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기업도 혼란 빠졌다…스마트팩토리 제동 건 대법 판결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2.07.31 05:00

업데이트 2022.07.3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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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의 MES(생산공정 관리)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팩토리 시연

포스코의 MES(생산공정 관리)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팩토리 시연

정부와 기업이 시쳇말로 멘붕에 빠졌다. 대법원의 판결 때문이다.

대법원 3부는 지난 28일 포스코 협력업체 직원 59명이 낸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포스코가 직접 고용하라"고 했다."포스코가 직간접적으로 지시·명령을 했기 때문에 근로자 파견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파견법에 따라 근무 기간 2년이 넘었으므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봤다.

포스코는 공정 일부를 해당 업체에 도급을 했다. 원청은 파견 근로자에 대해서는 지휘하거나 업무지시를 할 수 있지만, 도급업체 근로자에게는 지시하면 안 된다. 대법원은 "간접적으로라도 지시를 했으므로 도급이 아닌 파견"이라고 본 것이다.

근로자의 주장은 대법원이 판결문에 밝힌 취지와 같다. 하지만 포스코는 "도급회사에 소속된 직원에게 지시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스마트팩토리·자동화산업전 2022'에서 한 관람객이 전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스마트팩토리·자동화산업전 2022'에서 한 관람객이 전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양측의 입장이 갈린 것은 MES(생산관리시스템, 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 때문이었다. 스마트 제조 실행 시스템으로도 불린다. 협력업체 근로자는 "MES에 작업 공정과 위치, 작업 계획과 수행작업 등이 뜬다"며 "이는 실질적 지시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포스코는 "MES는 생산성 향상과 공정 관리를 위해 공정 공유 내지 제어 프로그램으로 지시체계가 아니다"며 "직접 지시한 적이 없는데, 생산 공정 관리를 위한 MES를 지시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맞섰다. 대법원은 근로자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지난해 12월 16일 대전 ETRI 본원 11동 실험실과 경북 경산시 하양읍에 있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스마트공장을 연결하는 '초저지연·고신뢰 5G 유무선 네트워크 기반 원격 산업용 사물인터넷 서비스 시연'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ETRI 연구진이 대전 ETRI 본원에서 패널을 조작해 경산 스마트팩토리 시설물을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지난해 12월 16일 대전 ETRI 본원 11동 실험실과 경북 경산시 하양읍에 있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스마트공장을 연결하는 '초저지연·고신뢰 5G 유무선 네트워크 기반 원격 산업용 사물인터넷 서비스 시연'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ETRI 연구진이 대전 ETRI 본원에서 패널을 조작해 경산 스마트팩토리 시설물을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모습. 연합뉴스

판결이 나오자 정부와 기업은 혼란에 빠졌다. MES는 스마트 생산 공정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물론 인도와 같은 개발도상국도 MES 체계로 전환하고 있다. 한데 대법원이 이런 MES 상의 공정 관리를 작업 지시로 간주하면서 한국에선 스마트 생산 체계를 구축하면, 도급 자체를 못 한다. 도급을 주면 인건비 폭탄과 인사 경영상의 혼란을 감수해야 하는 결과로 이어질 위험에 처했다.

MES는 원료의 투입부터 완제품이 생산되기까지 수백 개의 복잡한 단위 공정을 제어하고 관리하는 체계다. 실시간으로 생산 정보를 수집하고, 장비 관리에서부터 재고관리 등 경영정보 및 영업 정보로 활용한다. 제품의 수명 주기(Life-cycle) 단축, 시장의 글로벌화, 고객의 요구 다양화, 가격 경쟁 심화 등 복합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조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도입한 품질과 생산성 향상, 경영관리 혁신 프로그램이다. 2000년대 들어 일부 대기업에서 활용하다 지금은 그 효용성과 기능을 바탕으로 자동차, 철강, 화학, 식품 등 다양한 산업과 중소기업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제조 생산 관리에 대한 요구에 따라 공정 및 제품 품질분석, 자재 및 설비 관리 등 기업 간 또는 생산 공장 간 협업에 대한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협력업체 간 MES를 연계하거나 공동으로 구축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한국컴퓨터정보학회지 제18권 제2호)

