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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윤계 원내대표? 유승민 꼴 난다"…친윤계 '권성동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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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 국민의힘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권성동 국민의힘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1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하루는 길었다. 전날 “조속한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한 지 하루 만에 초선·재선·3선 이상 중진 의원들과 연쇄 간담회를 갖고 의원총회를 열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대한 당 소속 의원들의 추인 형식을 완료했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당이 비상상황에 직면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말을 종일 반복했다.

하지만 이날 당 분위기는 ‘권 원내대표가 비대위 체제 전환을 이끌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었다’는 ‘권성동 책임론’ 쪽에 무게가 쏠렸다. 당 대표를 지낸 홍준표 대구시장은 “직무대행을 사퇴하면 원내대표도 사퇴하는 것이 법리상 맞는 것”이라며 “왜 꼼수에 샛길로만 찾아가려고 하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친이준석계도 권 원내대표의 자리보전을 앞장서 비판했다. 정미경 최고위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상식도 없고 공정도 다 필요 없는 것처럼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용태 청년최고위원도 라디오에 나와 “원내대표이기 때문에 당대표 직무대행을 하는 건데, 원내대표는 유지하고 당대표 직무대행을 내려놓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성일종 정책위의장이 1일 국회에서 열린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당·정 정책협의회에서 회의 시작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성일종 정책위의장이 1일 국회에서 열린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당·정 정책협의회에서 회의 시작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정치권에는 비대위가 출범해도 원내 사령탑을 그대로 유지한 사례가 적잖다. 정책 입법이 급한 여당의 경우, 당무와 별개로 국회 상임위 등 입법 활동의 연속성을 보장해야 할 필요성이 커서다. 그런데도 당내 친윤계를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 사이에 권 원내대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는 건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계속된 당 내홍에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 그룹’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권 원내대표가 이준석 대표 징계 이후 전면에 나서 당 수습을 주도했지만, 지금의 비상상황을 초래한 주요 장본인 중 하나가 바로 그 자신 아닌가”라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달 26일 윤석열 대통령의 ‘내부 총질’ 메시지를 노출해 최고위원 연쇄 사퇴 등 지도부 붕괴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에 앞서 ‘윤핵관 브라더’인 장제원 의원과의 갈등을 지속적으로 공개해 “정권 2인자 싸움”이라는 비판도 들었다.

이런 가운데 친윤계에선 ‘새 원내대표를 다시 뽑을 경우, 비윤계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원내대표 교체를 주저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지난 4월 원내대표 선거에서 권 원내대표와 2파전을 치렀던 조해진 의원을 비롯, 국민의힘 3선 이상 중진 중 친윤 대표성을 가진 후보가 사실상 더 없다는 것이다. 전날부터 친윤 성향 의원들에게서는 “차기 원내대표에 마땅한 대안을 찾기 힘든 것도 사실”이라는 말이 나왔다.

장제원 (가운데) 국민의힘 의원이 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기현 의원. 김성룡 기자

장제원 (가운데) 국민의힘 의원이 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기현 의원. 김성룡 기자

이날 의총에 참석한 중진 의원은 “지금이 정권 2~3년 차면 모를까, 출범 90일도 안 된 정부에서 대통령과 결이 다른 원내대표가 나오면 ‘제2의 유승민’ 꼴이 난다”며 “그래서 누구도 새로 원내대표를 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승민 전 의원이 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 당시 독자적 목소리를 내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배신의 정치”라는 말을 듣고 의총 권고에 따라 사직한 전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당 안팎의 여론을 감안하면 앞으로 친윤계 내부에서도 권 원내대표를 향한 책임론이 제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의총장에 있던 또 다른 의원은 “오늘 ‘권성동 사퇴’ 요구가 나오지 않은 이유는 이미 얼굴이 사색이 된 원내대표에게 굳이 물러나라는 말을 던질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분위기를 전했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굳은 표정으로 의총장을 빠져나가며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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