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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다와라에서 생긴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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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청수 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

박청수 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

일본 MRA(도덕 재무장) 명예총재 소마 유키카 여사의 초청을 받고 2006년 6월 7일부터 9일까지 열리는 제25차 오다와라 MRA 국제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에 갔다. 오다와라 아시아센터를 찾았을 때 건강한 모습의 한 여인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나의 가방을 번쩍 들고 나의 처소로 안내해주었다.

대회가 시작되던 날 밤 첫 연사로 등단한 사람은 일본 MRA 명예총재 소마 유키카 여사였다. 그분은 구십세의 노인이지만 그분의 정신세계의 꼿꼿함은 그를 우러러보게 하고, 그분의 말은 큰 감화력이 있었다. 그분은, 본 대회가 ‘21세기는 화해와 대화의 세기’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는데 특히 한·일 양국의 화해의 문제에 더 깊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MRA대회서 한·일 협력 주제발표
“양국 협력해 어려운 나라 돕자”
게이코 여사, 울먹이며 용서 청해

본 대회가 열리는 날이 밝았다. 이번 대회에 나도 주제발표를 하고 토론회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다. 내가 발표할 주제는 ‘한·일 양국의 협력으로 세계평화에 기여하자’였다. 나는 주제발표에서 “만약 어떤 사람이 매우 만족스러운 행복을 느끼고 있다면 그는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을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자기 가족이나 가까운 이웃과 인간관계가 나쁜 사람은 불행한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 즉 가깝지 않은 인연을 통해서는 행복도 불행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까운 이웃나라와 관계가 좋아야만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웃나라와 관계가 나쁘면 갈등과 대립이 고조되고 전쟁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아주 가까운 이웃나라입니다. 그러나 상대국가보다 강한 나라는 항상 약한 나라를 지배하고 싶어합니다. 1910년 한·일 양국은 아주 나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일본은 한국보다 여러 면에서 아주 강했던 것 같고 그 시대를 살던 일본 사람들은 한국을 점령했습니다. 1945년 한국이 해방될 때까지 36년동안 식민지로 통치하면서 한국사람들을 억압하고 괴롭혔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 그때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가장 강렬한 기억은, 우리 말과 글을 쓸 수 없었고 각자의 성과 이름마저도 일본말로 바꿔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농사지은 쌀은 모두 빼앗기고 한국사람은 기름을 짜낸 콩깻묵으로 목숨을 이어가야만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은 쇠붙이 그릇까지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깊숙이 숨기느라 고심했습니다. 젊은 남자는 전쟁터로 끌려가 목숨을 잃었고, 지금 한국에서 정신대(挺身隊)라 불리는 그 시대의 젊은 여성들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습니다. 일본 식민지시대 억압받고 고통받았던 한국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역사로 기록하고 뒷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한국사람들도 마음속 깊이 일본사람을 싫어하고 증오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1987년 스위스 코 마운틴 하우스에서 열린 MRA 세계대회에서 스위스의 실비아 주바 여사의 도움으로 그 마음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일본 사람에 대한 미운 감정이 없을 뿐 아니라 소마 여사를 존경하고 여러 명의 일본 친구들과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만일 한·일 두 나라가 서로 협력해 더 어려운 나라를 돕는 평화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면 한·일 두 나라는 세계평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서툰 영어로 매우 긴장된 상태에서 발표를 마쳤다. 잠시 후 토론 시간에 소마 유키카 여사가 매우 격앙된 어조로 “오늘 우리가 한국의 박청수 교무와 함께 있다는 것은 크게 다행한 일입니다”라고 말할 때, 그분의 음성은 떨렸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 순간 소마 여사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게이코 여사가 갑자기 내게로 다가와 무릎을 꿇고 상반신을 세운 자세로 나를 바라다보며 “박 교무님 우리를 용서해주십시오. 나는 기독교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들의 잘못된 과거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청하니 용서해주십시오”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그러자 의자에 앉아 있던 여러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와 다 함께 무릎을 꿇고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떨구었다.

너무 당황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게이코 여사의 눈빛은 매우 강렬했고, 내가 발표했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용서를 청했다. 나는 그녀를 끌어안아 세우면서 다독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했다.

나는 잠시 창밖으로 오다와라 하늘을 바라다보았다. 3·1 독립만세의 환청이 들리는 듯했고, 핍박과 고통 속에서 숨진 그때의 혼령들이 오다와라 하늘가를 맴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박청수 청수나눔실천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