포스코의 스마트팩토리 실행 장면

포스코의 스마트팩토리 실행 장면

MES에는▶자원할당 및 상태정보(Resource Allocation and Status) ▶작업·상세 계획(Operations/Detail Scheduling) ▶생산단위의 분산(Dispatching Production Units) ▶문서관리(Document Control) ▶데이터수집(Data Collection/Acquisition) ▶작업자 관리(Labor Management) ▶품질관리(Quality Management) ▶공정관리(Process Management) ▶유지보수관리 (Maintenance Management) ▶제품추적 및 계통(Product Tracking and Genealogy) ▶실행분석 (Performance Analysis) 등이 포함돼 표시된다.

따라서 생산 공정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모든 작업자가 MES를 봐야 한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보라"는 것도 지시가 되고, MES에 든 작업 공정과 계획, 수행작업 내용도 지시가 된다. 한마디로 도급 근로자는 MES를 보지 않도록 해야 불법파견이 안 된다. 이러면 도급으로 맡긴 생산 공정을 진행할 수가 없다. 도급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선 제품 생산의 국제표준의 일환으로 MES를 요구한다. MESA(Manufacturing Enterprise Solutions Association), ISA(International Society of Automation), ISO(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 등의 표준화와 관련된 핵심 활동으로 확산 중이다. 이런 글로벌 기준이 대법원 판결로 한국에서는 수용되지 않고, 제동이 걸린 셈이다.

지난 4월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스마트팩토리·자동화산업전 2022' 한 부스에서 스마트 물류 시스템을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스마트팩토리·자동화산업전 2022' 한 부스에서 스마트 물류 시스템을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스마트워크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다. 고용노동부의 일터혁신, 중소벤처기업부의 스마트팩토리 지원 사업 등을 통해서다. 중기부는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까지 꾸려 정책 성공의 사활을 걸고 있다. 관련 예산도 매년 증가 중이다. 최근에는 대기업이 협력업체의 MES를 지원하며 원청과의 생산공정 공유 작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 또한 정부가 대·중소기업 상생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MES를 핵심으로 하는 스마트 일터 또는 스마트 팩토리 정책은 한국의 고질병인 낮은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한 것"이라며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려면 공정의 스마트화는 꼭 필요한데,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곤혹스러워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에 뒤처지면 한국의 미래가 없는데, 굴뚝 공장 시대로 회귀하는 판결이 나왔다"며 "대법원이 큰 역주행 신호를 산업현장에 던졌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일터혁신 CEO클럽 신규회원사 위촉식 및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일터혁신 CEO클럽 신규회원사 위촉식 및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일터혁신 사업을 맡아 추진하고 있는 노사발전재단 관계자는 "생산 공정과 작업 계획, 관리 등이 작업자나 협력업체 간에 공유가 되지 않으면 생산이 안 된다"며 "대법원 판단에 대해 뭐라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스마트 워크와 생산성 향상 노력에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디지털화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는 기업은 황당해한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임원은 "산업 체계를 1970~90년대로 돌리자는 얘기"라며 "MES와 같은 스마트 팩토리 시스템 없이 어떻게 생산을 하고, 글로벌 시장의 요구를 어떻게 소화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포스코 관계자는 "각 기업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기업) 패소로 결론 날 수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다"고 말했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독일, 일본 등 대부분 국가에서 철강뿐 아니라 전 산업 부문에 MES를 쓴다"며 "모든 국가에서 글로벌 표준인 MES를 생산 공정의 공유로 여기지, 불법파견 내지 원청의 감독·지휘 시스템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굴뚝 공장의 잣대를 가져다 대면 글로벌 시장에서 경영 혁신을 어떻게 하고, 경쟁에서 어떻게 이기느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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