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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 국힘 지지한다"는 이재명...알고보면 '60대 착시현상'

중앙일보

입력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인 이재명 후보가 31일 오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시민 토크쇼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인 이재명 후보가 31일 오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시민 토크쇼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저학력·저소득층은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많다”(29일)는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당 내에서도 비판이 커지자 이 의원은 30일 트위터에 ‘월소득 200만원 미만 10명 중 6명, 윤석열 대통령 뽑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이 기사는 동아시아연구원(EAI)·한국리서치가 대선 직후인 3월10~15일 실시한 패널조사를 다뤘다. 해당 조사에서 월소득 200만원 미만 응답자의 61.3%는 윤석열 후보에게, 35.9%는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답했다. 다른 여론조사업체 조사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반복됐다.

이 의원은 기사를 공유하며 “자신에게 피해 끼치는 정당을 지지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썼다. 이른바 저소득층이 ‘계급 배반 투표’를 한다는 주장이다. 단순히 조사 결과 수치만 보면 맞는 주장처럼 보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후보가 자신의 '저소득층 국민의힘 지지' 발언에 대해 지난 30일 올린 글. 트위터 캡처

이재명 민주당 대표 후보가 자신의 '저소득층 국민의힘 지지' 발언에 대해 지난 30일 올린 글. 트위터 캡처

연령변수 통제하면 ‘계급 배반 투표’ 없어

하지만 이 의원 주장은 학계의 연구 결과와는 거리가 있다. 저소득층의 보수당 지지도가 높은 건, 저소득층에 보수 성향이 강한 60대 이상 고령층이 많기 때문에 나타나는 착시 현상이라는 게 대다수 연구의 결론이다. 연령과 소득 변수가 뒤섞여 그렇게 보일뿐이라는 것이다. 연령변수를 통제하고, 즉 같은 연령대 내에서만 소득별 투표 성향을 분석하면 지지 정당의 차이는 강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연구 사례가 2012년 대선을 대상으로 한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의 2013년 연구다. 저소득층이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더 많이 준 당시 대선은 ‘계급 배반 투표’가 화제였는데, 이를 검증한 것이다. 강 교수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가 대선 이후 실시한 면접조사를 근거로 분석을 했다. 조사 결과 저소득층(월소득 299만원 이하)은 56.3%가 박 후보에게 표를 줬다. 다른 계층에 비해 가장 높았다.

그런데 계층별 연령 분포를 분석해보니 저소득층에 60대 이상이 44.7% 포함돼 있었다. 노인빈곤률이 높기 때문이다. 고령층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중시하는 ‘이익 투표’보다는 안보 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가치 투표’를 하는 경향이 높다. 강 교수는 “저소득층의 ‘계급 배반적’ 특성은 계층적 원인보다 세대적 요인에 의한 영향이 더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60대 이상을 제외하고 다시 분석해보니 저소득층이 박 후보에게 더 많이 투표했다는 특성은 나타나지 않았다. 19세~50대 저소득층 중 박 후보에게 투표한 비율은 45.2%였는데, 이 연령대 전체 평균(44.0%)과 비슷했다.

2012년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면접조사의 계층별 연령대 분포(단위:%). 강원택 교수

2012년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면접조사의 계층별 연령대 분포(단위:%). 강원택 교수

OECD 국가 노인빈곤율.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OECD 국가 노인빈곤율.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자산 적을 수록 민주당에 투표

2017년 대선을 대상으로 한 연구(이지은·강원택, 2020년)에선 EAI·한국리서치 패널조사를 바탕으로 소득과 자산이 투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연령 등의 변수는 통제했다. 그 결과 자산이 적은 집단에서는 소득의 많고 적음을 떠나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가 다른 집단보다 높게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소득과 자산을 함께 고려하는 경우 투표 선택에서 (‘계급 배반’이 아니라) 이념과 계층이 만나는 ‘계급 정합성’이 확인됐다”고 결론내렸다.

게다가 2000~2016년 사이에 한국에서 실시된 5번의 총선에서 저소득층의 보수정당 투표 비율은 점차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세계불평등연구소)도 지난해 발표됐다. 이런 연구 결과만 보면 이 의원 주장과 달리 저소득층의 투표 성향은 점점 민주당에 유리해지고 있는 것이다.

학계의 정밀한 분석이 아니더라도, EAI·한국리서치 패널조사 결과를 이 의원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판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인 이재명 후보가 31일 오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시민 토크쇼에 참석해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있다. 2022.7.31/뉴스1

(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인 이재명 후보가 31일 오전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시민 토크쇼에 참석해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있다. 2022.7.31/뉴스1

조사 결과를 보면 월소득 200만원 이하 계층은 다른 계층보다 복지 확대 등 진보적 경제 이슈에 관심이 많았다. ‘복지 확대 문제가 국정과제 중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중요하다’(0~10점 중 6점 이상)고 답한 비율은 월소득 200만원 이하가 77.7%로 모든 계층 중에 가장 높았다. ‘현행 종합부동산세가 과중하다’는 명제에 반대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것도 이 계층으로, 경제 이슈에서도 진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저소득층, 경제 진보적이지만 이재명 선택 안 해

그런데도 이들이 이 후보를 택하지 않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지지후보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 이슈’를 물은 결과 전체적으론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가장 많이 꼽았다. 그런데 월소득 200만원 이하 계층만 놓고 보면 ‘대장동 특혜 의혹’이나 ‘이재명 후보 도덕성 논란(형수 욕설 등)’을 다른 계층보다 유독 많이 선택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31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저소득층일수록 경제적 공정에 더욱 예민한데 대장동 특혜는 수천억원이 문제가 된 사안이니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자신의 도덕성 논란 등은 언급하지 않은 채 언론 탓만 하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인 박용진 후보가 31일 오후 대구 동구 동대구로 투에버 빌딩에서 열린 대구시당 청년위원회·대학생위원회 소속 당원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인 박용진 후보가 31일 오후 대구 동구 동대구로 투에버 빌딩에서 열린 대구시당 청년위원회·대학생위원회 소속 당원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이 의원의 당권 경쟁 상대인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재명 후보가 보여준 현실인식은 참으로 안타까웠다”고 썼다. 다른 당권 주자인 강훈식 의원도 이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민주당도 혹시 선악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인식이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있다면 반성이 있어야 한다”며 이 의원을 에둘러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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