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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탄생과 소멸…인류의 역사는 찰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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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9호 20면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
헨리 지 지음
홍주연 옮김
까치

학술 전문지 ‘네이처’의 시니어 에디터인 저자 헨리 지는 우리네 고교 시절의 암기 과목 지구과학과 생물을 완전히 뒤섞어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냈다.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는 대중 눈높이의 교양 과학서적이지만 묘하게 문학적이다. ‘아주 오랜 옛날, 거대한 별 하나가 죽어가고 있었다’는 첫 문장부터 시적이다. 다른 별의 죽음으로부터 지구 생명의 근원 태양이 잉태됐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우주와 생명의 무심한 탄생과 소멸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한낱 거품에 지나지 않았던 초기 생명체의 한없이 지루한 진화는 최승자의 시처럼 쓸쓸하다. 지구가 몇백만 년 동안 목성처럼 고리를 주위에 두르고 있었고, 3억년 동안 얼음에 갇혀 있었으며, 누구나 1만3000년만 기다릴 수 있다면 북쪽 하늘에 북극성 대신에 거문고자리의 직녀성이 밝게 빛나는 걸 볼 수 있다는 서술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오른다.

“돼지처럼 생긴 몸, 전동 깡통따개처럼 생긴 머리, 그리고 먹이에 대한 골든 리트리버와 같은 집착”이라고 묘사한 트라이아스기의 생물 ‘리스트로사우루스’는 중국 신화집 『산해경』에 나올법한 괴물 같다. 공룡의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보던 포유류가 세력을 넓히고, 호모 에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과 경쟁하고 공존하다 가까스로 지배자가 된 현생 인류의 도전은 아슬아슬한 스릴러다.

목차 다음 첫 페이지에 나오는 도표도 인상적이다. 과거 150억년과 미래 50억년을 합쳐 무려 200억년을 단 한 쪽에 압축 요약했다. 도표에서 새끼손톱 정도의 길이는 10억년에 해당한다. 우주가 탄생하고(약 100억년 전), 생명의 첫 징후가 나타나고(약 40억년 전), 지구 생명이 절멸한다(약 10억년 후). 스케일이 이 정도니 책 제목처럼 ‘지구 생명’은 ‘아주 짧은 역사’일 수밖에. 기껏해야 50만년 남짓인 인류의 역사는 그저 마침표 정도의 크기가 될까 말까다.

양막류의 알을 “신세계를 정복하게 해주는 일종의 우주복”, 지구를 “스토브 위에 올려놓은 냄비 속 물”에 빗댄 재밌는 표현 덕분에 책이 쉽게 읽힌다.

미래에 대한 저자의 진단과 처방도 좀 더 근원적이고 문학적이다. “모든 생물의 끝은 멸종이다”, “절망하지 마라. 지구는 버티고 있고, 생명은 아직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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