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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5세 입학, 교육격차 해소” “조기교육 양극화 키울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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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교육부가 지난달 29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이르면 2025년부터 현재 만 6세인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학제개편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3월 새 학기를 맞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여울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신입생들의 입학식이 진행되는 모습. [뉴시스]

교육부가 지난달 29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이르면 2025년부터 현재 만 6세인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학제개편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3월 새 학기를 맞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여울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신입생들의 입학식이 진행되는 모습. [뉴시스]

교육부가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6세에서 만 5세로 낮추는 학제 개편을 추진하면서 찬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교육부의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학제 개편이 공론화된 이후 일부 학원·학부모·교원단체 등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회적으로 충분한 논의 없이 발표됐다는 이유로 야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31일 종로학원은 “입학 전 학습 상태가 준비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간 학력 양극화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학제 개편의 취지로 밝힌 ‘양극화’ 문제가 일부 학원가에서는 학제 개편의 반대 이유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박 부총리는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에서 “사회적 양극화의 초기 원인은 교육 격차”라며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겨 사회적 약자 계층이 빨리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종로학원은 “공교육에 들어오기만 하면 모든 학생이 평등한 교육으로 격차가 해소될 거라는 안이한 기대”라며 “대학생은 취업이 어려워 졸업을 늦추는 분위기에서 초등학교 입학을 조기에 하는 정책은 현실과 다소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부 학부모들과 교원단체·학원 등에서는 조기 입학 부담이 자칫 선행·조기 교육으로 이어질 수 있고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학생 수가 늘어나는 과도기에 교사와 교실이 부족하고, 이후 입시나 취업에서의 경쟁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OECD 중 만 5세 이하 입학 4개국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교육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4년에 걸쳐 입학 가능한 연령 범위를 25%씩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2025년 입학 때부터 입학연령을 기존 1년(2018년 1~12월생)에 3개월(2019년 1~3월생)씩 확대하는 식으로 4년간 입학생 수를 조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학부모와 교원단체는 “4년간 수도권 중심으로 과밀학급이 생길 것이며 학생들은 다른 연도에 비해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대입·취업에 불리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유아기의 특성을 놓친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교총은 “현재도 개인 선택에 따라 만 5세 초등 조기 입학이 허용되고 있지만 대부분 선택하지 않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했다. 초등 조기입학자는 2009년 9707명에서 2020년 521명(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으로 급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초교 입학 연령이 만 6세보다 낮은 곳은 영국 등 4개국(OECD 교육지표 2021)뿐이다.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조도 반대 성명을 내고 “만 5세 유아들은 15분의 활동 시간이 지나면 집중력을 잃는다”며 “40분 동안 초등학교 교실에 가만히 앉아 학습할 수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OECD회원국 입학 연령

OECD회원국 입학 연령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2019년 2월생 자녀를 둔 조모(42)씨는 “아이가 코로나19로 어린이집도 제대로 못 다녔다”며 “코로나19 최대 피해자인 아이들을 1년 더 일찍 초등학교에 보내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13개 교육단체는 ‘만 5세 초등 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를 결성하고 1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학제개편안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집회를 예고했다.

이번 학제 개편안은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국정 과제에도 없는 내용인 데다 박 부총리는 “학제 개편과 관련해 아직은 교육청과 공식적으로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학제 개편을 교사와 학부모 등의 의견 수렴 없이 발표하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며 “교육은 백년대계인데,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하면 일선 학교 현장과 가정의 혼란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지적했다. 국회 교육위 소속인 강득구 의원은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독단적이고 주먹구구식 정책을 하는 대통령과 교육장관은 즉각 사과하고 철회하라”고 말했다.

학령 개편에 찬성 의견도 있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영유아의 신체발달과 인지발달이 빨라진 점, 선거권 연령이 하향된 점, 취업 등 입직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학제 개편은 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입학 시기를 앞당겨 가정의 유아교육비를 줄이고 국가 교육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부총리는 “영유아와 초등학교 시기 교육에 투자했을 때 효과가 16배 더 나온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노무현·MB·박근혜 정부도 추진했다 무산

학령인구 급감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시각도 있다. 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층의 사회 진출을 앞당겨 노동 기간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초등학교 조기 입학을 추진했지만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교육부는 이번 주 중 국민 수요조사단을 구성하고 대국민 설문조사를 준비한다. 연말까지 설문조사를 완료해 2024년에 개편안을 확정한다는 구상이다. 장홍재 교육부 학교혁신정책관은 “(이번 업무보고는) 학제 개편 논의에 착수하겠다고 알린 것”이라며 “유아교육계 등 관련 단체들과 만나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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