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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 때리자 가스 고문…러·유럽 '치킨게임' 뒤 '공룡' 따로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환전소 앞을 러시아 여성들이 지나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달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환전소 앞을 러시아 여성들이 지나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와 유럽의 '경제 난타전'이 동반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독일 통계청은 29일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분기 대비 0%라고 발표했다. 사실상 경제가 성장을 멈췄다는 얘기다. 앞서 러시아 경제개발부는 지난 27일 러시아의 2분기 GDP 증가율이 전년동기대비 -4%라고 밝혔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에너지 부족 등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내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경제성장률이 -1.7%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동반 하락은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고공 행진도 원인 중 하나지만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결정적이란 게 중론이다. 이후 유럽은 경제 제재, 러시아는 에너지ㆍ식량 공급 차단을 통해 상대방의 경제 체력을 고갈시키는 전략을 썼다. 시간이 흐를수록 양측 모두 피해가 커지는 가운데 싸움은 ‘누가 더 오래 버티나’를 겨루는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유럽은 지난 3월 이후 러시아에 금융 거래 제한, 기술·부품 수입 제한 등의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러시아의 1분기 GDP는 3.5% 증가했다”며 “2분기에는 서방의 전면적인 경제 제재 효과가 반영되며 하락세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경제성장률도 5월이 -4.3%, 6월 -4.9%로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러시아 경제가 -6.0%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유럽 역시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러시아에 의존해온 가스가 틀어막히면서 주요 산업 부문에 공급될 에너지가 고갈될 위기에 처하면서다.

지난 2011년 독일 북동부 루브민에 있는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의 모습. [AFP=연합뉴스]

지난 2011년 독일 북동부 루브민에 있는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의 모습. [AFP=연합뉴스]

러시아는 27일부터 독일로 향하는 천연가스관 노르트스트림1의 가스 공급량을 전체의 40%에서 20%로 줄였다. 이날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가격(8월 만기)은 전 거래일보다 2.65% 오른 205.225유로를 기록했다. 지난 21일(155유로)과 비교하면 32%나 올랐다. IMF는 "(러시아 가스 공급이) 완전히 중단되면  올해와 내년 유럽 지역의 경제 성장을 급격히 약화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 경제개발장관을 지낸 티모피 밀로바노프 미 피츠버그대 경제학과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러시아와 서방의 싸움은 서로를 (경제)위기에 빠뜨리려는 소모전”이라고 평가했다.

유럽 “시간은 우리 편”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 앞에 유로화 문양의 조형물이 지어져 있다. [AP=연합뉴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 앞에 유로화 문양의 조형물이 지어져 있다. [AP=연합뉴스]

치킨 게임의 승자는 누구일까. 유럽은 시간은 자신들 편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해 유럽을 위협한다면 결과적으로 그동안 가장 큰 고객이었던 유럽 시장을 잃는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프리 소넨펠드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유럽은 지난해 러시아 천연가스 수출의 83%를 차지하는 가장 큰 고객"이라며 "러시아 가스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파이프라인 천연가스(PNG)는 가스관 건설에만 수십년이 걸려 사실상 대체 시장을 찾기가 불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반면 유럽국가들은 노르웨이·알제리 등과 에너지 공급협상을 벌이며 이 기회에 러시아 가스에 의존했던 에너지 소비 구조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대러 제재 효과 시간 갈수록 커져

지난 5개월 간 서방의 제재에도 러시아 경제가 잘 버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재의 효과가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제조업 기반이 약한 러시아는 서방 제재로 부품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산업 생산에 큰 타격을 입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제재 이후 러시아를 향한 글로벌 반도체 수출량은 90% 감소했다.

해외 기업의 탈러시아 행보도 충격이 크다. 소넨펠드 교수는 “러시아 사업을 축소하거나 철수한 기업은 1000개 정도로 이들은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40%에, 고용 규모도 100만명이나 된다”며 "제재가 유지되는 한 러시아의 미래는 없다”고 전망했다. 러시아 내부에서도 자국 경제의 피해가 크다고 인정한다. 엘비라 나불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제재로 인한) 경제 하락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스 부족에 반러 연대 무너질라  

문제는 겨울철 가스 부족 위기를 앞두고 유럽과 미국 등 서방이 반러 단일대오를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다. 지난 26일 유럽연합(EU) 에너지 장관회의에선 천연가스 소비를 15% 감축하는 방안에 대해 헝가리가 반대표를 던지며 만장일치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낮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도 반대표를 던지지는 않았지만 논의 과정에서 감축안에 불만을 표시했다.

러시아산 석유 수입 여부를 놓고 미국과 EU도 의견차가 있다. EU는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전부 금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은 수입 자체는 지속하되 가격상한제를 도입해 러시아가 높은 수익을 가져가는 것만 막자고 주장한다. 국제원유시장에서 러시아산 공급이 끊겨 국제유가가 급등할 것을 우려해서다.

숨은 복병 ‘중국’

지난 2018년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베이하이시에서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에서 직원들이 LNG 운반차량에 가스를 주입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8년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베이하이시에서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에서 직원들이 LNG 운반차량에 가스를 주입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액화천연가스(LNG) 시장의 최대 큰 손 중국의 움직임도 변수다. 유럽은 러시아산 PNG 대신 다른 지역의 가스를 LNG 형태로 들여오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지난해 세계 최대 LNG 수입국인 중국이 움직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블룸버그 통신은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봉쇄조치를 취해온 중국은 현재 LNG 소비가 많지 않지만, 날씨가 추워지거나 경제가 반등하면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며 “이럴 경우 세계적 LNG 부족 문제가 생길 것이고 유럽 역시 가스 구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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