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납품 대신 폴란드에 먼저? '10조 대박' K-방산 뒷얘기

중앙일보

입력 2022.08.01 18:09

업데이트 2022.08.01 19:47

국산 경공격기 FA-50. [사진 KAI]

국산 경공격기 FA-50. [사진 KAI]

폴란드 정부가 이른바 ‘K-방산’ 도입 계획과 인도 일정 등을 상세히 밝히는 ‘적극 구애’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국내 방산 업계는 극도로 몸을 낮추고 있다. 방위산업의 특성상 외교·안보 등의 이유로 계약이 틀어질 우려가 있고, 경쟁 업체의 견제 때문으로 풀이된다.

1일 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항공우주산업(KAI)·현대로템·한화디펜스 등 세 업체는 연말까지 폴란드 정부와 무기 수출 계약을 할 전망이다. 다만 이들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본계약인 ‘실행계약’ 체결을 위해 폴란드 정부와 물량별 인도 일정, 사업 금액, 유지·보수 조건, 기술이전 범위 등을 협의 중”이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이었다.

폴란드 국방부는 지난달 27일 FA-50 경공격기 개량형 48대, K2 전차 980대, K-9 자주포 672문 등을 도입하기 위한 ‘기본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각각 KAI·현대로템·한화디펜스가 만드는 제품이다. KAI는 이번 계약 규모가 30억 달러(약 3조9000억원)라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다른 두 업체는 구체적 금액을 밝히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최대 2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폴란드가 지난달 27일 FA-50 경공격기, K2전차, K9자주포 등 구매 기본계약을 한국 방위산업체와 체결한 뒤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현호 한국항공우주산업 대표, 이용배 현대로템 대표,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부총리 겸 국방부장관, 손재일 한화디펜스 대표, 세바스찬 흐바워크 국영방산기업 PGZ 회장. [국방부 공동취재단]

폴란드가 지난달 27일 FA-50 경공격기, K2전차, K9자주포 등 구매 기본계약을 한국 방위산업체와 체결한 뒤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현호 한국항공우주산업 대표, 이용배 현대로템 대표,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부총리 겸 국방부장관, 손재일 한화디펜스 대표, 세바스찬 흐바워크 국영방산기업 PGZ 회장. [국방부 공동취재단]

K2 전차. [사진 현대로템]

K2 전차. [사진 현대로템]

“러-우크라전 탓, 일정 앞당긴 듯”

이번 수출 계약은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국산 무기 조달계획을 밝히면서 가시화됐다. 익명을 원한 한 업체 관계자는 “폴란드 측이 성급하게 발표한 측면이 있다”며 “본계약 전에 상대국 국방부 장관이 ‘언제까지 몇 대 받기로 했다’고 발표한 건 일반적이지 않은 부분”이라고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윤지원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는 “보통 방산 계약은 최종까지 비밀보안을 유지한 상태에서 양국이 동시에 발표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라 자국민의 불안을 잠재움과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러시아·유럽을 향해 안보 강화 메시지를 내는 것이다. 또 차기 권력을 노리는 브와슈차크 장관의 개인 정치 목적도 있어 보인다”고 풀이했다.

상대국 국방 수장의 공언에도 한국 정부와 각 기업은 “수출 계약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며 여전히 말을 아끼고 있다. 현대로템과 KAI는 기존 언론보도를 부인하며 올렸던 ‘풍문 또는 보도에 대한 해명(미확정)’의 재공시를 통해 간접적으로 계약 사실을 알렸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기본계약도 법적 효력이 있다고 하지만, 전체 거래 금액과 서류 증빙 등 공시 요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화디펜스는 모회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자율공시를 통해 기본계약 체결 사실을 밝혔다.

K9 자주포. [사진 한화디펜스]

K9 자주포. [사진 한화디펜스]

[연합뉴스]

[연합뉴스]

폴란드 측 “올해 중 납품”…업체들 고심

기본계약에 따르면 한국에서 생산할 K2는 2025년까지, K-9은 내년까지 순차적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브와슈차크 장관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올해 중으로 포(K-9)와 탱크(K2)의 첫 인도가 이뤄지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는 등 납품을 재촉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각 업체에도 비상에 걸렸다. 군수품은 TV·냉장고·자동차처럼 미리 만들어둘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본계약이 곧바로 체결돼도 생산 일정을 고려했을 때 납기일이 촉박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윤 교수는 “정부가 나서 방산 수출을 장려하는 만큼, 국군에 인도 예정인 물량을 폴란드에 먼저 배정하는 식의 조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용인하면 한국군에 납품하기 위해 만든 제품을 먼저 수출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경쟁국의 견제를 우려하는 견해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이번 수출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만큼 다음 계약 때 미국·독일 등 방산 선진국의 적극적 참여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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