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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병주의 시선

좋은 티타임, 나쁜 티타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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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병주 논설위원

문병주 논설위원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반발 중심에 섰다. “국가를 통치하는 소위 검언유착을 더 강화하겠다는 소리밖에 안 들린다”고 했다. “검찰 수사 관행의 역사적 후퇴”라는 비판이 일었지만 지난달 25일을 기점으로 검찰의 ‘티타임(Tea Time)'이 부활했다. 2019년 12월 1일 공식 폐지된 지 약 2년 8개월 만이다.

2년 8개월 만에 검찰 티타임 부활  

국회에서 벌어진 박 의원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티타임 재개 설전엔 두 사람의 과거사가 묻어난다. 박 의원은 조국ㆍ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바통을 이어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재임 당시 티타임과 관련한 법무부 훈령에 손을 댔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었다. 기소 전 형사사건에 대한 공보(전문공보관만 가능)에 대한 피의자의 반론권 보장, 피의사실공표 행위에 대한 인권보호관의 직권조사 진행 등이 추가됐다.

지난달 2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 국회의사중계시스템 갈무리]

지난달 2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 국회의사중계시스템 갈무리]

시기상 미묘했다.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 교사 사건’ 감찰 결과 발표와 때를 같이했다. 참고인 재소자를 100여 회 이상 하고 부적절한 편의 제공 등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과 더불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진상조사와 수사를 방해했다는 내용이 발표에 포함됐다. 공보 조건을 더 강화해 주요 사건의 수사 상황이 언론에 알려지지 않게 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보도 ^라임ㆍ옵티머스 보도 ^월성원전 보도처럼 하나같이 문재인 정부에 민감한 사안이 부적절한 수사 보도의 예로 제시됐다.

‘전 정권 수사 위한 도구화’ 반발

앞서 티타임을 공식 폐지한 검찰 공보 규정은 2019년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이 추진했다. 조 전 장관과 그 가족이 자녀 입시비리와 불법 펀드투자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이었다. 언론보도와 수사에 브레이크를 걸려는 ‘셀프 방탄 훈령’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를 의식한 듯 조 전 장관은 “제 가족 수사가 마무리된 후에 시행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물러난 후이긴 했지만 정작 이 공보 규정의 첫 시혜자는 조 전 장관과 그 가족이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수사 진행 내용 역시 이 규정에 근거해 공개되지 않았다.

2019년 10월14일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이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이 포함된 검찰개혁 방안 발표를 위해 법무부 브리핑실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2019년 10월14일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이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이 포함된 검찰개혁 방안 발표를 위해 법무부 브리핑실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한동훈 장관에겐 시련의 시작이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직에 오른 2019년 7월부터 이듬해 초 부산고검 차장으로 인사 날 때까지 약 6개월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일했다. 조국 전 장관 일가에 대한 대검 차원의 수사지휘를 맡았다. 이전 2년간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지내며 이명박 전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기소 하기도 했다. 전국 검사를 통틀어 가장 티타임이 활발한 자리였다. 그의 중요한 발언은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전달됐고, 수사의 추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오해도 생긴다. 왜 하필 지금, 전 정권에 대한 각종 비위 의혹에 대한 수사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티타임을 복원하냐는 질문이 나온다. 지난달 28일 진행된 서울중앙지검의 부활 첫 티타임에서 역시 민감한 문제가 거론됐다.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과 관련해 “국내에서 탈북어민들의 살인죄 처벌이 가능했다” “귀순 목적과 의사도 구별돼야 한다”고 했다. 수사의 방향이 읽히는 말이다. 박범계 의원 입장에서는 검언유착이 공식화하는 나쁜 티타임의 한 장면으로, 한동훈 장관이 보기엔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한 좋은 티타임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정보흘리기 수사 없앨 계기 돼야  

위 사건을 포함, 부활한 티타임에 가장 가슴 조이는 이들은 최근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된 각종 사건의 당사자일 것이다. 티타임이 사라진 시절 진행된 사건 중 상당수가 다시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 지난 정권의 주요 인물과 야권 인사가 다수 등장한다. 티타임을 하는 검사 역시 맘이 편하지는 않을 터.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가 있음은 물론 예전 티타임이 가능했던 시기 존재하지 않았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비껴가면서도 여론을 등에 업고자 한다면 익명성 뒤에 숨는 ‘정보 흘리기’의 유혹은 사라질 수 없다.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포함한 각종 대형 수사에서 팩트처럼 흘러나오는 정보에 대한 처벌은 이뤄진 적이 거의 없다는 경험도 있다. 수사가 본격화하지 않았는데도 “전 정권에 대한 보복성 수사” “야당 탄압” “검찰 공화국을 만들려는 시도”와 같은 반발이 나온다. 해법은 이미 제시됐다. “공개된 장소에서 정해진 방식으로 책임 있는 사람에게 공평하게 질문할 기회를 주는 것이 (국민의 알권리와 인권보호의) 조화로운 길”이라는 한동훈 장관의 말에 답이 있다. 좋은 티타임으로 정보 흘리기 관행에도 제동을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