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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의원 욕할 플랫폼 만든다"…당내 "홍위병 동원" 폭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인 이재명 후보가 31일 오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시민 토크쇼에 참석해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인 이재명 후보가 31일 오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시민 토크쇼에 참석해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가 기치로 내건 ‘혁신하는 민주당’ 구상이 당 안팎에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후보가 자신의 핵심 혁신안인 ‘당내 민주주의·소통 강화’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을 욕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구축’을 예시로 든 게 문제다. 그간 대선·지선 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강성 팬덤 정치’가 거론돼 온 민주당 내부에선 “이 후보가 홍위병을 동원해 문화대혁명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것이냐”는 격한 반발마저 일었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달 30일 경북 안동에서 지지자를 만난 이 후보가 던진 발언이다. 이 후보는 “당내에 민주주의가 관철돼야, 정치가 민주화되고, 정치가 민주화되어야 나라가 민주화되고, 비로소 정치권력이 국민을 위해 작동하게 된다”며 “그 첫 출발은 당원 중심 정당”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는 “(현재는) 당원들이 당에 의사를 표현할 통로가 없다. 그러니깐 국회의원들의 개인 번호를 알아내서 문자를 보내는 것”이라며 “(내가 당 대표가 되면) 당에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어서 욕하고 싶은 국회의원, 단체장, 당 지도부가 있으면, (그곳에서) 비난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오늘의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은 의원, 이번 주 가장 많은 항의 문자 받은 의원 등 (일간·주간·월간 집계를) 해보려고 한다”라고도 했다.

이런 발언이 알려지자 당내에선 비명계(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거센 비판이 일었다. 익명을 요구한 3선 의원은 1일 중앙일보 통화에서 “이 후보는 홍위병을 동원한 문화대혁명을 2022년에 꿈꾸는가”라며 “강성 권리당원을 앞세운 정치는 필멸”이라고 강조했다. 조응천 의원도 전날 밤 페이스북에 “강성당원들 생각과 다른 발언을 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군에 속하는 저로서는 영업사원 실적 막대 그래프를 쳐다보는 것 같아 쫄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적었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월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당 대표 경쟁자인 강훈식·박용진 후보도 비판에 가세했다. 박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팬덤 정치로) 의원들을 겁박하고, 악성 팬덤으로 의원들을 향해 내부 총질로 낙인찍는 당 대표가 나오면, 그 순간 민주당의 근간이었던 정치적 자유주의, 다양성과 토론의 종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 후보는 “이 후보께서는 국회의원과 당원, 지지자 간의 차이를 좁히는 방법으로 민주주의 강화를 주장했지만, 비난과 항의 숫자를 줄 세우는 것은 민주주의 강화가 아닌 퇴행일 수밖에 없다”며 “자칫하면 이는 온라인 인민재판과 같이 흐를 우려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비판이 잇따르자, 이 후보 측은 이날 공지문을 통해 “이 후보는 ‘당원과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의사결정 직접 참여를 위한 온라인 소통 플랫폼’을 제안했다. 발언에 일부만을 가지고 취지를 왜곡한 것”이라고 또다시 비판자에게 화살을 돌렸다.

“직접 민주주의 확대는 공천 학살 전초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당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당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하지만 당내에선 이번 논란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 후보가 지난달 17일 출마 선언 때부터 “전자민주주의로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하고, 당 대표를 포함한 당과 당원 간의 온·오프라인 소통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히는 등 ‘당심 확대’를 줄곧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당내에선 이 후보가 추진하려는 ‘당심 확대’가 당내 소수파에 대한 ‘공천 학살’로 귀결된 것이란 우려도 크다. 계파색이 옅은 한 중진 의원은 “문재인 대표 시절에도, 당내 민주화라는 명분으로 온라인 당원들을 대거 입당시켰고, 그 결과 20대 총선 경선에서 승자는 어김없이 강성 권리당원들의 지지가 쏠리는 친문재인계 예비후보들이었다”며 “이재명식 직접 민주주의 확대는 그보다 더 극단적인 형태”라고 주장했다.

당내에선 이런 흐름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등을 밀어붙여 온 강성 당원들의 입김 강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직자는 “당원 게시판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당원들을 2000~3000명 남짓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며 “아무리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해도 결국 발언하는 당원은 한정돼있는데, 이 사람들만 과잉대표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친문재인계 재선 의원은 “당원 의견만으로 정치할 것이라면, 국회의원이란 대의기관은 왜 필요한 것이냐”며 “합리적 토론과 견제가 실종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 측에선 이런 구상이 성남시·경기도에서 펼쳤던 ‘민심(民心) 존중’ 행정의 연장선일 뿐이란 입장이다. 실제 이 후보는 경기지사 재임 시절 도지사가 주재하는 실·국장 회의 모습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하고 도민의 칭찬이나 비판을 이끌어 공무원 조직을 바꿨다고 한다. 이 후보 측은 이에 대해 “경기도 공무원들이 국민을 두려워하게 만들어 성과를 냈던 것처럼, 민주당도 당원과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당으로 바꿔 성과를 내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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