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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유튜버들 키워낸 자선 음악가?…'브금대통령' 정체 [비크닉]

중앙일보

입력

BGM Provided by OO

언젠가 유튜브에서 국내 인기 영상 카테고리를 유심히 살펴본 적 있어요. 조회수가 꽤 잘 나온다 싶었던 브이로그 3개를 연달아 시청했고,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어요. 영상 설명 부분에 적혀있는 'Music provided by(음원 제공) 브금대통령.' 먹방, 여행, 애완동물 등 주제는 다르지만 BGM(배경음악) 출처는 브금대통령으로 통일! 게다가 영상에 출처만 명시하면 누구든 무료로 음원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한 번 더 놀랐죠. (혹시 자선사업가는 아니죠?) 브금대통령의 정체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지난달 29일 직접 이들을 만났어요. 음원 사업을 시작한 계기부터 콘텐트를 만드는 과정, 앞으로의 꿈 이야기까지 직접 들을 수 있었답니다.

'브금대통령'이 누굴까 정말 궁금했다. [유튜브 리비(Leeby) 채널]

'브금대통령'이 누굴까 정말 궁금했다. [유튜브 리비(Leeby) 채널]

베테랑 작곡가 뭉치니…3년 만에 구독자 33만명 

브금대통령 멤버들. 왼쪽부터 '지니', '영구', '지우', '오케왕', '야말'. [사진 브금대통령]

브금대통령 멤버들. 왼쪽부터 '지니', '영구', '지우', '오케왕', '야말'. [사진 브금대통령]

브금대통령은 2019년 1월에 탄생한 음원 제작·공급 플랫폼이에요. 멤버는 '지니', '지우', '야말', '영구', '오케왕' 이렇게 다섯 명. 영화·드라마 OST부터 클래식, 가요, 게임 음악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작곡가들이랍니다. '함부로 애틋하게',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우리들의 블루스' 등 드라마 OST, 가수 윤아의 솔로 앨범, '불후의 명곡', '슈가맨' 등 셀 수없이 많은 작업에 참여했죠.

음악이란 공통분모를 품에 안고 있다가 맘이 맞는 사람들끼리 뭉친 지 어언 3년 반. 구독자 약 33만명, 지금까지 만들어 배포한 음원만 700곡이 넘어요.

각자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다 보니, 저마다 하나씩 특기가 있어요. 클래식을 전공한 오케왕은 관현악의 아름다운 선율을 곡에 즐겨 사용하죠. 게임 음악 감독인 지우는 코믹하고 극적인 음악을 즐겨 만들고요. 지니는 가사가 있는 보컬 송을, 영구는 귀여운 느낌의 배경음악을, 야말은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전자음을 만드는 데 소질이 있어요.

공짜 음원, 왜 만드나요?

"빛을 보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지는 수많은 곡이 아까웠어요." 성장하는 1인 미디어 시장을 유심히 지켜보던 멤버들, '버려지는 고품질 음악을 비용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란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했어요. "입소문을 타고 우리 음악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시장 생태계도 커질 테니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겠단 생각이었죠."

비슷한 채널? 많아요. 음원 보유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아트리스트'(Artrist)와 '에피데믹사운드'(Epidemic Sound) 같은 외국 채널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이들은 유료 플랫폼이에요. 무료도 있습니다. '유튜브 라이브러리'(Youtube Library)같은 곳이요. 장르·분위기를 검색하면 수백 개의 무료 BGM을 찾을 수 있죠. 브금대통령만의 무기는 무엇일까요?'

멤버들은 '한국형 감성'이라고 답했어요. "아트리스트 같은 곳에서 배포하는 음원이 우리 감성과 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넷플릭스' 같달까요. '뭐가 많은데…참 볼 게 없다' 그런 느낌 있잖아요." 음악의 감성에도 국경이 있다는 것. 다년간 영화·드라마 OST를 제작해온 브금대통령은 우리의 음악 감성에 빠삭해요. 외국에선 흉내 낼 수 없는 한국형 감성, 브금대통령의 아이덴티티죠.

음원 크리에이터라 불러줘

제작자가 구독자와 소통하는 '크리에이터' 면모도 차별점이에요. "'이 곡은 어떤 사람들이 만들었을까?' 궁금해하는 구독자들이 많아요. 얼굴을 직접 보여주고, 댓글이 달리고, 그럼 또 답글을 달고. 음원을 만드는 크리에이터라고 할 수 있죠."

