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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최상위 3%만 눌 수 있는 진귀한 똥… 목숨도 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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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이하 C. 디피실)’이라는 박테리아가 있습니다. C. 디피실은 지금도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흉악한 박테리아입니다. 감염 환자는 매우 비참해집니다. 복통과 메스꺼움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설사를 하게 되죠. 영국 스코틀랜드의 베일오브레븐 종합병원에선 관리 실수로 2007년부터 2008년 사이 143명이 감염돼 34명이 사망한 일도 있었습니다.

페니실린이 많은 군인의 목숨을 살렸다는 내용을 담은 홍보 포스터. 하지만 페니실린도 어쩌지 못하는 강력한 박테리아가 있었다. 사진 미국 과학역사연구소

페니실린이 많은 군인의 목숨을 살렸다는 내용을 담은 홍보 포스터. 하지만 페니실린도 어쩌지 못하는 강력한 박테리아가 있었다. 사진 미국 과학역사연구소

현대 의학계는 연구 끝에 C. 디피실을 다루는 치료법을 고안해냈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서 채취한 ‘똥’을 아픈 사람 몸에 직접 넣어주는 것입니다. 바로 대변 이식이죠. 전 세계 소화기내과 전문의들은 이 박테리아를 이기기 위해선 대변 이식을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정글]

다른 사람의 ‘건강한 똥’을 내 몸에

대변 이식이라는 말 자체에 불쾌감을 느끼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명칭 자체도 위화감이 들죠. 하지만 건강한 똥은 환자에게는 엄청난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대변 이식의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건강한 사람에게서 채취한 똥을 50g 정도 준비합니다. 이걸 생리식염수 약 150㎖에 잘 섞어서 믹서에 갈아냅니다. 그 다음 필터에 부어서 덩어리나 건더기는 최대한 걸러내고 용액만을 모으죠. 이 대변액을 대장 내시경이나 위내시경으로 환자에게 투여합니다. 최근엔 캡슐에 담아서 삼키게 하거나 관장을 하기도 하죠.

이 방법은 비참한 설사병을 일으키는 ‘슈퍼 박테리아’를 치료하기 위한 최종수단입니다. 현대 의학은 왜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요.

건강한 대장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우리 몸에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수많은 미생물이 깃들어 살고 있습니다. 코 위에도, 겨드랑이 아래에도, 창자 속에도 수천가지 종류 수십조 개의 바이러스, 박테리아, 곰팡이가 득실대죠.

이 미생물 중 95%는 우리 대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몸 속 미생물의 생태계를 ‘마이크로바이옴’이라고 합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이 사라지면 우리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장내 미생물은 면역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돕고, 소화에 도움을 주며, 심지어 우리 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조영석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염증성 장질환이나 과민성장증후군처럼 직접 장과 관련된 질병 뿐 아니라 비만과 당뇨병도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과 연관이 있다”며 “자폐나 파킨슨병 같은 신경성 질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우리 몸엔 다양한 미생물이 산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 미생물이 나쁜 영향을 미치는 병원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몸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좋은 미생물도 많다. 이런 미생물은 소화를 도우며 면역력을 강화시키고, 피부에 수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사진 미국 국립보건원

우리 몸엔 다양한 미생물이 산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 미생물이 나쁜 영향을 미치는 병원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몸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좋은 미생물도 많다. 이런 미생물은 소화를 도우며 면역력을 강화시키고, 피부에 수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사진 미국 국립보건원

전문가들은 건강한 마이크로바이옴을 유지하려면 최대한 다양한 종류의 채소와 김치, 콤부차, 사우어크라프트 같은 발효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양한 채소와 발효음식을 먹을 수록 여러가지 식물이 우거진 정글처럼 다양하고 건강한 미생물이 번성해 싱싱한 장내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하죠.

하지만 가공된 육류나 정제 탄수화물에 의존하는 서구적 식습관은 마이크로바이옴을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잦은 항생제 처방은 대장 속에 살고 있는 건강한 미생물을 학살하는 효과를 낳기도 하죠.

