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 후 여호와의증인 신도 급증? '여증 코인'의 반전 [대체복무리포트②]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징벌인가 공정인가 - 대체복무 심층리포트

〈목차〉
1화 "아빠는 교도소에서 산다"
2화 머나먼 길 - 대체복무자 심사에서 입소까지
3화 러시아 위협에 놓인 핀란드의 대체복무제는?
4화 핀란드 보수·진보가 바라보는 대체복무제
5화 대체복무제 이대로 좋은가

대체역제 도입 후 신도 현황 살펴보니    

2018년 헌재 결정과 대법원 판결 이후 법 개정으로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 길이 열렸다. 국제엠네스티

2018년 헌재 결정과 대법원 판결 이후 법 개정으로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 길이 열렸다. 국제엠네스티

“‘여증(여호와의증인) 코인’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SNS상에서 이런 용어가 회자가 되고 있고, 속칭 ‘군대 가는 놈이 바보다’ 이러한 인식이 퍼지고 있습니다.” (정갑윤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 2018년 11월 5일 제364회 국회 법사위 발언 중)

대법원이 병역거부 무죄 취지 판결을 내린 지난 2018년 11월 포털사이트 '네이버 지식인'에 특정 종교 가입 문의 글이 이어졌다. 네이버 캡쳐

대법원이 병역거부 무죄 취지 판결을 내린 지난 2018년 11월 포털사이트 '네이버 지식인'에 특정 종교 가입 문의 글이 이어졌다. 네이버 캡쳐

2018년 11월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 취지 판결을 내리자 일부 포털 사이트에서는 여호와의증인 가입을 문의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일각에서는 병역기피와 특정 종교 신도가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대체복무제 시행 1년 10개월이 지난 현재 이런 우려가 과연 현실이 됐는지 파악해봤다.

여호와의증인 측에 따르면, 대체역법이 통과된 2020년 이후 증가한 신도 수는 3340명이다. 이 중 만 19세 이상 미필 남성은 95명으로 전체 증가 인원의 2.8%에 해당한다.

2018년 11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11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여호와의증인 관계자는 “20대 미필 남성 신도의 증가 수는 인구 비율과 유사하거나 이에 못 미친다. 유의미한 신도 수 증가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각종 교리 교육과 수혈 거부 각서 등이 필요해 단순히 병역 기피를 위해 교인이 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2000년 대체복무를 도입한 대만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제기됐지만, 대만 여호와의증인 신도 증가율은 도입 이후 오히려 둔화했다.

“대체역 조사관 SNS 구독목록까지 검사”     

단순히 신도가 됐다고 ‘양심’, 즉 종교적 신념 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대체역 심사위원회의 검증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심사위원은 국방부, 병무청, 법무부, 국회 국방위, 대한변협, 인권위의 추천을 받아 위촉된 총 29명(상임위원 2명, 비상임위원 27명)이다. 심사는 ①사실 조사 ②사전 심사 ③전원 회의 3단계 검증을 거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사실 조사 단계에서는 조사관이 신청인 주변인과 종교 단체 등에 대해 서면·현장·온라인조사를 한다. 범죄경력 자료, 생활기록부, 신도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후 신청인은 사전 심사위원회에 출석해 면접 심사를 받은 뒤 전원회의에서 29명의 위원 중 과반 출석, 과반 찬성을 거쳐야 대체복무 대상자로 편입된다.

올해 상반기 조사와 심사를 받은 백민우(21)씨는 “SNS계정의 구독 목록까지 꼼꼼하게 확인하더라. 조사관들이 미리 제출한 진술서, 구비 서류에 맞춰 질문한다. 압박까지는 아니지만, 답변마다 추가 질문이 계속 들어왔다. 사전 심사 역시 위원들에게 믿음을 소명해야 하다 보니 긴장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2020년 7월, 대체역 심사위원회가 첫 전원회의를 열고 대체역 심사를 신청한 35명에 대해 심사하고 있다. 병무청 제공

2020년 7월, 대체역 심사위원회가 첫 전원회의를 열고 대체역 심사를 신청한 35명에 대해 심사하고 있다. 병무청 제공

병무청에 따르면 대체역 신청자 수는 2021년 상반기 211명, 하반기 363명, 2022년 상반기 142명으로 증가세를 보이지 않았다. ‘대체복무 쏠림’ 현상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대체역 심사위 “인용 2311건, 기각 3건, 각하 3건”