"처음엔 '우린 작곡가야. 음악으로 승부를 보자'고 했었는데, 유튜브 생태계에 점점 빠져들다보니 우리 얼굴을 비추고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이 엄청 중요하단 걸 알게 됐어요."

처음부터 얼굴을 까진(?) 않았어요. 초창기엔 나름 신비주의를 유지했답니다. 그런데 구독자들이 궁금해했대요. 구독자 수 10만명을 넘겼을 때쯤, '그래, 얼굴 한 번 보여주자' 결심했죠. 질문에 답하는 Q&A 영상이 구독자들과의 첫 만남이었어요. '상상했던 이미지와 달라서 재밌다.' '감성적인 음악 코드 때문에 여성인 줄 알았는데 남자 다섯이라니 당황스럽다.' '생각보다(?) 연령대가 높아 흠칫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죠.

💡 BGM, 어떻게 만드나요?

브금대통령이 음원에 삽입할 멜로디를 악기로 연주하고 있다. [사진 브금대통령]

브금대통령이 음원에 삽입할 멜로디를 악기로 연주하고 있다. [사진 브금대통령]

"장르를 정하고 음상이 떠오르면 작곡 프로그램인 '큐베이스'에 밑그림을 그려요. 코드와 리듬을 추가하고, 필요하면 그때그때 악기를 연주해 멜로디를 만들고요. 모든 과정이 끝나면 1분 30초의 음원이 완성되죠. 어떤 곡은 4시간 만에 제작할 때도 있고, 또 안 되는 날은 2주 이상 걸리기도 해요. 곡이 안 써질 땐 정말 아무것도 못 하죠.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고요."

"가장 큰 고민은 장르. '어떤 장르의 곡을 만들어야 할까'가 최대 고민이죠. 요즘 가장 '잘 팔리는' 장르는 코믹하고, 귀엽고, 발랄한 음악이에요. 일상을 담백하게 담는 브이로그가 많아져서죠. 브금대통령 구독자들은 어두운 음악보다는 밝은 음악을 선호해요."

"음원을 다운로드하는 방법도 간단해요. 브금대통령 유튜브 채널을 구독한 뒤, 유튜브(구글) 계정으로 홈페이지에 로그인하면 인증 절차 없이 모든 음원을 받을 수 있어요."

"며칠간 공들여 음악을 업로드했는데 조회수가 저조할 땐 아찔해요. '이건 되겠다' 생각했던 음원에 반응이 없으면 서운하죠. 반대로, 대충 작곡한 음원의 조회수가 폭발할 때도 있어요. 그런 불확실성이 유튜브의 묘미 같기도 해요."

BGM은 인스턴트 음악? 이젠 작품으로 봐주더라

요즘 멤버들은 "댓글 읽는 맛이 난다"고 해요. "대중이 생각보다 듣는 귀가 트여있어요. 어릴 때부터 드라마, 영화, TV 쇼·예능 프로그램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다 보니, 퀄리티 높은 음원에 귀가 익숙해져 있죠."

크리에이터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재밌대요. BGM을 삽입하는 실력이 느는 게 보인다고요. "예전엔 발랄한 여행 브이로그에 우중충한 음악을 사용해 음악이 영상을 망치는 경우가 많았죠. 최근엔 콘텐트 퀄리티가 전체적으로 높아지면서 분위기에 꼭 맞는 음원을 골라 넣더라고요."

대중이 BGM을 보는 시선도 변했어요. 예전엔 길거리나 TV에서 흔하게 들려오는 '인스턴트(일회성) 음악'으로 흘려들었는데, 이젠 가요·클래식 같은 '작품'으로 봐준대요. 멤버들은 "언젠가부터 저희가 만든 음원의 제목까지 기억해주더라"며 "일할 때, 운동할 때, 낮잠을 잘 때 듣는 음악으로 저희 음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했어요.

기억에 남는 댓글도 많죠. '음악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가 생각난다'던 한 구독자의 댓글을 잊을 수 없대요. '지금은 나이가 드셔서 몸도 편찮으신데,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있던 그 시간이 떠오른다'는 글이었어요. "울컥했죠. 그런 댓글을 보면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초심으로 돌아가요. 저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이 BGM에 감정이입을 하더라고요. 항상 감사해요."

