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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불고기 먹고 부둥켜 포옹, 尹-이준석도 화해시켰던 그 맛[e슐랭토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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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울산 울주군 언양읍의 언양불고기 음식점 ‘태하소’. 김성률(52) 언양한우불고기번영회장이 냉장고에서 양념에 재워놓은 고기 3인분을 꺼내 숯불 위 불판에 얹었다. 이후 동그랗게 모양을 잡아가며 굽기 시작했다. 불판을 3~4번 정도 뒤집자 금세 불고기가 완성됐다.

울주군 언양읍의 언양한우불고기특구 음식점 '태하소'의 언양불고기 3인분. 얇게 썬 고기를 양념에 숙성해뒀다가 육즙을 가두기 위해 동그랗게 굽는다. 울산=백경서 기자

울주군 언양읍의 언양한우불고기특구 음식점 '태하소'의 언양불고기 3인분. 얇게 썬 고기를 양념에 숙성해뒀다가 육즙을 가두기 위해 동그랗게 굽는다. 울산=백경서 기자

김 회장은 “언양불고기는 송아지 한 두 마리를 낳은 40~50개월 암소를 쓴다”며 “양지·갈비·목심·설도 등 다양한 부위를 얇게 썰어내 양념에 버무려 동그랗게 석쇠에 구운 불고기로, 다지지 않아 씹는 맛이 있다”고 말했다.

언양불고기는 품질 좋은 고기 자체의 맛을 살리기 위해 양념을 최소화해 조리한다. 김 회장은 “양념은 가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참기름·간장·후추·설탕으로 간소한 편이다”며 “전체적인 비율로 보면 고기가 99%고 양념이 1% 정도다. 주방에서 숯불에 구워 육즙을 머금은 상태로 손님상에 차린다”고 했다.

지난해 말 언양불고기 먹고 포옹한 尹-李 

언양읍에는 언양불고기 음식점 30여 곳이 있다. 이 중 한 곳에서 지난해 12월 당시 윤석열 대선 후보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만났다. 이 대표가 윤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구성과정 등에서 ‘당대표 패싱’ 논란을 겪다가 잠행한 지 나흘 만이었다. 이들은 당시 김기현 원내대표 소개로 언양읍 한 언양불고기집을 찾았고 불향과 달짝지근한 맛이 일품인 언양불고기에 맥주를 곁들여 식사했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당대표가 울산 울주군 한 언양불고기 식당에서 포옹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당대표가 울산 울주군 한 언양불고기 식당에서 포옹을 하고 있다. 뉴스1

2시간쯤 뒤 두 사람은 웃으며 가게에서 나왔다. 갈등을 극적으로 봉합하며 포옹하는 모습까지 포착됐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고, 이후 윤 후보가 탄탄한 행보를 이어가며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언양불고기 거리에는 손님이 가득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사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심했던 시기에도 단골이 잊지 않고 방문해주셨고, 택배로도 이용해 큰 타격은 없었다”며 “항상 언양불고기를 찾아주시는 손님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60~70년대 고속도로 건설 인부들이 입소문

울주군에 따르면 울주 지역은 예로부터 언양장 옆에 우시장과 도축장이 발달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생활이 어렵던 시절에 언양 사람들도 소고기를 접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소고기를 조금씩 반찬으로 먹는 방법을 고안하게 된다. 고기를 최대한 얇게 썰어서, 양념에 재워 두고 조금씩 구워 먹는 것이었다.

고기를 얇게 잘라내 양념한 언양불고기. 다지지 않아 씹는 맛이 살아 있고, 동그랗게 구워 육즙이 가득하다. 울산=백경서 기자

고기를 얇게 잘라내 양념한 언양불고기. 다지지 않아 씹는 맛이 살아 있고, 동그랗게 구워 육즙이 가득하다. 울산=백경서 기자

이후 60년대 후반 서울-부산 고속도로 건설 당시 팔도에서 몰려든 인부들이 언양식 불고기를 맛보게 된다. 이들은 집에 돌아가 입소문을 냈고, 건설된 고속도로를 타고 전국에서 언양불고기를 먹으려는 사람이 몰렸다.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 2월 1일 착공, 1970년 7월 7일 완공됐다. 도로 건설에 동원된 연인원은 약 900만명에 달했다.

