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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취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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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P디렉터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1970년대엔 유아교육이 보편적이지 않았다. 교육열 높은 부모는 아이 나이를 속여서라도 학교에 일찍 보내려 했다. 1976년 10월, 서울시 교육위원회는 국민학교 취학적령 미달 아동 492명의 입학허가를 취소했다. 미리 호적을 고친 800여 명은 구제됐다. 조기취학 시도가 많아 1981년 정부는 아예 입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가뜩이나 ‘콩나물 교실’이던 과밀학급 현상이 심해진다는 등의 이유로 보류됐다.

 취학연령 하향 시도는 이후에도 꾸준히 있었다. 1986년 교육개혁심의회는 어린이들의 신체 및 지능발달이 크게 향상됐다며 취학연령 하향을 건의했다. 문교부는 취학연령을 단계적으로 낮추는 방안을 마련했으나, 조기취학 대상자 선별 과정에서 입시교육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백지화하기에 이른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꺼냈다가 집어넣은 정책인데 윤석열 대통령이 “신속히 강구하라”고 박순애 교육부장관에게 지시했다. 교육과정은 발달과정에 맞춘 것이니 선행학습시키지 말라던 교육부와 교육청의 숱한 지침이 무색해진다.

 지금도 조기취학은 열려 있다. 1998년 초·중등교육법이 시행되면서 학교장 재량에 맡겼고, 2007년에는 그 제한 규정마저 사라졌다. 그러나 2007년 조기입학 아동 수는 2000명대인 반면, 만6세 취학을 미룬 입학 유예 아동은 4만여 명으로 18배에 달했다. 빠른 1~2월생 조기취학 제도가 사라진 2009년 일시적으로 조기입학 아동 수가 9000명대로 치솟았으나, 이후 꾸준히 줄어 2021년엔 537명에 그쳤다. 입학유예 아동 수 역시 757명으로 고만고만하다. 이젠 적기 입학이 대세다.

 취학연령을 낮추면 졸업이 빨라져 산업 현장에 인력을 일찍 공급하는 부수적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워킹맘의 경력단절도 1년 앞당길 가능성이 크다. 종일 돌봄을 해주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많지만, 초등 1학년은 점심만 먹으면 집에 오기 때문이다. 돌봄 교실은 인원이 제한적이고, 학교에서 운영을 책임지지 않아 교육의 질도 기대하기 어렵다. 저학년일수록 소득 수준이나 맞벌이 여부 가리지 않고 학교가 오후 늦게까지 아이를 돌보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교육 불평등이나 저출산 해소에 더 크게 기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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