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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대박 이어 홈마카세…'입사 반년차' 96년생이 실세인 회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가상 게임으로 마트 ‘오픈런’을 유도하고, 유명 오마카세(맡김 차림) 음식점에서 대형마트 한우 브랜드를 선보인다-.

최근 유통업계서 쏟아지는 이 같은 ‘신박’한 아이디어의 뒤에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태난 젊은 층)가 있다. 단순 아이디어 제안 차원이 아니라 기획·실행·마케팅까지 주도한다는 점에서 예전보다 업그레이드됐다. 성공 사례가 쌓이면서 조직 내에서 MZ 직원의 의견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가상 세계서 ‘오픈런’ 해볼까

SSG닷컴은 MZ세대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활용한 신규 서비스 ‘메타버쓱 오픈런’을 선보인다고 1일 밝혔다. 메타버스 플랫폼 ‘젭(ZEP)’에 게임과 쇼핑 요소를 접목, 주어진 미션을 수행한 참가자에게 인기 상품을 특가로 판매하는 서비스다. 삼성전자 갤럭시탭 S8, 젠틀몬스터 선글라스, SSG 푸드마켓 한우 등이다. 오프라인에서 한정판 상품을 구매하려 매장 오픈과 동시에 달려가는 ‘오픈런’을 온라인에서 구현했다.

SSG닷컴이 1월 사전오픈한 '메타버쓱 오픈런' 서비스. [사진 SSG닷컴]

SSG닷컴이 1월 사전오픈한 '메타버쓱 오픈런' 서비스. [사진 SSG닷컴]

이번 가상 오픈런 아이디어는 이 회사의 아이디어 경연대회 ‘SSG 아이디어톤’에서 나왔다. 아이디어톤은 아이디어 회의와 마라톤을 합성한 용어다. 아이디어톤 경연에 참여한 총 36개팀 150여 명의 사원 중 90% 이상이 20~30대 MZ세대였다. ‘메타버쓱 오픈런’ 아이디어는 26세 개발자와 29세 마케팅팀 직원으로 이뤄진 팀에서 나왔다. SSG닷컴 관계자는 “원래는 ZEP 사이트에 로그인까지 해야 했지만 이 장벽을 20대 개발자가 해결했다”며 “‘메타버쓱 오픈런’이라는 이름도 제안한 그대로 진행했다”고 전했다.

길거리 티셔츠가 홈쇼핑에, 이런 파격

지난달 14일 CJ온스타일에서 판매된 ‘김씨네 과일가게 티셔츠’도 MZ 직원의 제안으로 탄생했다. 김씨네 과일가게는 실제 트럭을 몰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좌판에서 과일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판매하는 김도영 디자이너의 브랜드다. 상설 매장이나 온라인 숍 없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판매 장소를 게릴라성으로 공지한 뒤 판매에 나서지만, Z세대들의 오픈런 행렬이 이어지는 인기 브랜드다.

지난달 14일 CJ온스타일에서 판매된 김씨네 과일가게의 포스터. [사진 CJ온스타일]

지난달 14일 CJ온스타일에서 판매된 김씨네 과일가게의 포스터. [사진 CJ온스타일]

CJ온스타일과 ‘김씨네 과일가게’의 만남은 입사 3년차인 김현지(28) MD에서 시작됐다. 우연히 SNS에서 판매 공지를 보고 줄을 서서 티셔츠를 산 뒤 새로웠던 ‘경험’을 홈쇼핑 채널에 풀어냈다. 히트 예감은 적중했다. 준비 물량 4000장이 약 15분 만에 매진되며 주문 금액만 1억원에 달했다.

무엇보다 50대 이상이 절반을 차지하는 기존 홈쇼핑 고객이 아닌 10~20대 구매자 비중이 72%, 30대가 23%를 차지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주문 고객의 37%가 휴면 계정이거나 비회원이었다는 사실도 이 프로젝트가 신규 MZ 고객 유치에 도움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김씨네 과일가게를 직접 경험한 뒤, 전격 '소싱'까지 진행한 김현지 MD. [사진 CJ온스타일]

김씨네 과일가게를 직접 경험한 뒤, 전격 '소싱'까지 진행한 김현지 MD. [사진 CJ온스타일]

줄 서는 동묘 와인바에 ‘홈마카세’ 까지

롯데마트는 하이엔드 한우 브랜드 ‘마블나인’의 출시를 기념해 지난 한 달간 서울 청담동에 있는 고급 한우 오마카세 레스토랑 ‘우월’에서 팝업 레스토랑을 선보였다.

