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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 나도 정부가 메워 준다는 공기업 마인드부터 바꿔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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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9호 14면

파업 타결 대우조선해양 ‘산 넘어 산’ 

2조3328억원. 대우조선해양 장부에 기록된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의 규모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이 단어는, 쉽게 말해 빌린 돈이긴 하지만 영원히 갚지 않아도 되는 돈이란 뜻이다. 갚지 않을 수 있으니 회계상으론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3월 말 대우조선해양의 자본총액은 1조7265억원에 불과하다. 신종자본증권이 없었다면, 대우조선해양은 이미 자본을 완전히 까먹은 ‘완전자본잠식’ 상태란 얘기다.

이런 방식으로 돈을 빌려준 곳은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이다. 수출입은행법상 다른 회사 주식을 보유할 수 없기 때문에 신종자본증권을 통해 빌려주는 형식을 선택한 것이다. 수출입은행의 신종자본증권을 주식으로 전환하면 5700만주 가량으로 최대주주인 산업은행(5973만주)에 필적하는 규모다. 수출입은행 입장에선 주식을 받아선 안 되고, 대우조선입장에선 빌린 것이어선 안 되는 상황에 맞춰 고심한 결과물인 셈이다.

매각 못한 드릴쉽, 유지비 연 400억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국책은행의 지원은 최근에도 반복되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신종자본증권의 이자로 1%만 받기로 하는 대신, 5년마다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조건(스텝업)을 붙였다. 그러나 첫 5년째를 맞이한 지난 2021년 말엔 1년 더 이자를 높이지 않기로 했다. 대우조선해양과 비슷한 회사들은 8% 가량의 이자를 내고 있었으니 단순 계산으로 연간 1600억원을 지원한 셈이다. 최중기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1실장은 “수출입은행이 금리 스텝업을 올해도 추가 유예시켜주지 않으면 대우조선해양의 재무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수 있어 지켜봐야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50일 넘게 이어졌던 하청노조의 파업이 타결됐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성공적인 매각을 위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경영 정상화가 시급하다. 국책은행의 지원을 받는 사이 대우조선해양의 경영 악화는 심각하게 쌓였다. 지난 10년간 대우조선해양의 누적 순손실은 7조7000억원에 이른다. 영업 현금흐름도 지난 10년 가운데 3년을 빼곤 모두 마이너스(-)였다. 본업인 배를 만들고 파는 과정에서 실제로 들어온 현금보다 나간 현금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반면 같은 기간 투입된 공적자금은 12조8000억원 규모다. 지난 10년간 배를 열심히 만들어 팔았지만, 사실상 공적자금으로 연명했다는 지적이 잦아들지 않는 이유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과거 국내 조선사들끼리 수주 경쟁이 붙었을 때, 대우조선해양이 너무 공격적으로 수주한다는 얘기가 종종 나왔다”며 “배를 만들어주고도 제값을 못 받아 손실이 나면 모회사에 손을 벌리거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다른 업체들과 달리 대우조선해양은 사실상 정부 소유였던 덕분에 매출을 늘리는 게 중요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에도 이 같은 행보를 보여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수주 목표치를 77억 달러에서 89억 달러로 높여 잡았다. 선박 수요가 늘어나니,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수익성 측면에선 상황이 녹록찮다. 지난해부터 심상찮던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올 들어 급등세로 전환하면서 조선업계도 부담이 커진 것이다. 선박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후판 가격만 해도 올 들어 t당 124만원을 넘었다. 이에 대우조선해양과 자산 규모가 비슷한 삼성중공업은 올해 수주 목표를 91억 달러에서 88억 달러로 낮췄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발주량이 살아나는 시점이긴 하지만 동시에 원자재 가격이 상승해 무리하게 수주를 늘리기 보단 수익성이 높은 물량 위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업계에선 배를 만들어 인도하는 데까지 통상 2년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추정하는데, 대우조선해양이 현재 작업 중인 물량은 2020년 수주한 물량이다. 당시 후판 가격은 t당 68만원 수준이었으나 정작 만드는 시점에선 두 배 수준이 된 셈이다.

대우조선해양 입장에서도 억울한 게 없는 것은 아니다. 20년 넘게 국책은행의 관리를 받다 보니, 성과를 내세울 수 있는 분야는 ‘배를 많이 만드는 일’로 제한된 것이다. 원가절감이 필요하다고 해도 인건비를 낮추는 것 외엔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도 쉽지 않았다. 지난 22일 일단락된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은 이 과정에서 곪을 대로 곪은 문제가 터졌다는 평가다. 지난 2017년까지 대우조선에서 전략혁신 담당으로 일했던 양승훈 경남대 교수(사회학)는 “대우조선은 지금까지 하청을 통해 비용절감에 나섰다”며 “산업은행은 공적자금 회수란 소임이 중요했겠지만 그러다보니 긴 안목으로 비용절감에 투자하지 못하고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식의 긴축 일변도로 간 것”이라고 말했다.

