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상 못받은 BTS, 인종차별 탓인줄 알았는데…착각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2.08.02 06:00

업데이트 2022.08.0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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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평론가 인터뷰 시리즈(4)

평론가 김헌식을 지난 6월 7일 서울 영등포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상문 기자

평론가 김헌식을 지난 6월 7일 서울 영등포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상문 기자

  “음악 평론가 인터뷰 시리즈 네 번째로 대중문화 평론가 김헌식(47)을 만났다. 그는 고려대학교에서 정책학으로, 건국대에서 문화정보콘텐츠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공공정책의 시선으로 대중문화 현상을 조명해 왔다. 한국방송대상 선정위원, SBS시청자평가 위원을 지냈고, 작가·방송인·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대중문화 심리읽기』『대중문화 심리로 읽는 한국사회』『케이팝 뮤직의 DNA』 등의 저서가 있다.”

K팝을 대표하는 방탄소년단(BTS)이지만 권위 있는 기성 음악인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지는 못한 듯하다. 일례로 지난 4월 BTS는 미국 그래미상 후보에는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수상 불발의 이유에 대해 김헌식 평론가는 기성 대중음악계가 젊은 여성들이 주축인 K팝 문화를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K팝에 대한 서구 주류사회의 이 같은 태도를 아시안 차별 같은 인종 문제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이것은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젠더의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지난 6월 7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K팝을 주도하는 게 여성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K팝 팬덤의 주축을 이루는 건 10~20대 여성이다. 이들은 구매력이나 정치 권력 면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집단이다. 이들이 오늘의 K팝 문화를 만들어 왔기에 대중음악계 권위자 집단에서는 ‘이건 진정한 음악이 아니다’라고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여성 팬 자신들도 K팝에 대한 비하가 젠더의 문제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래미 수상을 얘기할 때 자꾸 인종적 다양성을 거론한다. 하지만 이 프레임은 적절치 않다. 흑인 아티스트들도 그래미상을 많이 받는다. 국내 권위 있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K팝이 ‘제대로 된’ 음악으로 인정받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BTS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나서야  K팝이란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독특한 장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김헌식 평론가는 K팝의 가장 큰 특징으로 팬덤을 꼽았다. 다른 음악 장르와 달리 K팝은 소비자인 팬의 의견을 빨리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사진은 지난 4월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얼리전트 스타디움에서 방탄소년단(BTS) 팬덤인 아미가 기념 촬영하고 있는 모습. 라스베이거스=연합뉴스

김헌식 평론가는 K팝의 가장 큰 특징으로 팬덤을 꼽았다. 다른 음악 장르와 달리 K팝은 소비자인 팬의 의견을 빨리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사진은 지난 4월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얼리전트 스타디움에서 방탄소년단(BTS) 팬덤인 아미가 기념 촬영하고 있는 모습. 라스베이거스=연합뉴스