당시 채굴이 한창이던 울산 자수정 광산 개발 인부들도 언양불고기 이름을 알리는데 한몫했다. 이때는 자수정값이 꽤 비싼 덕에 언양은 다른 지역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졌다. 이곳 주민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광산에서 자수정 한 개를 주워와 불고기와 바꿔먹었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고 한다. 2003년부터 언양에 KTX울산역이 들어서면 언양불고기를 찾는 사람이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이후 언양불고기는 서울·광양불고기와 함께 대한민국 3대 불고기가 됐다. 서울불고기는 육수가 자작하고 채소와 당면이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광양불고기는 주문 즉시 양념한 다음 석쇠에 구워 먹고, 언양불고기는 양념에 재워놓아 숙성한 불고기를 석쇠에 구워서 내놓는다.

울주 지역 한우+소금+숯의 조합…‘봉계불고기’도 인기

 울주군 두동면의 봉계한우불고기특구 음식점에서 맛볼 수 있는 봉계식불고기. 소금으로만 간을 한 한우가 숯불에 구워지고 있다. 울산=백경서 기자

울주군 두동면의 봉계한우불고기특구 음식점에서 맛볼 수 있는 봉계식불고기. 소금으로만 간을 한 한우가 숯불에 구워지고 있다. 울산=백경서 기자

울주군 일대는 태화강 상류의 깨끗한 물과 신불산·가지산·간월산 등 ‘영남알프스’의 풍부한 목초지를 바탕으로 한우 축산업이 발달했다. 거기다 울산 염전에서는 소금이 생산됐고, 이 소금과 숯을 교환하는 언양장이 발달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따르면 울산은 60년대까지 한국 최대의 소금 생산지였다. 가마에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만드는 전통 방식인 자염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했다. 당시 가마에 소금을 구으려면 엄청난 양의 숯이 필요했다. 언양 일대에는 참나무와 떡갈나무가 풍부해 사람들은 이를 구워 만든 숯을 울산 염전에 팔기도 했다.

따라서 울주군 일대는 품질이 뛰어난 한우와 숯·소금 등 불고기 요리에 필요한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지역이었다. 이 세 조합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봉계 한우불고기특구다. 2006년 울주군은 언양과 봉계 지역을 합쳐 전국 유일의 언양·봉계 한우불고기특구로 지정했다.

언양 한우불고기특구에서 차로 25분 정도 달리면 울주군 두동면 봉계 한우불고기특구에 도착한다. 같은 날 찾은 두동면의 한 봉계불고기 음식점. 메뉴는 소금구이와 양념구이 두 가지뿐이었다.

울산 울주군 두동면 봉계한우불고기특구에서 맛볼 수 있는 봉계한우. 봉계불고기는 양념을 하지 않은 한우소금구이다. 울산=백경서 기자

울산 울주군 두동면 봉계한우불고기특구에서 맛볼 수 있는 봉계한우. 봉계불고기는 양념을 하지 않은 한우소금구이다. 울산=백경서 기자

정인홍(37) 봉계불고기번영회 사무국장은 “봉계불고기로 불리다 보니, 손님들이 양념구이라고 생각하고 오시는 경우도 있는데 봉계불고기는 사실상 소금만 살짝 뿌려 구운 것이다”며 “소금구이를 시키면 부위는 원하는 대로 잘라드린다”고 말했다.

 봉계 지역에서는 한우 음식점 30여 곳 중 절반가량이 한우를 직접 키우고 도축한다. 손님상에는 송아지 한두마리를 낳은 60개월 이하 암소를 쓴다. 육질이 가장 연하고 맛이 고소할 시기다. 이날 음식점에서 만난 울산 신정초등학교 6학년 정우진(12)군은 “한 달에 1~2번은 꼭 먹으러 온다”며 “육회가 가장 맛있다”고 말했다.

울주군 두동면의 봉계한우불고기특구 음식점에서 맛볼 수 있는 육회. 고기 자체의 맛을 최대한 살렸다. 울산=백경서 기자

울주군 두동면의 봉계한우불고기특구 음식점에서 맛볼 수 있는 육회. 고기 자체의 맛을 최대한 살렸다. 울산=백경서 기자

울주군에서는 99년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까지 해마다 9~10월 언양·봉계 한우불고기 축제가 열렸다. 해마다 관광객 15만~20만명이 몰려 한우를 맛봤다. 울주군은 축제를 되살리기 위해 지난 4월 발전 방안과 축제 방향 등을 마련하는 언양·봉계 한우불고기특구 활성화 용역에 착수했다. 울주군 관계자는 “이번 용역을 통해 언양·봉계 한우불고기특구가 특구로서의 명성을 회복할 뿐 아니라, 지역경제를 살리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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