마블나인은 투플러스(1++) 등급에 마블링 최상급에 해당하는 한우만을 다루는 롯데마트의 한우 브랜드로 오는 4일 정식 출시된다. 대형마트에서 선보이는 최고급 한우를 고급 레스토랑에서 먼저 맛 보인다는 야심을 담은 기획이다. 총 14코스로 진행되는 미식 경험을 집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고기를 부위별 패키지 형태로 만든 ‘홈마카세’ 키트도 하루 10개 한정으로 팝업 레스토랑에서 판매했다.

마트에서 출시하는 최고급 한우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해 최고급 오마카세 레스토랑과 함께 팝업 레스토랑을 냈다. [사진 롯데마트]

마트에서 출시하는 최고급 한우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해 최고급 오마카세 레스토랑과 함께 팝업 레스토랑을 냈다. [사진 롯데마트]

오마카세 팝업 기획은 롯데마트 마케팅팀의 입사 5년차(91년생), 입사 6개월차(96년생) 직원 두 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시작한 ‘관심급구 프로젝트’의 두 번째 활동이다. 지난 4월에는 롯데의 세 번째 시그니처 와인 ‘LAN멘시온’ 출시를 기념해 서울 동묘에 와인바 팝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Z세대 사이에서 ‘빈티지 패션 성지’로 꼽히는 서울 동묘 거리의, 아는 사람만 아는 와인바 ‘동묘830’에서 마트 판매가 그대로 와인을 팔아 연일 만석 기록을 세웠다.

인스타그램 ‘관심급구’ 계정을 직접 운영하기도 하는 이의섭 담당은 “서울 시내 오마카세 음식점을 다니면서 제안서를 전달하고 부위별 양념까지 골랐다”며 “주도적으로 일하다 보니 몰입도가 굉장히 높고, (웃으면서) 너무 일을 벌려서 주변에서 말릴 정도”라고 전했다.

나가서 창업하지 말고 회사에서 풀어라

비교적 보수적인 유통업계서 젊은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MZ 고객을 잡기 위해서다. 요컨대 ‘MZ는 MZ가 제일 잘 안다’는 얘기다. 주로 중장년 소비층이 많은 백화점·대형마트 등이 먼저 MZ 직원 중용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젊은 고객을 끌어들인다는 중장기 전략이 깔려있기도 하다.

어느새 기업의 주축이 된 MZ 직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시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기존 보수적 조직문화에서는 실무단에서 좋은 기획을 내도 위로 올라가면서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젊은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도 필요한 방식”이라며 “나가서 창업하지 말고 회사에서 풀라는 취지”라고 해석했다.

침대와 상관없는 마케팅으로 주목받고 있는 시몬스 침대. 서울 청담동에 식료품점을 내기도 했다. [사진 시몬스 침대]

침대와 상관없는 마케팅으로 주목받고 있는 시몬스 침대. 서울 청담동에 식료품점을 내기도 했다. [사진 시몬스 침대]

최근에는 MZ 사원들의 아이디어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서 이들의 의견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침대와 관련 없는 철물점·식료품점 등을 내며 MZ세대 사이 반향을 일으켰던 시몬스침대는 ‘디자인 스튜디오’ 소속 10명 안팎 직원을 모두 MZ세대로 운영하고 있다.

김성준 시몬스침대 부사장은 “기업들의 마케팅 메시지가 유튜브·SNS 등 플랫폼에서 ‘소셜 트렌드’를 타고 이동하는 시대이다 보니, 이런 플랫폼과 동시대에서 함께 살아온 MZ세대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며 “다만 이들의 아이디어를 ‘선택’하기보다 아예 권한을 넘겨 맡기고, 임원은 회사를 설득하거나 예산을 집행하는 식으로 위계가 아닌 기능을 분리하는 조직문화가 뒷받침될 때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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