배를 만들고도 제 값을 못 받은 게 지난 수년간 대우조선해양을 어렵게 한 원인인데 본질은 건드리지 못했다는 얘기다. 대우조선해양이 과감한 선택에 나서지 못하는 모습은 리스크 관리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사례는 국내 조선업계를 위기로 몰아넣은 분야인 해양플랜트(드릴쉽)다. 바다에서 석유를 시추하는 설비인 해양플랜트는 2010년대 중반 유가 강세에 조선업체들에겐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유가가 급락하면서 완성된 해양플랜트를 찾아가지 않는 사례가 빈번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장부엔 이 때 만들어 놓은 해양플랜트가 아직도 재고로 잡혀 있다.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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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조선사들은 이 골칫덩어리를 팔아치우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렇게 발이 묶인 드릴쉽은 담보대출도 불가능한 데다 보관료 등 유지비로만 연간 400억원가량이 들어가는 탓에 가만히 있어도 손실이 늘어난다. 이에 재고로 갖고 있던 드릴쉽 4척을 두고 골머리를 앓던 삼성중공업은 지난 4월 사모펀드에 전량 매각하기로 했다. 1조원 규모인 이 사모펀드를 설립하는 데 자금 절반을 투자했기 때문에 완전한 매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4500억원가량의 유동성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은 묵혀두고 있던 드릴쉽 4척 가운데 2척을 노르웨이 해양시추업체 노던드릴링에 매각하기로 했으나 지난해 계약이 파기됐고,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들고 있을수록 손해인 악성 재고라도 정석대로 파는 것 외에 다른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것이다. 과거 대우조선해양의 사외이사를 맡았던 이상근 서강대 교수(경영학)는 “산업은행 출신 인사가 2009년부터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았고, 경영관리단도 파견하고 있어 산업은행의 감시감독을 받아야 할 항목이 너무 많다”며 “대우조선해양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상황인데 손실이 나고 자금 부담이 커지더라도 국책은행이 지원하니 지금 상황에선 누가 키를 잡더라도 수주를 늘리는 것 이외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최대주주인 산업은행 관리 체제에 비난이 쏟아진다. 지난 십여 년간 매각을 목표로 미봉책만 쫓다 보니 대우조선해양의 기업 경쟁력을 고갈시켰다는 것이다. 실제로 산업은행 관리 아래서 사실상 공기업처럼 변한 대우조선해양은 국책은행의 지원을 떼 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상태다. 올해 들어 대우조선해양이 1년 내 상환해야 하는 차입금은 2조7280억원에 이르는데 지난 3월 말 대우조선해양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1조4413억원에 불과하다. 다시 돈을 빌려 차입금을 돌려 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이 같은 대우조선해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책임감을 갖고 경영할 ‘새 주인 찾기’가 필요하다 입을 모은다. 다만 지난 십여 년간 국책은행에 기대 경쟁력이 약화된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주체를 단기간에 찾기 어려운 만큼 체질 개선이 우선이란 지적이다. 구자현 KDI 연구위원은 “수년 전에도 비슷한 지적을 한 적이 있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장기간 산업은행 관리 아래서 준 공공기관화 됐고,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기도 했다”며 “대우조선해양의 체질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과거처럼 한국 조선업이 세계 시장을 싹쓸이하는 시대가 다시 돌아오긴 쉽지 않단 사실을 직시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한다. 최중기 실장은 “컨테이너선이나 LNG선 같은 분야도 중국이 아예 못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박 수요가 늘어도 과거와 같은 수준의 호황을 누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생산설비를 놀리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더 이상은 무조건 많이 만드는 식으론 수익을 극대화하기 어렵단 얘기다.

대우조선해양 출신 대표이사 고집

대규모 수주만큼이나 ‘수주의 질’이 중요해진 만큼 경영 전반을 포괄할 인사가 필요하단 지적도 나온다. 산업은행 관리 아래서 최근 연거푸 대우조선해양 출신의 생산 전문가를 대표이사로 고집하고 있는 상황인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동생인 문재익씨와 한국해양대 동기인 까닭에 낙하산 인사 논란을 빚은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대표는 대우조선해양에서 선박생산운영담당과 조선소장 등을 역임한 생산 전문가다. 전임자인 이성근 전 대표 역시 선박해양연구소장과 설계부문장, 조선소장을 거친 조선업 기술 전문가였다.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강의교수는 “한국에 따라잡히던 시기 일본 조선업계에선 중소 업체들은 구조조정을 거쳐 이마바리 조선소로 뭉치며 규모를 키웠고, 대기업은 무리한 해외 수주 대신 자국 수요 위주로 방향을 바꿨다”며 “배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황에 맞게 경영 전반을 바라볼 수 있는 전문가가 키를 잡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근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대우조선해양이 경영 효율화에 성공하려면 일부 사업을 정리할 정도로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내부 인사를 고집하지 말고, 필요하다면 현대중공업에서 적임자를 스카우트하는 식으로 과감한 변화를 줄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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