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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신권 쓴 사이 전셋값 2배" 그런데 전세대란 없는 슬픈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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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임대차법 시행 2년, 서울 임대차 시장에 월세 거래가 절반을 넘어섰다.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월세 시세표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임대차법 시행 2년, 서울 임대차 시장에 월세 거래가 절반을 넘어섰다.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월세 시세표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고양시 탄현동의 전용 59㎡짜리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는 김 모(33) 씨는 10월 전세 만기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김 씨는 2018년 결혼하면서 현재 사는 전셋집을 1억7000만원에 계약했고, 2년 전 전세 계약을 연장하면서 전셋값 인상폭을 5% 이내로 하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상태다.

임대차법 시행 2년 #다중가격 여전한 전세시장 #금리인상에 월세시대 성큼 #8월 전세대란은 없을 전망

문제는 지금이다. 현재 같은 평형의 전셋값은 3억4000만원으로 4년 전과 비교하면 2배가량 올랐다. 김 씨는 “오른 전셋값 일부를 월세로 돌려 다시 계약을 하자고 집주인에게 말했지만, 아들이 거주할 예정이라고 거절당했다”며 "오른 전셋값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인근에 반전세나 월세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는데 월 고정 지출액이 너무 늘어나 생활을 제대로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를 담은 임대차2법이 31일로 시행 2년을 맞았다. 하지만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당초 입법 취지와 다르게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은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쓸 경우 전셋값 인상률이 5%로 묶이지만, 새로 계약할 때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한 단지 안에서도 전셋값이 이중, 삼중 가격을 띄며 전세 시장이 더 혼란해졌다는 진단이다. 게다가 금리 인상과 맞물려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되면서 청년층과 현금 수입이 적은 은퇴자의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31일 부동산R114가 최근 1년간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를 전수 조사한 결과, 약 1만건의 전세 거래 중 약 60%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써서 전셋값이 5% 이내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신규 계약을 맺었거나 갱신청구권을 쓰지 않은 나머지 40%였다. 신규 계약을 할 때 전셋값이 폭등하면서 새로운 기준점을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용 84㎡ 기준으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이파크의 경우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경우 평균 전셋값이 11억6700만원에서 12억2000만원으로 약 5% 올랐지만,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 전셋값이 11억원에서 17억원으로 54.5% 올랐다.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의 경우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경우 평균 전셋값이 5억7000만원에서 약 6억원으로 4.6% 올랐지만, 사용하지 않은 경우 5억5000만원에서 8억8000만원으로 61%가량 폭등했다. 한 단지 안에서도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여부에 따라 전셋값이 이중, 삼중 가격으로 벌어지면서 임차인의 혼란만 가중됐다는 지적이다.

월세 시대에 8월 전세대란은 없을 것으로

더욱이 금리 인상과 맞물려 전세의 월세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날 국토부에 따르면 전국 주택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반기 51.6%를 기록했다. 정부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1년 이후 반기 기준으로 처음으로 50%를 넘겼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국토부의 아파트 전·월세 실거래가 신고 자료에 따르면 임대차2법 시행 직전인 2020년 상반기에는 총 8만4595건이던 수도권 월세 거래량이 올해 상반기 12만3621건으로 46.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세 거래량은 18만1614건에서 17만5107건으로 3.6%가량 줄었다. 서울 아파트만 봤을 때도 같은 기간 월세 거래량은 2만8011건에서 4만4312건으로 58.2% 늘었고, 전세 거래량은 6% 줄었다. 인천의 경우 2년 사이 월세 거래량이 8085건에서 1만5713건으로 2배 가까이 늘기도 했다.

최근 시중은행의 전세대출금리 상단이 6%를 넘어서자, 월세나 반전세를 찾는 세입자가 늘어나면서 역설적으로 8월 '전세대란'은 없을 전망이다. 전세 물량도 늘어나는 추세다.

아파트 실거래가(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전세 물량은 2만8381건으로 한 달 전(2만8381건)보다 12.6% 늘어났다. 경기도도 아파트 전세 매물이 한 달 사이 14.6% 늘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임대차법 도입과 동시에 전셋값이 대폭 오른 뒤 현재는 안정적인 흐름을 보여 전세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작지만,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세입자 입장에서 집값과 전셋값도 높은 상황에서 월세화까지 진행되면 주거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술대에 오른 임대차법, 폐지될까  

정부는 임대차법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지난 20일 열린 제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전·월세 시장 정상화를 위해 임대차법 개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국회를 중심으로 공론화되기를 기대하며 정부도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일주일 뒤인 27일 국토부와 법무부는 ‘주택임대차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등의 수정부터 폐지까지 여러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양 부처는 주택 임대차보호법을 공동으로 소관하고 있다. 임대차법이 임대차 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개선방안 시뮬레이션 등 사회·경제적·법률적 측면을 검토한 뒤 개선안을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개선안이 나오더라도 여소야대 국면에서 국회 통과 여부는 미지수지만, 최근 들어 야당 내부에서도 임대차법과 관련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반성과 혁신-민주당 집권 5년 반성과 교훈’ 토론회에서 초선인 홍기원 의원은 “임대차법을 부동산 가격 상승기에 도입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무시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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