심사위원인 오재창 변호사(법무부 추천)는 “현행 대체역제는 징벌적인 수준이라 애초에 기피자가 나오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각종 서류와 면담을 통해 여러 차례 조사하기 때문에 말로 속여 심사를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2020년 7월, 대전 서구에서 열린 대체역 심사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심사위원들. 뉴스1

2020년 7월, 대전 서구에서 열린 대체역 심사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심사위원들. 뉴스1

고등군사법원장을 지낸 심사위원 최재석 변호사(국방부 추천)는 “개인적으로는 시행 초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서 “헌재 결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입장과 유연하게 해석하는 입장이 맞서곤 한다”고 설명했다.

제도 시행 이후 지난 5월까지 심사 결과에 따르면, 인용 2311건, 기각 3건, 각하 3건이었다. 인용된 2311건 중 종교적 사유는 2300건, 개인적 신념은 11건이다. 위원들 간 이견이 있었지만 ▶인용된 사례로는 ①평화주의 신념 ②동물해방 신념 ③학교폭력을 가한 여호와의증인 신도 등이 있었다. ▶기각 사례로는 ①디지털 성범죄 형사재판에 연루된 여호와의증인 신도 ②사회주의 신념 등이었다.

관련기사

“대체역 소집 경쟁률 6:1, 탈락만 3번”

대체역 편입이라는 산을 넘은 뒤에는 36개월 복무 시작에 앞서 현역병 보다 긴 복무 대기 기간을 견뎌야 한다. 제도 초기 대기자가 많고 합숙 시설이 부족해 적체 현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말 기준(병무청) 대체역 편입 인원 2271명 중 1407명이 복무 대기자다. 편입 인원 중 28세 이상은 404명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학원 강사 송민(27)씨는 지난 6월 병무청으로부터 소집에서 탈락했다는 메시지를 받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 하반기, 올해 상반기 소집에 이어 하반기 소집에서도 탈락해 총 3번의 고배를 마신 것. 3년 복무에 앞서 대기 기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고 한다.

송씨는 “복무를 마치면 30대 초반이다. 경제학·국제통상학을 전공했지만 적지 않은 나이와 3년의 경력 공백으로 강사 이외 안정적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모친이 최근 뇌수술을 받고, 부친도 거동이 불편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얼른 복무를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하반기 지원의 경우 올해 7·10·11월 입소자 106명 정도를 뽑았는데 지원 인원은 600명가량 됐다고 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경쟁률은 5.9:1이었다.

2020년 10월 26일 대전교도소 대체복무 교육센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63명의 첫 입교식에 참석하는 입소자들. 연합뉴스

2020년 10월 26일 대전교도소 대체복무 교육센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63명의 첫 입교식에 참석하는 입소자들. 연합뉴스

기혼자인 박경찬(27)씨도 입소 지연에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지난 6월 입소자 모집에서 탈락한 박씨는 2015년까지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했다. 하지만 대체복무제 도입 전이었던 당시 병역거부로 인한 징역형이 예상되자 해고를 당하기 전 자진 퇴사했다. 이후 지게차 운전, 에어컨 일용직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그는 “7년간 재판과 심사를 거친 뒤 이제 복무를 하나 싶었는데 떨어졌다. 나이가 차 병무청이 직권 소집할 때까지 2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병무청 관계자는 “올해 전체 대체복무 경쟁률은 2.3:1이 맞는다. 다만 이는 입소일을 병무청이 정하는 ‘직권 소집’과 신청인이 정하는 ‘본인선택 소집’의 수치를 합한 결과로, 본인선택 소집의 경쟁률은 더 높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전국 18개 교도소 887명 복무, 기관별 평균 약 50명

지난 6월 13일 대전교도소 앞에서 입소 전 박수혁(28·오른쪽)씨와 그의 아내 홍지원(24·왼쪽)씨. 이영근 기자

지난 6월 13일 대전교도소 앞에서 입소 전 박수혁(28·오른쪽)씨와 그의 아내 홍지원(24·왼쪽)씨. 이영근 기자

지난 6월 13일 대체복무 입소식이 열린 대전교도소에서 만난 박수혁(28)씨도 “대체역 편입 통보를 받은 뒤 1년 반 정도 기다린 뒤 소집됐다”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입소식에 참석한 박씨는 “사회에서 타일공으로 일했는데 입소 대기기간 좋은 일자리 제안을 거절한 적도 많다”면서 “앞으로의 경력단절이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아들 입소식을 위해 참석한 정선호(65)씨는 “나도 병역 거부로 징역살이하면서 수형자한테 구타를 당해 장 파열로 죽은 동료를 봤다. 암담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면서 “제도 도입에 감사한 마음이지만, 3년 합숙은 너무 길다. 입소 대기도 현역 대비 길어 지나치게 길다”고 했다.

