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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양회’가 ‘돌돌핍인’으로, 중국의 대전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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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9호 21면

롱 게임

롱 게임

롱 게임
러쉬 도시 지음
박민희·황준범 옮김
생각의힘

『예정된 전쟁』(그레이엄 앨리슨),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마틴 자크),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존 미어샤이머), 『백 년의 마라톤』(마이클 필스베리) 등 중국의 야심 찬 패권 전략과 그에 맞선 미국의 대응을 분석한 명저들은 항간에 많이 나와 있다. 그런데도 『롱 게임(The Long Game):미국을 대체하려는 중국의 대전략』이 눈길을 확 끄는 대목은 저자가 조 바이든 행정부에 몸담은 러쉬 도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국 담당 국장이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의 대중 패권 견제 전략을 직접 기획·집행하는 당사자의 책이어서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패권 도전 대전략은 중국공산당이 짜놓은 거대한 목표, 즉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며, 1978년 개혁·개방 이후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에 이어 시진핑이 그 사명과 목표를 착착 수행하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중국몽(中國夢)’도 시진핑 개인의 독특한 성향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전략 목표이고 시진핑이 이를 충실히 이행할 뿐이란 것이다.

저자는 중국의 대전략이 3단계로 나눠 진행된다고 분석한다. 각 시기에 중국은 미·중 관계 변화에 정밀하게 초점을 맞추고 대전략을 전환 및 업그레이드해왔다고 저자는 풀이했다.

이달초 시진핑 주석의 방문 당시 홍콩 거리의 쇼핑몰 전광판에 관련 뉴스가 보인다. [AP=연합뉴스]

이달초 시진핑 주석의 방문 당시 홍콩 거리의 쇼핑몰 전광판에 관련 뉴스가 보인다. [AP=연합뉴스]

1단계는 1989~2008년으로, 이 시기에는 미국 세력과 영향력을 ‘약화시키기’에 집중한 단계다. 톈안먼 광장의 민주화 시위를 탱크로 유혈 진압한 이후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자 중국은 미국을 이념적·군사적으로 직접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야심을 감추고 실력을 기른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 기조를 유지하면서 미국과의 직접적인 경쟁을 피하는 비대칭 전략을 구사했다. 중국은 미국의 중국 포위 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미국이 주도해온 국제기구 가입에 적극적이었다.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과 북핵 6자회담에 참여한 것도 이 시기다.

2단계는 2009~2016년으로 아시아 지역 패권 기반 ‘구축’ 시기다. 2008년 말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자 중국은 미·중의 국력 격차가 축소됐다고 진단하고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도전을 시작했다. 후진타오는 2009년 힘의 균형에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며 중국이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의 시기라고 선언했다. 2010년에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처음 추월했다. 항공모함을 건조하고 남중국해에 군사 기지를 구축했다. 2013년에는 일대일로(一带一路) 구상도 출범했다.

3단계는 2017년 이후로 ‘확장’의 시기다. 중국은 이 무렵 서구사회가 명백하게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시진핑은 미국을 대체할 중국 주도의 ‘신시대’를 선언했다. ‘살기등등하게 상대를 핍박하는’ 돌돌핍인(咄咄逼人)의 단계다. 저자는 우리가 중국의 이런 신호를 놓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자유주의 가치가 훼손되는 권위주의적 질서로 바뀔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이 뇌리에 맴돌았다. 첫째, 서구 사회의 강력한 견제가 시작돼 중국 뜻대로 될 가능성은 작아 보이지만, 만에 하나 중국의 대전략이 성공하면 자유와 민주주의가 암울해진 홍콩 같은 세상이 도래할까 우려된다. 물론 중국이 국제사회에 자유·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담은 공공재를 제시하지 못하면 중국의 ‘긴(long) 게임’은 ‘빗나간(wrong) 게임’이 될 것이다.

둘째,  보수 정당에서 진보 정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호주는 중국을 상대로 당당한 외교 전략을 구사 중이다. 중국 코앞에 노출된 대한민국에는 100년은 고사하고 10년 앞을 준비한 대전략이 있는지 묻게 된다. 미국보다 대한민국이 위기다. 곧 여름 휴가를 떠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챙겨가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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