서구사회와 기성세대는 왜 K팝을 인정하지 않나.  
K팝은 SNS와 유튜브를 통해 확산됐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해온, 매스미디어를 타고 유명해진 전통적인 개념의 20세기 스타와는 성장 경로가 다르다. K팝에 대한 많은 몰이해나 반발이 이 다름에 기인한다. 전통 매스미디어에 익숙한 사람들, 즉 서구 기성세대의 시선으로 보면 K팝의 부상은 이해가 안 되는 거고 인정하는 게 내키지 않을 거다. 들어본 적도 없고 자국의 대중매체에서는 본 적도 없는 한국 가수들이 갑자기 어디선가 나와서 빌보드차트 1위를 찍으니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가까운 시간에 K팝 그룹이 그래미를 수상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하지만 문화의 전파 통로가 소셜미디어로 옮겨가고 있으니 점차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음악이 더 이상 청각적으로 만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소비되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서 K팝은 굉장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K팝이야말로 소비자의 오감을 즐겁게 하는 걸 강조하는 분야 아닌가.  
기존 대중음악이나 타 장르와 K팝의 차이는 무엇인가.  
K팝이 다른 음악 장르와 가장 차별화되는 건 팬덤이다. K팝의 팬덤 문화는 과열되어 공격적으로 변질될 소지가 많긴 하지만 이같은 가수와 팬의 관계에 대한 특수성을 봐야 K팝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K팝의 기본 정신은 굉장한 소비자 중심주의다. 영미권 팝 스타는 여전히 아티스트 중심으로 돌아간다. 가수가 노래를 내놓고 대중에게 ‘이게 내 노래, 이게 내 춤입니다. 좋으면 듣고 싫으면 말아요’라는 태도다. 반면 K팝은 팬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세심하게 신경 쓰고, 불편해하는 요소가 있으면 바로 고칠 준비가 되어있다. K팝의 주도권은 팬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K팝 팬들은 온라인에 모여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를 자발적으로 홍보한다. 이는 반대로 K팝 가수들이 팬들의 취향에 그만큼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사나 뮤직비디오의 어떤 부분에 대해 부정적인 피드백이 있으면 바로 해당 부분을 수정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이들은 K팝 가수들의 이런 태도를 비난하기도 하는데 나는 이게 비난받을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K팝은 작동 원리가 다른 거다. K팝이 아티스트를 상품처럼 내놓고 운용하는 게 차라리 솔직하다. 팝 뮤직, 그러니까 대중음악 자체도 처음에는 너무 상업적이라고 클래식 음악에 비해 폄하됐다. 그래서 대중음악인도 상업적으로 보이는 것을 매우 지양해왔는데, K팝은 문화권별로 다른 대중이 원하는 서비스, 즉 노래, 퍼포먼스, 팬과의 소통 등을 적극적으로 기꺼이 제공한다. ‘대중음악’이라는 말의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다. 바꿔 말해 K팝 가수들과 기획사가 팬들의 수요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따라잡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 계발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산업이다.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5월 31일 미국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5월 31일 미국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K팝 팬도 다양한 집단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여러 집단의 의견이 충돌할 때 K팝 가수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문화 전쟁의 서막이 열리고 있다고 본다. 같은 가수의 팬들이라도 각자 다른 나라와 문화권 출신의 팬들 입장이 충돌할 수 있다. 결국엔 인원수가 많고 결집력이 높은 쪽이 이기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가수와 기획사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팬덤 내 어떤 집단이 더 큰지 고려해야 한다. 그런 전략의 결과를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데,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 목소리를 낸 K팝 아이돌이 없었다. 왜냐하면 러시아 팬이나 러시아 측에 동조하는 나라 출신의 팬들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이다. 인도네시아가 친 러시아적인 입장으로 알려져 있고, 인도네시아 국민 다수가 러시아의 침공을 응원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에 성장하고 있는 K팝 시장이다. 이들을 등 돌리게 하고 싶은 가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선 팬 중심주의는 K팝의 경쟁력이지만, 다른 국가와 문화권의 팬들 사이에서 분쟁을 일으킬 소지도 다분하다. 가수들은 팬들, 아니 팬 중에서도 수가 많은 지역의 팬들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될 수 있다.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 '러브시크 걸스(Lovesick Girls)'에 간호사 복장으로 등장한 제니. 이 장면은 간호사를 성 상품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결국 삭제됐다. [러브시크 걸스 뮤직비디오 캡처]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 '러브시크 걸스(Lovesick Girls)'에 간호사 복장으로 등장한 제니. 이 장면은 간호사를 성 상품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결국 삭제됐다. [러브시크 걸스 뮤직비디오 캡처]

이 문화 전쟁이 향후에는 어떤 양상을 띠게 될까.  
이제 곧 K팝 가수들이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는지가 K팝의 쟁점이 될 것이다. 누군가를 대변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요소다. BTS가 인기를 얻은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BTS 이전 K팝 아이돌은 말 그대로 아이돌, 즉 우상의 이미지를 내세웠다.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아름답고 신적인 존재로 비쳤다. 하지만 BTS는 스스로 팬들의 또래임을 자처했고, 십 대들과 그 나잇대 젊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만한 노랫말을 부르고 진솔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유했다. K팝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팬덤이 확대되는 것은 좋지만, 또 다른 숙제가 생긴다. K팝이 어떻게 그 많은 지역의 문화와 종교까지 고려해서 현지 취향에 맞출 수 있을까. 아니면 반발을 우려해 아예 소수인종이나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얘기를 삼갈 것인가. 그 답이 항상 어느 집단의 팬덤이 더 큰 규모인가로 결정된다면 전망은 좋지 않다. 작은 실수 하나로 엄청난 수의 팬들이 등을 돌릴 우려가 있고, 한편으로는 안전하게 가려고 의견 표현을 아예 안 하다가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진정성이 없게 된다. 정말 답하기 어려운 과제인데 K팝이 정말 국제적으로 도약하고 싶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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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를 공공정책 관점으로 분석해 오셨다. K팝이 더욱 번성하려면 어떤 구조적 개선이 필요한가. 
K팝이 국제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지속가능한 선순환을 구축하지는 못한 단계이다. K팝에서는 앨범 판매량이나 차트 순위 같은 숫자를 매우 강조하는데, 모두 중요한 지표이긴 하지만 그 수익이 실제 공연자(아이돌 멤버 포함)와 창작자에게 공정하게 돌아가는 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 K팝은 승자 독식 구조다. 차트 1위를 휩쓰는 대형 기획사나 아티스트들이 대부분을 가져가는 구조이다. 정부조차 현재 이미 성공한 K팝 가수의 유명세를 활용하기에만 급급하고 소규모이거나 신인인 아티스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K팝 시장에서 발생한 수익이 창작과정에 포함된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배분될 수 있도록 하는 투명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래야 이후에도 대형 K팝 스타가 계속 나올 수 있다. BTS가 성공한 이유를 잊지 말아야 한다. 대형 기획사 출신도 아니었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소신 있게 하고자 하는 청년들로 시작했다. 그런 젊은이들의 정신을 잊으면 안 된다.

* 이 기사는 코리아중앙데일리 6월 29일자 12면에 보도된 영문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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