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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3번 거절 끝에 헌트 출연…칸 반응 본 뒤 영화 또 고쳤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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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정재(왼쪽)와 정우성은 영화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헌트’에서 공동 주연으로 호흡을 맞췄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이정재(왼쪽)와 정우성은 영화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헌트’에서 공동 주연으로 호흡을 맞췄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이 영화를 이정재가 연출했다고?’ 지난달 27일 첩보 액션 영화 ‘헌트’(10일 개봉)의 언론 시사 후에 터져 나온 반응이다. ‘헌트’는 30년 차 배우 이정재(50)의 영화감독 데뷔작이다. 충무로 ‘절친’ 정우성과 공동 주연을 맡았다. 전두환 독재 정권 시절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 숨어든 북한 간첩을 찾으려는 요원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 간의 불신과 갈등을 긴박감 있게 그렸다. 실감 나는 첩보 액션, 정치적 분열의 시대상을 새겨넣은 캐릭터 묘사가 돋보인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연기 인생 정점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 이정재가 감독으로도 변신에 성공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3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이정재는 영화 마무리 작업을 하느라 얼굴에 피로감이 가득했지만, 기분 좋은 긴장감 또한 감돌았다.

첩보 액션 영화 ‘헌트’(10일 개봉)로 감독 데뷔한 이정재를 3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첩보 액션 영화 ‘헌트’(10일 개봉)로 감독 데뷔한 이정재를 3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헌트’가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처음 공개됐을 때만 해도 호평 일색은 아니었다. 한국 현대사를 설명한 긴 자막, 복잡한 이야기에 호불호가 엇갈렸다. ‘신인 감독’ 이정재는 지적을 받아들여 사족을 걷어내 완성도를 높였다. 그는 “(칸에서) 잘 통하지 않았구나! 자책도 했다”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곧바로 각색을 다시 했다. 찍어놓은 영상에서 쇼트를 바꾸고 대사를 후시녹음으로 꽤 많이 수정했다”고 말했다.

‘헌트’는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고 한다. 2016년 원작 시나리오(‘남산’)를 읽고 이정재는 처음엔 제작을 염두에 두고 영화화 판권까지 샀다. 그러나 각본에 참여한 감독들이 잇따라 하차하면서 직접 노트북을 펴고 4년에 걸쳐 각색했다. 그는 이념 갈등이 극심했던 1980년대 초반 시대 배경을 두고 “어마어마한 부담이었다”고 떠올렸다.

“굳이 이런 역사적 사실을 영화에 넣어야 하나 고민이 많았죠. 자칫 잘못했을 때 비난이 연기자 경력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공포감까지 느꼈어요. 첩보 장르에 집중해 현대극으로 만들려 했다가 주제가 가닥이 잡히면서 80년대에 도전해보고자 했죠.”

큰 부담감에 “글쓰기를 포기할 뻔한” 그를 번번이 노트북 앞으로 돌아오게 한 건, ‘그릇된 신념으로 분쟁하지 말자’는 주제였다. 그는 “어릴 때 신촌에 살아서 최루탄 냄새가 익숙했다”며 “민주화 시위가 가장 격렬했을 때 초등학생이었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뉴스가 공개되고 ‘다른 게 있었구나’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정치에 큰 관심 없이 살았지만, ‘헌트’를 만날 즈음 세상이 뒤집혔다.

“대통령 탄핵이 있었고 새 대통령이 선출됐죠. 저는 중도라고 할 수 있는데 그때 국민이 편이 나눠진 것 같은 모습을 봤어요. 저렇게 심하게 갈등 해야 할까, 누군가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 건 아닐까, 우리의 신념은 과연 옳은 것일까 등 주제가 잡히면서 좀 더 용기를 내게 됐죠.”

그는 “나와 다르다는 것 때문에 싸우지 말자는 주제인 만큼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잡는 게 목표였다”고 했다.

출연 제의 4번 만에 승낙한 절친 정우성에게 4년간 매번 새롭게 매만진 시나리오를 들이밀며 이야기를 다져나갔다. 동북아 첩보전이 치열했던 80년대 미국·일본·태국 등을 무대로 안기부 요원들이 극단적 일탈을 저지르는 전개가 무리 없이 다가오는 건 탄탄한 심리묘사 덕분이다.

연출과 연기를 동시에 하면서 어려움은 없었을까.

이정재는 “촬영을 할수록 체력이 떨어졌고 태국 장면에선 달려가다 햄스트링이 파열돼 열흘간 목발을 짚기도 했다”며 “역시 무엇을 해봐도 연기가 가장 어렵다”고 웃었다.

그는 요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헌트’ 홍보와 함께 다음 달 12일로 다가온 미국 에미상 시상식 관련 ‘오징어 게임’ 외신 인터뷰도 매일 하고 있다. 이정재는 “유럽·미국에서 접한 ‘오징어 게임’ 호응도가 제 생각보다 100배 정도 높더라”며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 14개 부문에 후보로 오른 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그는 “제2의 ‘오징어 게임’이 나올 기회를 빨리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동료들이 축하 문자를 줄 때마다 항상 ‘다음은 당신이야’라고 답장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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