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홍규의 한반도평화워치

올 광복절에 일본 포용하는 역사 비전 제시하자

중앙일보

입력 2022.08.02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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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022년에 기대하는 8·15 경축사

박홍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홍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광복절이 다가온다. 나는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그날을 맞이하고 있다. 늪에 빠진 한·일 관계가 탈출의 길을 찾을 것이냐의 여부가 이날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매년 그랬듯 어둠에서 벗어나 빛을 보게 된 그 날의 기쁨을 경축하기 위해 곳곳에 태극기가 걸리고, 대통령의 경축사가 전해지고, 어둠의 날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행사가 이어질 것이다. 미디어는 반일(反日)과 극일(克日)의 국민적 정서를 담아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쏟아낼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예년과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늪에 빠져들게 한 두 주역이 정치의 장에서 사라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야인이 되었고, 아베 전 총리는 고인이 되었다. 뒤를 이은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관계 개선의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두 리더에게 거는 기대가 커졌다.

대통령의 뜻을 반영해 이윽고 한국이 움직였다. 지난달 4일 징용자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민관협의회가 출범했고, 18~20일 박진 외교부 장관이 방일하여 대통령의 뜻과 한국 측의 동향을 설명하고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 조치를 요청했다. 그러나 고인의 유훈이 생생한 현시점에서 기시다 총리의 운신 폭은 그다지 넓지 않다. 그저 민관협의회의 추이를 포함한 한국의 동향을 지켜볼 뿐이다.

친일·반일 등 일본 트라우마서 벗어나는 ‘제2의 해방’ 삼아야
윤 대통령은 징용자 상처 치유 등 대법원 판결 정신 존중하고
입법부는 대위변제 방식으로 우리 피해자들의 아픔 씻어내야
사법부는 일본기업 자산 현금화 유예로 국민 부담 덜어냈으면…

오랜 상호불신을 허무는 방법

박홍규의 한반도평화워치

박홍규의 한반도평화워치

민관협의회는 지금까지 두 번 열렸다. 주요 논점은 거의 다 나왔다. 제3자가 피고인 일본 기업을 대신하여 원고인 피해자에게 판결 금액을 지불하는 대위변제가 유력한 해법인데, 피해자 측은 일본 정부·기업의 사죄 표명 및 일본 기업의 기금 참여를 대위변제에 동의하기 위한 최소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일본 측으로부터 이 조건에 호응한다는 ‘보증’을 얻지 못하면 민관협의회는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피해자의 동의를 얻는 데 필요한 호응을 보증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일본의 입장에 기인한다. 당시 사안으로 취급되지 않았던 위안부 문제와는 달리, 징용자 문제는 한국에 지불한 5억 달러로 종결되었고, 게다가 이후 한국 정부가 두 번에 걸쳐 국내 보상을 했으니 더 필요하면 한국 스스로 추가 보상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2015년 위안부 합의의 파행을 겪은 일본이 징용자 문제 해결을 위한 어떠한 합의도 위안부 합의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설령 사죄 표명과 기금 참여를 한다고 해도 한국 측이 또다시 판을 깨지 않는다는 보증을 얻을 수 없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상호 보증의 협약이라도 하면 어떨까. 이 또한 한갓 어음 쪼가리에 불과할 것이다. 상호 불신의 뿌리가 존재하는 한 어떤 합의도 꽃을 피우지 못하는 법이다.

불신 관계에 있는 쌍방이 신뢰를 구축하는 길은 멀고 험하다. 어느 날 갑자기 서로 신뢰하자고 합의하거나 선언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게다가 그런 합의와 선언이 무색해진 쓰라린 경험을 가진 쌍방이 다시 신뢰를 구축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그래도 길은 있다. 신뢰의 재구축이 필요하다는 정치적 판단이 서면, 포용적이며 선제적인 신뢰 행위를 일관성 있게 지속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한국에 도움 된 일본 인정해야

양국의 리더가 신뢰 재구축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상대를 바라보고 호응을 요구하지 말고 각자 스스로 할 수 있는 신뢰 행위를 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국 내 비판과 반발은 자신의 리더십으로 헤쳐나가야 한다. 국민 정서에 기반하는 부정적 여론을 두려워한다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고, 설령 첫발을 내디뎠어도 여론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면 무위로 끝날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선제적 신뢰 행위에 대한 상대의 사후 호응 조치를 예단할 필요도 없다. 호응은 상대의 몫일 뿐이다. 한국이 선제적으로 대위변제를 실행했음에도 일본이 이에 호응하는 조처를 하지 않을 경우 일본이 치러야 할 비용은 적지 않다. 그 판단은 일본에 맡기면 된다. 단, 선제적 조치에 따르는 국내 부담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리더의 철학과 원칙이 필요하다.

