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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총질' 문자 사태 후폭풍…집권 석달 만에 與지도부 붕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윤석열 대통령과 권성동 원내대표의 ‘텔레그램 메시지 노출’ 사태(27일)를 계기로 촉발된 집권당의 혼란이 지도부 붕괴 사태로 이어졌다. 비상대책위 체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는 흐름이다.

권 원내대표는 31일 오후 페이스북에 “당이 엄중한 위기에 직면했고, 국민의 뜻을 충분히 받들지 못했다는 직무대행으로서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직무대행으로서 역할을 내려놓고 조속한 비대위 체제 전환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직무대행 자리는 물러나도 원내대표직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7월 27일 국회로 등원해 원내대표실 앞에서 전날 본회의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문자내용 공개와 관련해 입장을 밝힌뒤 국민들께 사과하며 인사하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7월 31일 당대표 직무대행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상선 기자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7월 27일 국회로 등원해 원내대표실 앞에서 전날 본회의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문자내용 공개와 관련해 입장을 밝힌뒤 국민들께 사과하며 인사하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7월 31일 당대표 직무대행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상선 기자

같은 날 오전 조수진 의원도 기자회견을 열고 “각성과 변화를 요구하는 민심의 엄중한 경고에 책임지기 위해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조 의원은 “바닥을 치고 올라가려면 여권 3축인 대통령실·당·정부의 동반 쇄신이 이뤄져야 한다”며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 선배들도 실질적인 2선으로 물러나달라”고 덧붙였다. 이어 오후엔 윤영석 의원이 “집권당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지도부 일원으로서 큰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사퇴했다.

지난 29일 사퇴한 배현진 전 최고위원을 포함하면 이날까지 사퇴한 최고위원은 3명이고, 남아있는 최고위원은 권성동·성일종·정미경·김용태 위원 등 4명이다. 한명 더 사퇴하면 친윤계 의원들이 ‘최고위 기능 상실’의 기준이라고 주장하는 7명 중 4명 사퇴의 요건이 충족된다. 권 원내대표는 최고위원에서 물러나려면 원내대표직을 내려놔야 하는 걸림돌이 있지만, 정책위의장인 성 의원의 사퇴는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사퇴한 최고위원들을 비롯, 당내 주류인 친윤계 의원들은 대부분 비대위 전환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원한 친윤계 의원은 “정미경, 김용태 최고위원 둘이서 버틴다고 현 최고위 체제가 유지되겠나”라고 말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김용태 최고위원(오른쪽)이 7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배현진 최고위원(29일 사퇴) 뒤로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김용태 최고위원(오른쪽)이 7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배현진 최고위원(29일 사퇴) 뒤로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심지어 당 일각에서는 권 원내대표가 대표 직무대행뿐 아니라 원내대표직도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친윤계인 김태흠 충남지사는 “권 대행은 본인의 사심과 무능만 드러냈을 리더십 바닥을 드러냈다”며 “권 대행은 모든 직을 내려놓고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친윤계 초선 의원도 통화에서 “비대위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라며 “다만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권 원내대표는 안 물러나고 최고위원만 물러나면 비대위의 명분이 약해진다”고 말했다. 비대위가 등장할 경우 나중에 조기 전당대회(새 대표 선출)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다만 이준석 대표측은 비대위에 반대하고 있다. 정미경 최고위원은 이날 중앙일보에 “이준석 대표가 사퇴하지 않는 한 비대위 성립 요건은 충족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고위원직을 고수하고 있는 김용태 최고위원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비대위 체제로 가야 할 정치적 이유도, 당헌·당규상 원칙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거듭 반대 입장을 냈다. 5선의 서병수 의원은 통화에서 “비대위로 가면 사실상 이 대표의 대표직이 박탈되는 문제도 걸려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7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조 의원은 31일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났다. 뉴스1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7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조 의원은 31일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났다. 뉴스1

대선 승리로 정권교체에 성공하고 6·1 지방선거까지 완승한 집권당이 정부 출범 82일 만에 지도부 붕괴 사태에 직면한 건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의 급격한 하락이 근본 원인이다.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지방선거 승리 후 당 핵심들은 당권 경쟁에만 몰두했고, 정부는 뚜렷한 성과 하나 보여주지 못한 채 대통령 지지율 20%대 추락이라는 민심 이반에 직면했다”며 “부끄러움을 넘어 치욕스럽다”고 말했다.

29일 배현진 의원을 시작으로 최고위원들이 줄사퇴한 배경에는 윤 대통령의 의중이 직·간접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 관계자는 “주말 간 당 지도부 인사나 친윤계 등 여러 의원 사이에서 많은 대화가 오갔는데, 이 과정에서 윤심(尹心)이 자연스레 전달되지 않았겠나”라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의 민감한 문자 몇줄이 노출됐다는 이유로 촉발된 이번 사태가 여당의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도 있다. 여권 원로 인사는 통화에서 “대통령과 권 원내대표의 텔레그램이 공개됐다는 실책 자체보다는, 민생에 전력하는 등 실력으로 사태를 주워 담을 능력이 없다는 점이 더 뼈 아프다”고 지적했다.

[이준석 대표 페이스북 캡처]

[이준석 대표 페이스북 캡처]

한편 당원권 6개월 정지 처분을 받고 전국을 돌며 장외 여론전을 펴고 있는 이 대표는 비대위 전환설에 발끈했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양의 머리를 걸고 개고기를 팔지 말라고 했더니 개의 머리를 걸고 개고기를 팔기 시작하려는 것 같다”며 “저자들의 우선순위는 물가 안정도, 제도 개혁도, 정치 혁신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이어 “당권 탐욕에 제정신을 못 차리는 나즈굴과 골룸이 아닌가”라며 “국민이 다 보는데 ‘my precious’나 계속 외치고 다녀라”고 덧붙였다. 나즈굴과 골룸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사악한 괴물이고, ‘my precious’는 골룸이 탐욕의 상징인 절대반지를 향해 입버릇처럼 내뱉는 대사다. 이 대표 측은 “비대위 체제 전환에 이은 조기 전대를 주장하며 당권 잡기에 골몰하는 윤핵관 등을 겨냥한 비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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