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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 옆 화제의 통역사 “하숙집 주인이 한국어 스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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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김민재의 나폴리 첫 기자회견을 통역하는 데 베네디티스 교수(오른쪽). [사진 나폴리 트위터]

김민재의 나폴리 첫 기자회견을 통역하는 데 베네디티스 교수(오른쪽). [사진 나폴리 트위터]

“엄청 잘하는 것도 아닌데요. 요즘 한국엔 저보다 한국어 잘하는 외국인들 널렸잖아요. (웃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안드레아 데 베네디티스(44) 나폴리동양학대 교수의 한국어는 유창했다. 그는 최근 축구 팬 사이에서 화제가 된 인물이다. 지난달 31일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의 나폴리에 입단한 국가대표 수비수 김민재(26)의 첫 기자회견 통역을 맡으면서다. 데 베네디티스 교수의 노련한 대처로 김민재는 약 20분간 이어진 인터뷰를 막힘없이 마쳤다.

데 베네디티스 교수는 1일 전화 인터뷰에서 “통역을 본 한국 네티즌의 반응을 지인이 보내줬다. 기대 이상으로 칭찬과 격려를 해줘서 감사하다. 사실 기자회견 내내 너무 긴장해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며 웃었다.

그는 나폴리 구단으로부터 통역 제안을 받았을 때 망설였다고 했다. 데 베네디티스 교수는 “이탈리아인으로는 드물게 축구를 안 좋아한다”면서 “전문 지식이 부족해 괜히 선수의 말을 잘못 전달했다가 망신당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나폴리의 열혈 팬인 가족이 ‘나폴리 선수 통역할 기회를 날리면 가만 안 두겠다’며 협박하는 바람에 통역을 맡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구단의 제안은 일회성이었다. 하지만 통역이 아니더라도 김민재의 이탈리아어 과외 선생님은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데 베네디티스 교수는 이탈리아에서 알아주는 ‘한국통’이다. 그는 나폴리동양학대에 다니던 2000년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와 경희대에서 1년간 공부했다. 하숙집 아줌마가 그의 훌륭한 한국어 선생님이었다. 매일 이런저런 주제로 대화하면서 듣고 말하는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데 베네디티스 교수는 나폴리동양학대에서 ‘신라 화랑도 연구’로 석사를, 로마 라사피엔차대에서 ‘고구려 벽화에서 본 고구려인의 생사관’이라는 논문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잘 팔리는 한국어 교재도 4권까지 집필, 출간했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김영하의 『빛의 제국』, 황석영의 『바리데기』 등 유명 한국 소설들이 모두 그의 번역을 거쳐 이탈리아에서 출간되기도 했다. 다음 달엔 그가 번역한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이탈리아에서 나온다.

K팝 영향으로 올해 250명이 나폴리동양학대 한국학과에 입학했다. 1959년 학과 개설 이래 최대 규모다.

그는 “한국은 작지만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 저력 있는 나라다. 앞으로도 세계 문화의 유행을 이끌 콘텐트를 만들 것”이라면서 “이런 한국을 연구해 이탈리아에 접목할 차세대 한국학 연구자를 키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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