홀로 군림하는 악독한 박테리아 ‘C. 디피실’

최악의 장염을 유발하는 박테리아 C. 디피실. 생존하기 위해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 혐기성 세균이며 항생제에도 살아남는다. 알코올에도 내성이 있기에 이 균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꼼꼼한 손 씻기이다. 사진 AP=연합뉴스

최악의 장염을 유발하는 박테리아 C. 디피실. 생존하기 위해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 혐기성 세균이며 항생제에도 살아남는다. 알코올에도 내성이 있기에 이 균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꼼꼼한 손 씻기이다. 사진 AP=연합뉴스

건강한 성인 인구 2~5% 정도는 C. 디피실을 대장에 지니고 있습니다. 다른 유익한 미생물과 함께 살아갈 때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죠. 하지만 항생제가 유익한 미생물을 죽여버릴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C. 디피실은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항생제를 거뜬히 버텨내거든요. 다른 미생물이 깡그리 사라진 무주공산의 대장 속을 C. 디피실이 장악하면서 흉악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대장을 막으로 덮으면서 독소를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백신도 없으며 알코올 내성이 있어 에탄올 소독도 소용없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항생제 내성 박테리아 중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로 꼽은 게 바로 C. 디피실입니다. 장이 C. 디피실에 장악된 사람의 삶은 이보다 더 비참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망가집니다. 미국에선 매년 50만명 환자가 발생하고, 3만명이 사망합니다. 65세 이상 환자에겐 치명률이 9%나 되는 위험한 박테리아죠.

치료법 중 하나는 일반 항생제 사용을 즉시 멈추고 그나마 효과가 있는 항생제인 메트로니다졸과 반코마이신을 처방하는 겁니다. 이 항생제조차 듣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찾기가 매우 힘들죠. 미국과 유럽에선 C. 디피실 치료에 드는 비용이 연간 9조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C. 디피실에 특효인 대변 이식 

2014년 6월 19일 미국의 대변 이식 회사 오픈바이옴(OpenBiome)의 연구실에서 연구원 엘리스카 디디크가 대변액을 만들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2014년 6월 19일 미국의 대변 이식 회사 오픈바이옴(OpenBiome)의 연구실에서 연구원 엘리스카 디디크가 대변액을 만들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대변에서 수분을 빼면 전체 25~50%는 미생물입니다. 대변 자체가 미생물 덩어리란 말이죠. 하지만 매우 건강한 미생물로 가득한 똥은 흔하지 않습니다. 전체 인구의 약 3%만 매우 건강한 마이크로바이옴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미생물학계에선 매우 희귀하다는 의미에서 ‘유니콘’이라고 부릅니다. 유니콘이 되려면 최근 6개월 간 그 어떤 항생제에 노출된 적이 없어야 하고, 면역 반응이 정상적이어야 하고, 감염 질환에 걸리지 않아야 하고, 만성적 소화기 질환이 없어야 합니다. 당연히 간염 같은 바이러스 질환이나 편모충증 같은 기생충 감염도 없어야 합니다. 여기에 더불어 장내 미생물 환경도 균형적이어야 하죠.

이런 ‘유니콘’ 대변을 환자에게 심으면 매우 좋은 효과를 보인다고 하죠. 폐허가 돼 가는 전장에 특공대를 투입하는 것과 같습니다. 건강한 미생물들은 C. 디피실을 제어하고 빠르게 건강한 마이크로바이옴을 회복합니다. 조영석 교수는 “항생제를 쓰다보면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일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C.디피실 장염에 대변 이식은 굉장히 효과가 좋다. 현재는 계속 재발하는 C. 디피실 장염의 표준적인 치료로 자리잡았다”고 말합니다.

세계에 속속 문을 여는 ‘대변 은행’

혈액은행이나 정자은행처럼 건강한 대변을 저장하고 관리하는 대변은행이 미국, 영국, 중국, 프랑스,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에 설립되고 있습니다. 2013년 미국에 설립된 대변은행 오픈바이옴은 건강한 대변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회당 40달러를 주기도 합니다.

대변은 이식하기도 하지만, 캡슐로 만들어 복용하기도 한다. 2013년 9월 26일 캐나다 캘거리대학교의 토마스 루이 교수가 대변 캡슐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대변은 이식하기도 하지만, 캡슐로 만들어 복용하기도 한다. 2013년 9월 26일 캐나다 캘거리대학교의 토마스 루이 교수가 대변 캡슐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최근엔 하버드대 의사들이 모든 사람들이 젊고 건강할 때 자신의 대변을 저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유명 생물학 저널 ‘셀(Cell)’의 오피니언면에 게재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태아 제대혈을 보관하는 것처럼 나중에 나이 들어 아플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대변을 저장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정부가 주도한 대변은행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조영석 교수는 “대변 기증자의 관리와 선별은 헌혈을 관리하는 것보다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면서 “지역거점으로 대변은행을 만들면 안전한 관리가 가능할 뿐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헌혈이 그렇듯 대변 기증도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게 되는 날이 곧 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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