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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덫에 걸린 MZ세대]“영끌·빚투 안 한 사람 역차별” vs “생활 불가능한 청춘 구제해줘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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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9호 10면

SPECIAL REPORT 

빚더미에 신음하는 MZ세대를 위한 회생 방안이 논란을 빚고 있다. 서울회생법원은 이달부터 주식 및 암호화폐로 손실을 본 채무자들이 개인회생 신청을 하면 변제금 총액에서 투자로 인한 손실금의 액수를 고려하지 않도록 하는 실무준칙을 시행한다. 법원 관계자는 “올 하반기부터 채무자들의 경제적 파탄 및 도산신청 사건 수가 폭등할 것으로 예상해 도입한 제도”라며 “투자 실패로 경제적 고통을 받는 2030세대의 채무를 조정해 경제활동 복귀를 앞당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이 준칙은 주식·암호화폐 투자로 인한 손실을 그대로 떠안아 파산에 이르는 것을 막자는 취지에서 제정됐다. 가령 기존의 회생절차에서는 10억원의 빚을 내 7억원을 잃은 채무자가 회생을 신청할 경우 남아있는 3억원과 손실을 본 7억원 모두가 변제액수(청산가치)에 포함됐다. 투자손실금 또한 채무자의 자산이라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최근 투자 손실 등에서 비롯된 과도한 변제액수로 인해 채무자가 회생절차를 밟지 못하고 파산에 이르는 경우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일정 금액이라도 꾸준히 갚아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청산가치의 범위를 판사의 판단에 따라 3억원까지 줄이는 것이 더 이롭다고 결론내린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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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여론은 부정적이다. 7년 차 직장인 이건희(27)씨는 “주식, 부동산 등 투자의 책임은 모두 개인의 몫인데, 이를 감수하고 빚내서 투자한 사람들의 피해를 왜 정부가 책임지나”라며 “성실하게 일하고, 절약하며 미래를 위해 저축해온 청년들은 바보가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씨 역시 주식과 암호화폐에 투자해 일정 손실을 떠안고 있지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고수익)’을 선택해 투자했다면 이를 감수하는 것 또한 본인 몫이라는 것이다. 그는 “학자금이나 생활비 등 생계유지를 위해 대출받는 취약계층도 많은 상황에서 왜 본인 선택으로 빚을 진 사람들의 빚 규모를 줄여주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준칙이 타 지역의 회생법원과는 관계 없이 서울회생법원에서만 시행된다는 점에서도 형평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청년 빚 탕감 정책을 내놓자 논란이 더욱 거세졌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4일 제2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저금리 환경에서 투자에 뛰어들었다가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에 처한 청년 투자자들을 구제하겠다는 취지의 ‘신속채무조정 특례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만 34세 이하인 청년 중 신용 평점이 하위 20% 이하인 채무자를 대상으로 한다. 원금 상환 기간을 최대 3년까지 유예해주는 것은 기존 신속채무조정 프로그램과 동일하나, 3년간 약정이자율을 3.25%까지 낮춰 적용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채무 정도에 따라 이자를 최대 30~50% 감면해 금융 취약계층인 청년들이 금융포기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청년층 사이에서는 이런 지원정책이 역차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미디어리얼리서치가 지난 18일부터 23일까지 설문 조사한 결과 ‘빚 없이 살던 사람들에게 청년 채무조정 정책이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항목에 67.6%가 동의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회초년생들의 낙오를 막기 위해서라도 신속채무조정 등의 절차 도입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백주선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정책이사(변호사)는 “수년간 가계부채가 누적된 상황에서 채권자와 채무자가 자발적으로 빚을 해결하라고 내버려 둬서는 경제가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위기는 필연적이기 때문에 파산·회생 제도를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 이사는 미국이 1930년 대공황,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초래했음에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적극적인 파산 제도 활용을 꼽았다. 특히 청년층의 경우 과도한 빚으로 인해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가족들까지 함께 피해를 볼 수 있고, 그 결과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회생 제도를 폭넓게 적용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 청년층의 빚을 탕감해줄 경우 자칫하면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남아있다. 정권마다 채무를 덜어주기 위한 빚 탕감 정책을 시행했지만, 실질적 재기 효과는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3년에도 박근혜 정부가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58만 명의 빚을 탕감했으나 이중 약 10만 명이 다시 채무 불이행자(3개월 이상 연체)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백 이사는 “현재 운영되는 회생 제도에서도 재산을 은닉하는 등의 도덕적 해이 사례는 1%에 불과하다”며 “부작용을 걱정하기보단 청년층이 적시에 빚을 변제하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채권자인 금융기관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도록 하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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