1949년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의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된 날을 국경일로 지정하면서 광복절(光復節)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빛을 되찾은 날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1945년의 그 날은 빛을 회복해가는 길고도 지난한 여정을 시작한 날이었을 뿐이다. 따라서 매년 돌아오는 광복절에는 빛을 향한 여정에 동력을 조달하기 위해 다양한 의식과 행사가 치러졌다. 어둠의 시절에 대한 기억과 추모를 통해 반일과 극일의 민족 정서를 불러일으켰다. 그 성과는 대단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자타가 인정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로 도약했다. 미·중 패권경쟁의 한 축을 감당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우리의 땀과 피와 눈물로 이뤄낸 위업이다. 우리 스스로 긍지를 갖고 찬사를 보내도 좋다. 아울러 우리를 도와준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여러 국가에 감사의 뜻을 표하자. 일본의 식민 지배와는 별개로, 우리의 도약에 일본의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일본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자. 선뜻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정신적 트라우마 때문이다.

미래 세대에 짐 남기지 말아야

해방 이후 글로벌 중추 국가의 위상을 확보해 가는 과정에서 식민 지배의 유산을 청산하는 노력도 병행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 지배가 남긴 정신적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1945년 이전의 일본과 이후의 일본을 동일시하며, 친일과 애국의 이분법에 사로잡혀, 우리 눈앞의 일본을 불신하고 적대시하는 정신 상황에 머물러 있다. 여기서 벗어났을 때 온전한 해방이 성취될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지금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더는 짐을 남겨서는 안 된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이 제2의 해방을 선포해주기 바란다. 일본을 포용하는 입장에서 역사 문제에 접근하겠다는 철학과 원칙을 선포해주기 바란다. 포용의 철학에 입각해서 대법원 판결의 ‘정신’을 구현하겠다고 선포해주기 바란다.

대법원 판결의 정신을 구현하는 길은 세 가지다. 첫째는 피해자의 상처를 우리 스스로 치유하는 것, 둘째는 국제법을 준수하는 절제의 미덕을 발휘하는 것, 셋째는 국제규범을 선도하는 진취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고, 그 효과로 일본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으며, 그 결과 우리는 품격 있는 국가로 성숙할 것이다.

입법·사법·행정의 3권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지금 이 국면에서 행정부는 피해 국민과 소통하며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입법부는 대위변제 방식을 통해 피해 국민의 바람을 성취하고, 사법부는 현금화 유예를 통해 피해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피해자 중심주의이고, 국민 통합과 역사 화해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6일 새로 열리는 광화문광장

조선 건국 이후 태조 4년 경복궁이 창건되었다. 창건을 주도한 정도전이 건물과 문의 이름을 지으면서 남쪽 문을 정문(正門)이라 했다. 그 후 세종 8년 집현전에서 새로 지어 올린 광화문(光化門)이 오늘에 이른다. 세종과 그의 신하들은 무슨 뜻을 품고 광화라는 이름을 지었을까.

세종 8년 무렵은 중국에서의 원·명 교체와 맞물리며 전개되었던 여말선초의 전쟁과 혼란의 시기가 끝나고, 동아시아 지역에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때였다. 세종과 그의 신하는 앞으로 펼쳐갈 조선의 태평성대를 광화라고 이름하여 궁성의 남문에 드높이 걸었다.

유교의 정치철학이 담긴 『중용』에서 이상적인 정치가 실현되는 모습을 ‘천지화육(天地化育)’이라고 한다. 온 천하의 모든 만물이 각각의 특성에 따라 풍요롭게 생장하는 세상이다. 광화란 찬란한 화육의 세계를 의미한다.

세종대왕이 펼쳐 보인 빛나는 조선은 19세기에 이르러 어둠의 길로 접어들었다. 빛을 되찾기 위한 지난한 과정에서 분단·전쟁·독재가 있었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이제 글로벌 중추 국가의 위상을 확보했다. 광복의 과업은 달성했다. 다시 어둠으로 퇴행할 까닭이 없다. 회복한 그 빛을 찬란히 밝혀 우리의 후세에게 전해주는 것이 광화의 과업이다.

며칠 후 8월 6일이면 광화문 광장이 새롭게 열린다. 올해 광복절에는 광복이라는 아픈 기억을 반추하면서 동시에 광화라는 환희의 미래를 지향하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박홍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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