지난 6월 13일, 아내와 며느리와 함께 아들의 대전교도소 입소 배웅을 나온 김칠성(53·맨오른쪽)씨. 김씨는 "대체복무제를 융통성 있게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영근 기자

지난 6월 13일, 아내와 며느리와 함께 아들의 대전교도소 입소 배웅을 나온 김칠성(53·맨오른쪽)씨. 김씨는 "대체복무제를 융통성 있게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영근 기자

법무부에 따르면 전국 18개 교도소에서 총 887명이 복무 중이며 기관별 복무 인원은 50명 내외다. 법무부는 2025년까지 34개 기관에 합숙 시설을 만들어 1680명이 복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예정이다. 병무청 관계자는 “교정 시설의 합숙 시설 부족, 대기자 편입이 집중돼 소집 지연이 일시적으로 발생하였으나 2024년 이후에는 점차 해소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무지 확대 고민할 때”

박문언 한국국방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합숙을 고집할 필요 없이 복지시설 등으로 복무지 확대를 고민해야 한다”면서 “병역 자원 감소로 장기적으로 사회복무요원 등이 속한 보충역제 축소는 피할 수 없다. 이에 따른 인력 감소를 대체복무자가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를 위해선 병무청 등 예산 확대, 수도권 쏠림 현상 방지 등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진석용 대체역 심사위 초대 위원장 인터뷰

지난 6월 대체역 심사위 초대 위원장을 역임한 진석용 대전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는 "대체복무제 복무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국 기자

지난 6월 대체역 심사위 초대 위원장을 역임한 진석용 대전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는 "대체복무제 복무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국 기자

대체복무제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2005년 병무청에서 의뢰 받은 저출생시대 병역 정책 연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역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에서 대체복무제 도입에 관심이 있었고 이후 이명박 정부인 2008년 5월 무렵 병무청에서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 설계에 관한 연구용역을 의뢰받아 6개월간 수행했지만 국방부가 2008년 12월 보류 결정을 내렸다. 
이후 도입까지 꽤 시간이 걸렸는데
2018년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고 국방부에서 대체역 자문위원회로 부르더라. 복무 기간과 형태가 쟁점이었다. 2008년 연구보고서를 기초로 기간은 현역보다 1년 더 복무하는, 현역 복무 기간 대비 약 1.7배를 제안했다. 보건·복지, 사회 보장 등 복무지에서 출·퇴근 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하지만 대체 복무제는 36개월 교정 시설 복무로 결정됐다.    
법 감정, 부정적 여론을 감안해서 그렇다. 2008년 조사에선 대체역제 도입 반대가 68%였지만 지금은 절반 정도다. 또 국방부가 합숙을 전제로 설계해 합숙 시설 없는 교정 외 분야에선 여건이 마땅치 않았다. 소록도 같은 험지 복지시설 등이 복무지로 논의됐지만 국방부는 복무지가 다양하면 형평성 논란이 나올 수 있으니 수요가 있는 교도소로 한정하자고 했다.  
현 제도가 징벌적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우리 징병제 논의에선 형평성이 최우선 순위인데 그 형평성은 '고통의 평등'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현역병 만큼 혹은 그 이상의 고통을 겪어야 하기에 합숙해야 한다는 논리다. 지금 제도는 충분히 가혹하다. 부작용이 없다면 징벌적 요소는 줄여야 한다. 기간을 1.5배로 줄이거나 2년 합숙, 1년 출·퇴근 복무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또 현역병 처우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닮은꼴처럼 징벌적인 제도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반대편에선 ‘가짜 양심’을 가려낼 수 있냐는 우려도 있다
그런 의심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누군가 신앙·신념을 갖고 있으면 그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세례, 봉사 등 행적을 심사한다. 각종 증빙 서류를 포함해 1인당 보고서가 70쪽 내외, 심사위원은 29명이다. 그 정도로 꼼꼼하지만 가혹하게 심사하고 있다. 비용과 효율성 측면에서 위원 수는 9명 정도로 축소해도 문제없다고 본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