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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없는 인생이 있나…내 소설은 인생을 닮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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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부커상 이후 첫 작품 『믿음에 대하여』를 쓴 박상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부커상 이후 첫 작품 『믿음에 대하여』를 쓴 박상영 작가가 지난달 29일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헬스장에서 스테퍼(계단 오르기 운동기구) 하던 중에 축하 메일이 오더라고요. ‘Congratulaion’으로 시작되는…”

지난 3월 2022년 부커상 1차 후보(롱리스트)에 『대도시의 사랑법』(2019, 창비)으로 이름을 올렸던 작가 박상영(34)은 후보 선정 소식을 운동하던 중 들었다고 했다. 최종 후보(숏리스트)에는 들지 못했지만, 당시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와 함께 한국 작가 두 명이 나란히 부커상 후보에 오른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박 작가는 “그간 내 작품에 대해 ‘일기장 아니야?’라며 깎아내리는 평가가 많았던 게 억울했었는데, 부커상 위원회는 ‘작품의 고백적인 특성’을 소설적인 특성으로 받아들여준 것 같아 기뻤다”며 “나를 폄하하던 사람들에게 한 방 먹인 기분이었다”고 돌이켰다.

지난달 20일 『믿음에 대하여』(문학동네)를 펴낸 그를 최근 서울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믿음에 대하여』는 지난해부터 문예지에 발표한 중단편 4편을 엮은 소설집이다. ‘요즘 애들’(김남준), ‘보름 이후의 사랑’(고찬호) ‘우리가 되는 순간’(유한영과 황은채) ‘믿음에 대하여’(임철우) 등 주인공의 이름을 부제로 단 4편의 작품이 서로 얽히며 인물 간의 관계와 구도를 만들어낸다.

『믿음에 대하여』

『믿음에 대하여』

박 작가는 “2019년 직장 내 어려움, 갑을 관계를 다룬 ‘요즘 애들’을 구상한 뒤 잊고 있다가, 이듬해 코로나19로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삶이 달라졌을 때 ‘이 친구들은 잘 살고 있을까?’ 궁금해져서 다음 이야기를 구상하며 이어진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대도시의 사랑법』 『1차원이 되고 싶어』에 이은 소위 ‘사랑 3부작’의 마지막 책으로, ‘보름 이후의 사랑’을 제목으로 하려다가 “‘사랑’ 키워드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더 성숙하고 넓은 차원의 관념어를 내세우고 싶어서” ‘믿음에 대하여’가 제목이 됐다.

주인공은 타인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뉴스 앵커이자 자신의 성 정체성이 드러나는 걸 꺼리는 성 소수자다. 그런 그가 바이러스 감염을 피하기 위해 사람을 멀리하는 설정에서 생겨나는 비밀스러움이 작품 전체에 흐르고, 후반부에는 큰 비밀이 따로 생겨난다. 박 작가는 “비밀 없는 인생이 있나? 내 소설은 인생을 닮아있다”며 “여러 인물 중 ‘믿음이란 게 다 깨져 버린 시대에, 무엇을 잡고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임철우가 나와 감정적으로 가장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자전적이고 고백적인 형식의 소설을 많이 썼던 그는 이번 책에서 팬데믹 시기 자영업자, 방송업계의 영상노동종사자, 중소 기업의 꼰대 상사, 여성 직장인 등을 촘촘하게 그려낸다. 10명 넘는 사람들을 꼼꼼하게 인터뷰하고, 잡지사·광고회사·컨설팅회사 등 본인의 과거 직장생활 경험도 녹였다.

그는 “‘박상영이 사회에 대해서도 얘기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많고, 친구들도 ‘네 책 중에 내가 이입할 거리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면서 “예전에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는 다루기 조심스러웠다면, 지금은 충분히 조사하면 여러 사람들의 내면을 포괄적으로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문장의 결도 바꿨다. “이전 작품들에선 ‘과잉’을 의도했지만, 이번 책에선 평소의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속도와 온도를 담고 싶어서 보통의 온도에 톤을 맞췄다”는 것이다.

중·고교 6년 내내 생활기록부 장래희망 란에 ‘작가’를 적었고, 반에선 늘 ‘네 번째 쯤 웃긴 애’였던 그는 첫 직장이었던 잡지사에서 ‘언론은 남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인데,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깨달은 뒤 습작을 시작했다. 컨설턴트로 일하던 중 2016년 데뷔했고, 이후에도 직장 생활을 계속하며 글을 썼다. 다소 ‘낯선’ 성 소수자 이야기를 주로 썼지만 꾸준히 상복이 이어지면서 전업 작가가 됐다. 박 작가는 “처음엔 재밌는 얘기나 실컷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상이 늘어나면서 ‘작가 박상영’이 된 것 같다”며 “오락반장이고 싶었는데 얼결에 반장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부커상 후보 지명 뒤 “내 소설이 나보다 더 많은 곳을 가게 됐지만, 내 삶은 크게 달라진 건 없다”는 그는 “안톤 허 번역가가 ‘앵글로색슨 적인 전개라서 번역하기 좋다’고 했는데 그런 이유로 영미권 반응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앞뒤 문장이 딱딱 들어맞는, 논리적이고 속도감 있는 글쓰기가 영어권 독자의 취향에 맞는 것 같다는 분석이다.

박 작가는 “소설을 기반으로 다른 콘텐트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머릿 속에 여러 개 돌아가고 있다”며 “환상적 요소가 가미된 소설도 생각 중이지만 SF는 자신 없다”고 했다. 방송 활동도 활발히 하는 그는 “사회와 늘 소통하고, 한국 문학이 재밌다는 걸 알리기 위해 어떤 콘텐트든 다양하게 시도하는 것”이라며 “친근하고 재밌는, ‘옆집에 사는 작가’ 같은 이미지로 남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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