇴거 명령을 취소했다. 최근 검찰 관계자 역시 “귀순 의사가 있는 사람을 북한에 보낼 경우 현행법상 처벌할 수 있나”는 질문에 대해 이 판례를 들어 우회적으로 답하기도 했다.

수원·중앙지법 판례, “北주민 해외 범죄도 국내 재판”

통일부는 지난달 12일 판문점에서 탈북 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하던 당시인 2019년 11월 촬영 사진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통일부는 지난달 12일 판문점에서 탈북 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하던 당시인 2019년 11월 촬영 사진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북한 주민이 해외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국내 법원이 재판을 하는 게 적절한지 여부도 쟁점이다. 고발인 측은 2006년 북한지역에 거주하던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B씨가 다른 탈북민을 상대로 약취·유인을 시도하다 국내 귀순 후인 2014년 유죄 판결을 받은 판례(수원지법 2013고합846)를 들어 탈북 어민들을 국내에서 재판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북 어민이 한국 국민이기 때문에 헌법 제27조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피고발인 측은 “북한 지역에서 북한 주민이 다른 북한 주민을 상대로 저지른 흉악 범죄와 관련하여 우리 법원이 형사관할권을 행사한 전례가 하나도 없다”며 맞서고 있다.

이와 관련, 해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이준범 부장)는 탈북민이 해외에서 폭행을 저지르고 국내 귀순 후 징역형을 받은 판례(2018고단7623)를 확보해 분석 중이다. 탈북민이 귀순 이전 저지른 과거 범죄를 국내에서 처벌한 전례가 없다는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 강제 북송 관련 핵심 피고발인들의 논리를 깨뜨릴 법원의 판단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서 전 원장은 지난달 30일 입국 후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을 지낸 이석수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하는 등 본격적으로 검찰 수사에 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판례에 따르면 피고인 강모(41)씨는 지난 2014년 9월과 2015년 6월, 중국 옌지(延吉)시의 진달래 식당에서 총지배인으로 일하며 허락 없이 5시간 동안 외출했다는 이유 등으로 종업원 김모(32)씨를 바닥에 넘어뜨리고 가슴과 배를 때리는 등 폭행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6월 폭행·감금 및 상해죄로 강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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