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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5세 입학' 미스터리…공약도 국정과제도 아닌데 돌연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방안이 각계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 가운데, 교육부가 뒤늦게 학부모 의견 수렴에 나서고 있다. 학부모와 교사를 포함한 시민 13만명 중 98%가 만 5세 입학에 반대한다는 온라인 설문 결과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정책이 폐기 수순으로 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야당에서는 만 5세 입학 정책이 갑자기 등장한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학부모 단체 간담회에서 취학연령 하향 관련 학부모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뉴스1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학부모 단체 간담회에서 취학연령 하향 관련 학부모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뉴스1

발달 단계 우려…98% 반대

3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인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학부모와 교사 등 시민 97.9%가 만 5세 입학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강득구 의원실이 지난 1일부터 3일간 전국 학부모 7만3120명, 교직원 3만7534명 등 총 13만107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다. 전체 응답자 중 학부모가 55.8%였다.

만 5세 입학에 반대하는 이유(중복 응답 가능)로는 ▲학생 발달단계에 맞지 않아 연령이 낮은 학생들이 피해를 봄(68.3%) ▲영·유아 교육시스템의 축소(53.3%) ▲조기교육 열풍으로 사교육비 증가 우려(52.7%)가 꼽혔다. 강 의원은 "대다수 국민이 반대한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반대 목소리가 거세지자 교육부는 다급히 여론 수렴에 나섰다. 2일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학부모 단체 관계자를 만난 데 이어 3일 오전에는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정부 서울청사에서 유치원 학부모 간담회를 가졌다.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이틀 연속 학부모 간담회 자리를 급히 마련한 것이다.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회원들이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의 초등학교 입학 연령 하향 추진 방침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회원들이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의 초등학교 입학 연령 하향 추진 방침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교육부는 반대 여론을 의식해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이날 간담회에서 장상윤 차관은 "대통령 업무보고를 했더라도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문제를 보완해나갈 것"이라며 "의견 수렴 과정 중 '시기상조다',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이 나오면 그것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이날 오전 장 차관은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폐지로 결론이 나오더라도 그게 국민의 뜻이라면 저희는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앞서 2일 박 부총리도 학부모들의 질타를 받았다. 정지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는 "아이들 발달 단계에 맞지 않는 교육을 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간다"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박 부총리가 손을 잡으려 했지만 정 대표는 "위로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라며 손길을 뿌리쳤다.

"교육청 허수아비 취급" 비판 달래기 

교육부는 만 5세 입학 정책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소외됐던 시·도교육감을 달래기 위한 자리도 뒤늦게 마련했다. 박 부총리는 3일 오전 전국 시·도교육감과 화상회의를 열고 만 5세 입학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이날 회의는 2학기 학교방역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만 5세 입학이 급히 회의 내용에 추가됐다.

이날 보수 성향의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취학연령 하향 조정에 앞서 유보 통합(유치원·어린이집 과정의 통합)과 초등 저학년 방과 후 돌봄 확충, 만 5세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앞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정책 철회를 요구한 바 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3일 오전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유치원 학부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3일 오전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유치원 학부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교육계에선 국정과제나 대통령 후보 공약에 없었던 학제개편이 어떻게 업무보고 대상이 됐는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유기홍 교육위원장은 "학제개편은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인데 국회와 어떤 논의도 없이 업무보고가 이뤄졌다"며 "업무보고 전에 교육위원장과 논의하는 관행마저도 무시됐다"고 했다. 야당 교육위 의원들은 국회와 사전 협의도 없고 교육부 내부에서도 충분한 논의가 없었던 정책이 갑자기 등장한 배경에 주목하고 만 5세 입학이 대통령 업무보고에 포함된 경위를 밝히라고 교육부에 요구했다.

교육부는 유아 교육에서 공교육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나온 정책이라고 설명한다. 장 차관은 이날 학부모 간담회에서 "유보통합부터 초등전일제 문제를 검토하다 보니 공교육 시작 시기를 앞당기고 더 어린 나이에 돌봄을 제공하면 효과가 좋겠다는 판단에서 나온 정책"이라고 말했다. 국정과제인 '공교육 책임 강화'의 일환이라는 취지다.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는 지난 1일 시작된 릴레이 집회를 이날 오후에도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이어간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4일 국회에서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추진 정책의 철회를 위한 긴급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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