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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유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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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전국을 통일한 진(秦)나라는 군현제(郡縣制)라는 시스템을 세웠다. 혁신적 독재자였던 진시황을 정점으로 각 조직이 톱니바퀴 맞추듯 일사불란하게 굴러가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진시황이 사망하자 시스템은 멈췄다. 모두 황제만 바라보게 했던 결과다. 전국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강력했던 진나라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이후 천하를 다시 통일한 한(漢)나라의 유방은 진나라의 군현제와 이전 주(周)나라의 봉건제를 적절히 섞은 군국제(郡國制)를 도입했다. 공신들을 포상하고, 아직은 무르익지 않은 황제의 권력을 다지기까지의 과도기적 체제였다.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국정을 만기친람한 진시황은 수 대에 걸쳐 제왕학을 학습한 진나라 왕실 출신이다. 그에게는 군현제가 잘 맞았을 것이다. 반면 하급 관리 출신인 유방은 제왕학이라곤 배운 적 없는 농민 출신이다. 지역 협객으로 유명했던 그는 사람을 사귀고 자신의 밑에 끌어들이는 재주가 능했다. 훗날 ‘토사구팽’ 당한 한신이 유방에게 “폐하는 군대를 많이 다룰 수는 없지만, 병사들의 장수가 아닌 장수들의 장수가 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이유다. 이 말은 유방의 장점과 지도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유방도 국정은 개국 공신이자 유능한 재상인 소하·진평 등에게 맡겼다. 유방 자신은 혼란에서 막 벗어난 백성을 안심시키는 데 주력했다.

사실 어느 체제가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렵다. 단지 시대적 특성과 지도자의 스타일 등을 따져보고, 현재에 더 적절한 모델을 참고해 볼 수는 있다. 그것이 역사가 주는 선물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