이런 댓글을 보면 초심으로 돌아간다. [브금대통령 유튜브 캡처]

이런 댓글을 보면 초심으로 돌아간다. [브금대통령 유튜브 캡처]

그래서, 수익은 얼마?

국내 음원 제작·공급 플랫폼 시장을 연구한 조사 보고서는 아직 없어요. 유튜브 구독자 수(33만명)로 가늠해보면, 브금대통령이 이 분야 1위죠. 궁금했어요. 국내 대표 음원 플랫폼, 구독자 33만명인 브금대통령은 대체 얼마를 벌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쉽게도 숫자를 들을 순 없었어요.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돈을 못 벌고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죠. 멤버들은 "30만이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채널이라고 생각해서 일반 크리에이터들과 비교를 많이 한다"면서도 "브금대통령은 '시청' 중심의 채널이 아니기 때문에 구독자 수 대비 수익이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어요.

유튜브 채널 수익은 구독자 수뿐만 아니라 재생 시간과 댓글 수 등 여러 가지를 종합해 결정돼요. 브금대통령의 평균 영상 시청 시간은 30초~1분 남짓. 음원을 찾기 위해 앞부분만 조금씩 골라 듣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죠. 그래서 BGM을 제작할 때 곡의 도입부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쓴대요.

수익은 미미하지만, 멤버들은 브금대통령 운영을 주업이라고 생각해요. 부업보다 적게 버는 주업, 생업보다 더 열정을 쏟아도 괜찮을까요? "관점의 차이 아닐까요. 하루 24시간 더 많이 공들이고 투자하는 시간이 주업이라고 생각해요."

사진은 '픽사베이'(Pixabay), 폰트는 '나눔 글꼴', 브금(BGM)은 이제 '브금대통령'을 떠올려주세요.

브금대통령의 음원을 이용하는 연령층은 주로 18~34세. 요즘 흔히 말하는 'MZ세대'가 사용자의 60% 이상을 차지해요. "구독자들이 나이가 들어 5년 뒤, 10년 뒤에 지금을 회상할 때 저희 음악이 떠오른다면 좋겠어요. 어디에서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르는, 앞날이 창창한 친구들과 함께라서 설렙니다. 그렇게 보면 저희 비전은 성대한 편이죠."

브금대통령 이용자 성별·연령 통계. 이용자의 62.6%가 18~34세다.

브금대통령 이용자 성별·연령 통계. 이용자의 62.6%가 18~34세다.

브금대통령은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채널이 되고 싶다고 했어요. "음악 바닥엔 능력 있고 곡도 잘 쓰지만 인지도가 낮은 작곡가들이 아직 많아요. 그들을 수면 위로 올려보고 싶어요. 그럼 구독자들도 더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한 가지 더, 유명해지고 싶대요. 외출했을 때 누군가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는 것. 솔직한 바람이죠? 인지도를 높여서 앨범도 내고 더욱 큰 채널로 성장하는 '종합 미디어 콘텐트 플랫폼.' 브금대통령의 꿈은 실현될까요?

뱀발🦎: 대통령과 상표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문'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문'

브금대통령, 그 이름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어요. 채널명 '대통령'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청와대의 상징인 봉황 장식을 엠블럼으로 쓰고 싶었대요. '이게 될까?'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청와대에 연락을 했어요. 돌아온 답변은 차가웠죠.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대통령 명칭과 봉황 장식은 개인이 상업적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고요.

대통령, 그리고 청와대의 상징인 봉황을 상표로 사용할 수 없다던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말은 사실일까요? '봉황'은 안 되고, '대통령'은 됩니다.상표법 34조 3항에 따르면 '국가·공공단체 또는 이들의 기관과 공익법인의 비영리 업무나 공익사업을 표시하는 표장(表裝)으로서 저명한 것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표'는 상표등록을 할 수 없어요. 대한민국 대통령을 상징하는 문장인 '봉황문'(鳳凰紋)은 1967년 제정된 대통령 공고에 표장으로 명시돼있죠. 반면, 대통령을 가리키는 '헌법기관', '국가원수' 등의 명칭을 상표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어요. 대통령 세 글자를 이용해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이상, 브금대통령과 같은 수많은 대통령들이 간판을 내려야 할 일은 없을 겁니다.

비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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