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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펍지 유니버스' 꿈꾼 크래프톤의 상장 1주년, 고래는 찾았나

중앙일보

입력

크래프톤 로고. [사진 크래프톤]

크래프톤 로고. [사진 크래프톤]

무슨일이야

게임 회사 크래프톤이 오는 10일 유가증권시장(코스피) 데뷔 1주년을 맞이한다. 회사는 상장 당시 증권신고서에서 “주력 사업인 게임 개발에서 나아가 엔터테인먼트 콘텐트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졌었다. 대표작인 ‘펍지:배틀그라운드(배그)’와 후속 작품들의 지식재산(IP)을 활용해 게임 밖으로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포부였다. 이른바 '펍지(배그) 유니버스'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그린 것. 1년이 지난 지금, 크래프톤 성과를 살펴봤다.

크래프톤, 얼마나 컸나

크래프톤은 공모가액 선정 단계부터 비교 대상을 디즈니와 워너 뮤직 등 사업구조가 전혀 다른 외국의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로 선정해 ‘몸값 부풀리기’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상장 당일에는 최종 공모가(49만8000원)보다 낮은 주당 45만 원대에 거래를 마감하면서 체면을 구겼지만, 시가총액 22조2000억원을 기록하며 엔씨소프트(17조8925억원)를 누르고 ‘게임 대장주’에 올랐다.

문제는 지난해 말부터 주가가 폭포수처럼 흘려 내렸다는 점. 게임업계 전반이 하락세였지만, 상장 1년차 크래프톤 투자자들에겐 충격이 더 컸다. 지난 1일 종가 기준 크래프톤은 주당 24만3000원으로, 공모가의 절반 수준이다. 같은 기간 시가총액도 22조2000억원→11조9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증시 성적은 초라하지만, 크래프톤의 상장후 첫 1년을 평가할 포인트는 더 있다. 키워드는 인도, IP 전략, C2E(메타버스) 셋이다.

크래프톤의 글로벌 히트작 '배틀그라운드'. 사진 크래프톤

크래프톤의 글로벌 히트작 '배틀그라운드'. 사진 크래프톤

① 인도는 기회의 땅인가: 크래프톤이 자랑하는 ‘배그 IP’는 인도에서 통할 수 있을까? 답은 ‘그렇다’였다. 2020년 크래프톤이 인도 현지법인 설립한 뒤, 이듬해 ‘모바일 배그’를 출시했을 당시만 해도 게임업계 일각에선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세간의 우려와는 다르게 지난달 2일 기준 출시 1년만에 누적 이용자 수 1억명을 돌파하는 ‘깜짝 성공’을 거뒀다. 내부에선 “배그IP가 인도에서 성공할 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들뜬 분위기다. 크래프톤 관계자는 “인도 진출 성공을 교두보로 중동을 비롯한 다른 시장까지 개척한다는 것이 장기적인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위험 요소도 있다. 중국과 국경 분쟁 중인 인도에선 최근 수년간 반중 정서가 빠르게 확산됐다. 이 때문에 중국계 자본이 섞인 외국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도 좋지 않은 편. 크래프톤도 중국 텐센트 산하 투자 전문 자회사를 2대 주주(지분율 13.5%)로 두고 있어, 양국 갈등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달 31일 인도 당국이 현지의 앱 마켓에서 모바일 배그의 다운로드를 차단하며 우려가 현실이 됐다. 인도는 지난 2020년 중국 등과 국경 분쟁이 일어난 당시에도 중국 앱 100여개를 무더기로 현지 앱 마켓에서 퇴출했었다.

② ‘원(one) IP’ 탈피 성공했나: ‘첫째(배그)’의 성공은 고무적이었지만, ‘형만 한 아우’가 나오지 않는 상황은 여전한 고민거리다. 지난해 11월, 상장 후 첫 신작이었던 ‘배틀그라운드: NEW STATE(뉴스테이트)’가 흥행에 참패하면서 크래프톤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흥행 산업인 게임업에서 꾸준히 신작 흥행이 이어지지 않으면 재무 실적도 끌어올리기 어렵다. 실적 컨퍼런스콜 등을 종합하면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 매출 중 뉴스테이트가 차지한 비율은 모두 한 자릿수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크래프톤이 지난해 11월 출시한 ‘배틀그라운드: NEW STATE’의 모습. [사진 크래프톤]

크래프톤이 지난해 11월 출시한 ‘배틀그라운드: NEW STATE’의 모습. [사진 크래프톤]

③ C2E가 새로운 ‘고래’?: 크래프톤의 기대는 ‘C2E(Create to Earn, 창작으로 수익을 내는)’ 기반 메타버스 프로젝트 ‘미글루’로 모아지고 있다. 회사는 지난 5월 하얀색 알비노 혹등고래에서 이름을 땄다고 공개하며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성장한 미글루처럼, 크립토 세상을 즐겁게 유영하는 장기 프로젝트가 되겠다"고 밝혔다. 김창한 대표가 직접 공들이고 있고, 네이버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와 함께 개발 중이다. 이용자가 직접 물건을 제작하거나, NFT(대체불가능토큰)를 발행해 스스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만든다는 계획. 성공한다면 기존 배그와 같은 FPS(1인칭 슈팅) 게임 이외에 메타버스, 블록체인 등으로 '펍지 유니버스'를 넓힐 수 있다.

다만 내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라 실적으로 반영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더구나 게임업계에서 돈을 많이 쓰는 ‘고래(게임 내 유료결제 비중이 높은 이용자)’가 게임사의 수익에 큰 영향을 미치듯, 미글루의 성공은 크리에이터들에 달려있을 수 있다. 이들에게 매력적인 창작자 플랫폼으로 클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크래프톤 측은 “미글루의 수익모델 등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밝혔다.

크래프톤이 개발중인 메타버스 플랫폼 '미글루'의 모습. [사진 미글루]

크래프톤이 개발중인 메타버스 플랫폼 '미글루'의 모습. [사진 미글루]

앞으로는

주가와 보상 : 최근 급격히 얼어붙은 증시는 넘어야 할 산이다. 투자자들의 원망 못지 않게, 내부 사기가 꺾인 점은 경영진으로선 큰 부담이다. 상장 당시 우리 사주 청약으로 크래프톤 직원 1인당 278주를 받았는데, 1인당 평균 7000만원이 넘는 평가손실을 기록하고 있다.올해 초부터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이 여러 차례에 걸쳐 크래프톤 주식 총 300억원어치를 매입하는 등 책임경영 의지를 보였지만, 어수선한 내부 분위기를 수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올해의 새로운 IP: 주가와 실적을 모두 만회하려면 크래프톤으로선 내년에 C2E 플랫폼이 출시되기 전까지 새로운 IP의 흥행이 절실하다. 올해 하반기에 나올 신작 '칼리스토 프로토콜'과 '프로젝트 M' 등의 성패가 중요한 이유다. 특히 칼리스토 프로토콜은 2019년 영입한 유명 게임 제작자 글렌 스코필드가 크래프톤에서 내놓는 첫 대형 콘솔 게임인 만큼, 내부에서는 배그에 이은 대형 IP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눈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