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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 “30개월 만에 극장서 만난 관객, 가슴이 끓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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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영화 ‘비상선언’에서 배우 이병헌은 비행 공포증임에도 딸의 아토피 치료를 위해 하와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재혁’을 연기했다. [사진 쇼박스]

영화 ‘비상선언’에서 배우 이병헌은 비행 공포증임에도 딸의 아토피 치료를 위해 하와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재혁’을 연기했다. [사진 쇼박스]

“한국영화 ‘빅4’ 경쟁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극장이 침체기였으니 한국영화가 다 잘 됐으면 좋겠죠. 그래도 우리 영화가 제일 잘 됐으면 좋겠어요.”(웃음)

32년차 배우에게도 오랜만의 스크린 컴백은 설레는 일인 듯했다. 특히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이 막혔던 시기를 겪었기에 더욱 그럴 터다. 3일 개봉하는 ‘비상선언’으로 2년 6개월 만에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는 배우 이병헌(52)을 지난달 말 화상으로 만났다. ‘비상선언’은 2020년 10월 촬영을 마쳤고 지난해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도 초청된 작품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개봉이 수차례 연기됐다.

이병헌은 “이젠 OTT가 주류인 시대가 된 걸까 등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영화 산업 종사자라면 대부분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라며 “그런데 최근 잘 되는 작품들이 또 나오는 걸 보면서 ‘아 극장은 죽지 않았구나’라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어 “오랜만에 무대 인사를 하며 극장에서 관객들을 마주하니, 뭔가 마음에서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런 설렘을 안고 이병헌이 준비한 영화 ‘비상선언’은 국내에서 처음 제작된 대규모 항공 재난물이다. 이병헌은 딸의 아토피 치료를 위해 하와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가 테러에 직면하게 되는 재혁을 연기했다. 비행 공포증 때문에 자신도 두려운 와중에 딸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부성애가 돋보이는 역할이다. 작품을 결정할 때 “온전히 내 감성에 맡긴다”는 그는 ‘비상선언’ 역시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그냥 재밌었다”는 이유로 출연을 결심했다.

픽션이었던 극 중 재난 상황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의도치 않게 현실과의 높은 싱크로율을 갖게 됐다. 재난 앞에 누군가는 차별과 이기심으로 대응하고, 반대로 누군가는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등 갖가지 인간 군상이 드러난 지점이 특히 그렇다. 이병헌은 바로 이런 측면을 ‘비상선언’이 기존 블록버스터 재난물과 다른 차별점으로 꼽았다. “많은 재난 영화가 어떤 영웅이 나타나서 문제를 이겨내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면, 이 영화는 여러 주인공이 각자의 방법으로 재난에 싸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누군가는 이기심을 보이는가 하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있죠. 인간성을 조금씩 잃어가는 시대에 사람들이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게끔 만드는 영화일 거라 생각하고, 또 그렇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항공 재난영화답게 현실감 있게 완성된 기내 액션 장면들은 ‘비상선언’의 최대 관전 포인트다. 실제 360도 회전하는 등 디테일하게 구현된 세트에 올라타 촬영한 이병헌은 “세트장 실내가 워낙 비행기와 똑같아서 연기에 큰 도움을 받았다”며 “이제 우리나라 영화 기술력은 할리우드와 비교해도 전혀 모자람 없는 수준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최근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tvN)에서 만물상 동석 역으로 시청자를 만났던 이병헌은 친근한 인물을 설득력 있게 연기하는 비결에 대해 “감성 자체가 평범한 사람에 가까워서 그럴 수 있지 않나 싶다”고 했다. “저도 그런 연기를 하는 게 사실 좀 더 편해요. 아무래도 직접 경험한 걸 연기할 때 가장 자신 있게 연기할 수 있거든요. 킬러나 스파이 같은 극단적인 직업군은 상상에 의존해 연기해야 해서 자신감이 조금 덜할 수 있죠.”

어떤 배우를 지향하느냐는 질문에 “타성에 젖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답을 내놓은 그는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 당시 김혜자·고두심, 두 대선배를 보고 “반성했다”고 회상했다.

“김혜자 선생님은 현장에 와서 촬영 전까지 리허설을 정말 수십 번을 하시더라고요. 고두심 선생님은 계속 인물의 정서에 빠져있으면서 당신도 모르게 ‘아, 불쌍해’ ‘못됐어’ 이런 말들을 하실 때가 있었죠.”

이병헌은 “그렇게 애쓰는 두 분을 보면서 ‘내가 정말 태만해지고 게을러졌구나’ 깨달으며 반성하게 됐다”며 “오래됐다고 해서 습관처럼 연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엉뚱하다면 엉뚱하게, 창의적이라면 창의적이게, 내 안에서 ‘반짝’ 하는 것들을 표현하는 배우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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