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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에 총수 생길까…통상마찰 우려에 외국인 총수 지정 재논의

중앙일보

입력

공정거래위원회가 외국인을 대기업집단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하려 했지만, 관계부처 이견으로 재검토에 들어갔다.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외교부 등이 미국과의 통상 마찰 가능성을 제기하면서다. 부처 간 협의를 거친 뒤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기로 했다.

관계부처와 추가 논의

31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공정위는 다음주 초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외국인을 기업집단의 총수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미국 정부가 반대 의사를 보이면서 한국 정부 내에서도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공정위는 산업부‧외교부‧기재부 등 관계부처와 만나 개정안 내용과 향후 일정을 협의하기로 했다.

지난 5월 12일 서울 시내의 주차장에 쿠팡 배송트럭이 주차돼 있다.   뉴스1

지난 5월 12일 서울 시내의 주차장에 쿠팡 배송트럭이 주차돼 있다. 뉴스1

당초 공정위가 발표하려던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엔 외국인도 기업집단의 총수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조항이 포함됐다. 지난해와 올해 미국 국적의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을 총수로 지정할 근거가 없다고 하면서도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방안이 있는지에 대해 연구용역을 맡겼다. 이후 내부 검토를 거쳐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공정위 “한국계 외국인만 해당”

기업집단 총수로 지정되면 주식보유 현황 등 자료 제출과 공시 의무를 진다. 배우자와 친척 등 총수의 특수관계인도 지정자료를 공정위에 제출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 미국 상무부는 미국인에 대해 이 같은 의무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통상마찰 우려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한 만큼 이에 대해 법적인 검토를 상당 부분 마쳤다고 한다. 국내 기업집단 최대주주라고 해서 모든 외국인에 대해 총수로 지정하지 않고, 한국계 외국인에 한정한다는 게 공정위 계획이다. 또 쿠팡의 김 의장을 겨냥한 시행령 개정이 아닌 만큼 특정인을 불리하게 할 의도가 없다는 입장이다.

최혜국대우 위반 여부가 변수 

문제가 된 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최혜국 대우 조항 위반 여부다. FTA를 체결한 국가 간에는 다른 국가보다 불리하지 않게 대우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미국 국적의 김 의장이 총수로 지정될 경우 다른 나라와의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에쓰오일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이 사실상 최대주주로 지배력을 행사하지만, 공정위는 특정인을 총수로 지정하지 않아 왔다.

공정거래위원회 청사.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 청사. 연합뉴스

공정위 관계자는 “아직 입법예고조차 하지 않았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관계부처 협의 내용에 따라 알려진 개정방향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국내에서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면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기업집단 규제를 빠져나갈 우려가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보완방안은 개정안에 넣을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發 규제개선도 지연

다음 달 초로 예정됐던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가 미뤄지면서 윤석열 정부 공정위의 규제개선도 지연된다. 공정위는 자료제출 의무가 부여되는 총수의 친족 범위를 축소하고 중소벤처기업의 대기업 계열사 편입 유예 조건을 완화하는 등의 내용을 개정안에 포함해 발표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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